한겨레 2015년 1월 29일 31면 사설 칼럼 필사

영화는 떠도 '꽃분이네'는 문 닫는 비정한 현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었던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영화가 1천만명을 넘는 관객을 모으며 큰 인기를 끌고 '꽃분이네'에 매주 수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가게 주인이 권리금을 3배 가까운 5천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매출은 그다지 늘지 않은 '꽃분이네'는 부담스러운 권리금과 이런저런 갈등 때문에 재계약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영화로 동네가 '뜨면서' 애꿎은 피해자만 생긴 것이다.

이런 일은 국제시장만이 아니라 '뜨는 동네'에선 비일비재하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됐거나 방송 프로그램 등에 그럴듯하게 소개돼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하면 동네는 활기를 띠게 되지만 금세 임대료와 방값이 몇 배로 치솟는다. 수십년째 살고 있던 주민이나 소규모 동네가게의 세입자들은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돈이 된다'는 소식에 수억, 수십억원의 기업형 자본이 마을을 뜯어고치면서 동네 골목은 카페와 음식점으로 바뀌고, 이어 프랜차이즈 식당과 브랜드 매장이 줄을 잇는 또 하나의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신한다. 가난하지만 개성 있는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인디밴드 등이 모여 도극하게 생동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던 서울 홍익대 입구, 아기자기하게 숨은 골목의 정취가 정겨웠던 서울 삼청동길, 처마를 맞댄 골목 사이로 슬리퍼 신고 나가 이웃과 어울릴 수 있었던 서울 서촌의 한옥 동네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다 그렇게 바뀌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와 세탁소 구먹가게 주인들이 떠난 동네는 더 이상 예전의 그 고록이 아니다.

이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990년대까지 고풍과 낭만이 그윽했던 서울 인사동과 홍대 입구, 대학로 등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는 데는 10년 넘게 걸렸지만, 삼청동길이 그리되는 데는 4~5년, 2010년대 서촌에서는 불과 2~3년 만에 동네가 바뀌었다. 상권이 확대되면서 주변 지역까지 상가와 유흥가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지방에서도 2010년 가수 김광석을 기리는 길을 만들었던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은 최근 2~3년 새 땅값과 월세가 4~5배까지 뛰면서 골목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국제시장 '꽃분이네'의 눈물은 바로 그 시작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만 개발되면 도시는 박제화되고 생명력을 잃게 된다. 사람이 사라진 동네, 도시가 오래 지속할 수도 없다. 더 이상 동네가 망가지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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