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박민규 문장 훔치기

단 한 번도 진실이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서 이 글을 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내릴 수 없는 배다.

일본이 36년간 운항하던 배였고 우리가 자력으로 구입한 선박이 아니었다.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군정을 통해 배의 평형수를 조절했고 배의 관리를 맡은 것은 예전부터 조타실과 기관실에서 일해온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벨로스터 밸브의 한쪽을 아예 비웠다. 평형수를비우면 비우는 만큼,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증가했다. 적재와 적재와 적재와 적재...... 우리는 그것으 기적이라 생가했다. 배는 늘 통제되고 관리되어왔다. 2층 객실에서 3층 객실로, 이어 4층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언제나 좁고 미어터졌다. 붐비는 통로에서 또 복도에서 우리는 늘 방송을 들었다. 잘살아보자는 방송, 하면 된다는 방송이었다. 올라가기 위해, 한 층이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발전과 번영은 종교가 되었고 배가 왜 이렇게 기울었지?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이란 이름의 이단으로 몰려야 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기울어야 했던 국민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 기울기는

안정적인 것이었다. 제대로 포박되지 않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린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의 각도 역시 이 기울기와 각을 같이한 것이었다. 배는 계속 운항을 해야 했다. 평형수를 뺐음에도 배의 무게중심은 생각보다 낮고 안정적이었다. 왕정에서 식민지를 거쳐 영문도 모르고 배의 아래칸에 선적된 '국민'이란 이름의 화물이 있어서였다. 항해가 계속되고 사정은 달라졌다. 무분별한 개축과 증축이 이어지며 무게중심은 올라갔다. 84퍼센트가 대학에 진입하는 초유의 고학력사회가 되었다. 정권에 눈먼 선원들은 여전히 기울기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탐욕에 눈먼 국민들은 층수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당연히 문제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땜빵과 땜빵과 땜빵과 땜빵...... 그리고 어느 날

마치 이 배를 닮은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를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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