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필로소픽 문장 훔치기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자. 풍요로운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그러나 물론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자본주의는 수십 년 동안 가난이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했다. 가난은 저 미련한 자, 게으른 자, '저 사람은 성공하지 못했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끊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주입시킨 자본주의의 신화는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출세 의지는 좌절당하고, 승자와 패자가 있으며, 패자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가난해지는 사람은 자신만이 실패자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훨씬 더 포괄적인 과정의 일부로 가난해지는 것이며, 따라서 그의 운명은 역사적인 차원을 지닌다. 이것에 위로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15-16)

그러므로 집에 들이는 돈이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아니라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집은 아름다워진다. 친구들이 모여드는 집을 가진 사람은 부유하다. 그리고 가슴 답답한 비 오는 날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도 부유하다. 그러나 보스의 고성능 음향 기기, 능동 매트릭스 화면의 대형 텔레비전, 콘런의 디자이너 가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87)

예술은 삼겹살이나 과일 요구르트처럼 사고팔고 흥정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스위스의 손꼽히는 예술 저널리스트 마르크 슈피글러는 현대의 예술 시장이 대중적인 오락 산업과 같은 원칙을 따른다고 말한다. "오늘날 예술계에서는 예술가의 인물과 외모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는 신문의 문예란에서조차 예술가의 가정 이야기가 예술 관련 비평의 중심을 이룬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어떤 다락방에서 살고 어떤 멋진 아틀리에에서 일하며, 또 어떤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어떤(최선의 경우에는 스캔들 없는) 애정 생활을 영위하는지 신문에서 읽는다. 그러나 그것은 팝 스타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먼 예술가의 일을 어쩔 수 없이 방해할 뿐이다."
어떻게 하이프hype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떤 그림을 보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것인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문화적인 '이벤트'를 과연 진실로 원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대화에 한몫 끼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은 아닌가? 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굳이 모두 보아야 하는가? 올해가 '니체의 해'라고 해서 무조건 니체를 읽어야 하는가? 또는 다르게 표현해서, '2006년 모차르트 해'를 과연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문화를 소비하는 태도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여기저기 틀어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다만 텔레비전의 경우에는 어느 프로그램을 틀어야 할지 뒤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136-137)

데미언 허스트는 아틀리에에서 나를 맞아들였다. 머리가 벗겨진 건장한 남자가 문을 열었는데, 퉁퉁 부은 얼굴이 영국의 평범한 술꾼처럼 보였다. 알코올 기운으로 붉게 충혈된 두 눈이 잠시 어리둥절한 듯 앞을 응시했다. 우리가 마침내 자리에 앉았을 때에야 나는 첫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이런 비슷한 물음을 웅얼거렸다. "선생님은 예술을 하십니까, 아니면 반예술을 하십니까?" 그러자 허스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마 그 이상 더 적절한 대답은 없었을 것이다. "자, 우리 술집에 가서 이 절망적인 문제를 위해 실컷 술을 마십시다!" (139)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오락과 정보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오히려 아는 것은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매스컴의 범람에 앞장서서 반대했던 닐 포스트먼은 자신이 과거에 뉴욕 대학교에서 처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기술적인 보조 수단이 아주 미미했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읽고 쓰고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에는 글쓰기를 도와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여 수천여 개에 이르는 도서관의 장서를 직접 열람할 수 있고, 인터넷 무선 접속도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다. 그런데도 조리 있게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대학생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주워듣는 말들을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146)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와주려는 마음,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이런 모든 것은 참으로 무한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여건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게다가 다행히도 인간의 모든 미덕도 이와 마찬가지다. 도덕률의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는 명령이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을 단념하고 저것을 회피하는 것으로써 그 명령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률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에 그치는 데 비해, 미덕은 무한하다는 불굴의 장점을 가진다. 사랑하거나 신뢰하거나 희망하는 데는 원래 한이 없는 법이다. 또한 누군가가 도를 넘어서 현명하거나 용감하거나 정의롭거나 신중했다는 말은 결코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결핍의 시대에 우리는 미덕만큼은 자책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해야 할 것이다. (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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