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5년 1월 29일 30면 - 양심적 병역거부 칼럼 필사

[유레카] 양심적 병역거부 (박용현 논설위원)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로마의 막시밀리아누스다. 서기 295년, 현재의 북아프리카인 로마 속주 누미디아에서 그는 기독교적 신념을 이유로 징집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21살의 나이로 처형됐고 이후 가톨릭 성인으로 추존됐다.

현대적 의미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나라들에서 징병제가 도입되면서다. 19세기 중반부터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라는 용어가 군 복무 거부를 특정해 지칭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부터는 전적으로 이 의미로 쓰이게 됐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서만 1만6000여명이 징집을 거부했고, 이들에게는 비전투 임무나 대체복무의 기회가 주어졌다. 노르웨이(1900년), 덴마트(1917년), 스웨덴(1920년), 네덜란드(1922년), 핀란드(1931년) 등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일찍이 제도화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 헌법에 명시되는 등 수많은 나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유엔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자유권 규약) 18조에 규정된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국제기준을 세웠다. 최근 들어선 기준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2010년 이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국가안보 등의 사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봤지만, 2011년부터는 국가안보상의 비상사태에서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로 승격시켰다.

최근 알려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결정(2014년 12월 8일)은 한발 더 나아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부과되는 징역형은 자유권 규약 9조가 금지하는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비록 실정법의 외피를 쓰고 있을지언정, 정당한 권리의 행사를 처벌하는 것은 불법적 구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러한 국제기준의 진화는 예외 없이 '한국 사례'를 다루면서 이뤄졌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관한 전세계의 각종 문서에 우리의 후진적 현실이 빼곡히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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