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차 들어오십니다'라고 말하는 이유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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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장 입구에 서서 안내하는 주차도우미의 모습. 수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 박솔희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저희 백화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주인공이 있으면 조연도, 단역도 있는 법이다. 반짝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한 연말연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이들은 뒷배경이 되어야 한다. 누구 하나 귀담아 듣지 않는 멘트를 수십 번 반복하는 사람들. 한겨울 추위 속에 귀마개도 없이 몇 시간씩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 홍여울(22세, 가명)씨도 지난 몇 년 간, 연말이면 늘 그런 사람이었다. 지난해 연말도 그랬다. 

"누가 그걸 들어요. 아무리 멘트를 해도 다시 와서 물어요. 영업시간 몇 시까지냐고. 그래도 그냥 계속 하는 거예요. '손님이 왕'이니까."

'백화점 일'이라더니, 주차장에 세웠다

여울씨가 주차장 일을 시작한 건 2010년 겨울이었다. 수능을 치른 직후, 첫 알바였다.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 놓았더니 인력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뭐 하는 일이냐"고 물으니 "백화점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만 했다. 그날부터 여울씨는 명동에 있는 대형 백화점에서 주차도우미로 일하게 됐다. 한 달에 6~7일을 쉬고, 월급은 140만 원을 준다고 했다.

"업체마다, 백화점마다 규정이 좀 달라요. 어떤 백화점은 스타킹이나 부츠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데, 제가 일했던 데서는 알바생들이 직접 사서 신게 했어요. 그래서 부츠를 사갔는데, 굽이 낮다고 더 높은 걸 신으라고 하더라고요."

야외에서 서서 일하는 주차도우미는 1시간 일하고 1시간 휴게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늘 인력이 부족해 그보다 오래 일한다. 심지어는 백화점 개점 때부터 폐점 때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말뚝'을 설 때도 있다. 한겨울에 말뚝 근무를 서다 귀에 동상이 걸린 적도 있었다. 4대보험이 없어 치료비도 받지 못했다.

"그냥 죽는 거죠. 진짜 죽어요. 특히 주차타워 바로 앞은요, 부스도 없고 지붕도 없이 그냥 도로 한 가운데 서 있어야 되거든요. 명동이 얼마나 복잡해요. 차가 들어오면 인사를 해야 되는데, 허리 숙이다가 잘못해서 차에 박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때가 많아요."

홍씨는 폭설이 내린 날, 선 채로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 머리 위로 눈이 한참 내려 쌓이는데, 사람이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니 CCTV를 보던 관리자가 이상하게 여겨 들어오게 했다. 3시간 동안 내리 서 있었는데, 정신을 잃었던 몇 십 분 동안의 기억이 없다.

하지만 한겨울 야외 근무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건 인격모독이다. 관리자에게도 손님에게도, 어린 여자 알바생은 제일 만만한 대상이다. 쌍욕도 예사로 들었다.

"별 꼴을 다 봐요. 차가 많으니까, 지하주차장에 들어와서도 두세 시간씩 주차를 못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앞에서 여자애 하나가 깔짝거리고 못 지나가신다고 하고 있으니 손님들은 화가 나는 거예요. 니가 뭔데, 씨*년아, 하면서 욕도 하고. 차 놓고 나와서 때릴 것처럼 삿대질 하는 사람도 있어요. 진짜 맞기도 해요."

"손님이 욕을 하거나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그냥 빌어야죠. 어떡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알바생이 손님에게 폭언·폭행을 당해도 속수무책이다. 바로 위에 CCTV가 달려 있지만 관리자는 아르바이트생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 나오지 않는다.

"다들 울어본 경험이 있어요. 모자에 챙이 있으니까, 이거 눌러 쓰면 잘 안 보인다고들 그래요. 누군가 울면, 무전기로 다 들려요. 그럼 다들 마이크 끄고, 멘트 안 하고 그래요.

잠실점에서 일할 때,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제가 무심결에 "죽고 싶다"고 말해버린 거예요. 그 멘트가 잠실 사거리에 다 울려 퍼지고, 발렛 파킹 직원들이 다 나와서 지금 서 있는 주차 도우미가 누군가 보는 거예요. 그 때서야 마이크가 켜져 있던 걸 알았어요. 정신 차리고 바로 다른 멘트 시작했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저희 백화점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오늘 영업시간은 8시까지니까 즐거운 쇼핑 하시라고..."

병마가 휩쓸고 간 집... 무기력을 배웠다

여울씨는 2010년 겨울에 두 달, 그리고 이듬해 겨울부터 여름까지 약 반 년을 주차장에서 일했다. 오래 일한 편이다. 대개는 2~3달을 버티다 알바생이 스스로 그만두거나, 알바생들 사이의 텃세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업체에서 잘라 버린다. 일 주일을 채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인력업체는 성실한 여울씨가 남길 바랐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몇 달을 더 일했다.

처음 주차장 일을 그만둘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결국은 돈 때문에 돌아갔다. 다른 일보다 벌이가 나았다. 한 달간 교복집에서 일한 적도 있었는데, 휴무 없이 주7일 내내 일해서 100만 원을 받았다. 주차도우미는 월 6~7회 휴무에 140만 원을 받았으니 일은 고돼도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많았다.

돈이 필요했다. 9살 때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은 뒤 집안이 무너졌다. 언니는 12살, 남동생은 6살 때였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4년 반을 앓다 돌아가셨고, 집안은 빚더미에 올랐다. 돌봐줄 사람이 없던 동생은 한글도 늦게 뗐다.

엎친 데 덮친 격, 언니도 병이 났다. 기면증은 발병 원인도 모르는 난치병이다.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고, 응급실에도 몇 번이나 실려 갔다. 언제 또 쓰러질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 새벽에 언니가 쓰러졌어요.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희귀병이라 검사하는 데 못해도 20만 원씩은 들거든요. 그런데 당장 그 20만 원이 없었던 거죠. 동동 거려 보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언니가 다음에 또 쓰러졌는데 20만 원이 없으면, 정말로 못 깨어날 수도 있겠구나..."

인생의 절반이 정신 없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 사춘기를 겪고, 첫사랑도 지나갔다. 하지만 온전히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친구들은 누구 좋아한다, 엄마한테 혼났다, 학원비가 어쩌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런 얘기들에 공감이 안 됐어요. 그냥 적당히 어울리기 위해서 나도 그런 척 하고. 거짓말에 익숙해지고 그랬죠."

폭풍 같은 십대 시절, 먼저 배운 건 무기력이었다.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희망보다는, 해도 안 된다는 절망이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게 우연히 밝혀졌을 때, 위로를 받기보다는 '아빠 없는 애라 저런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숨겨야 할 약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삶에 별 애착은 없지만 욕심도 없어서 오히려 더 살아진다. 여울씨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또래보다 훨씬 성숙한 것은 물론,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어릴 때는 예민하고 하니까... 인생이 의미가 뭘까? 왜 살까? 아빠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 생각 많이 했죠, 자연히. 왜 죽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좀 아까웠나 봐요. 딱히 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하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보자, 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주차도우미들의 파업? 상상일 뿐이었다

스무 살 이후 일을 쉰 기간은 재수를 준비했던 열 달 가량이 전부다. 딱히 대학에 갈 의미를 찾지 못해 대입 원서도 쓰지 않았다. 사교육은커녕 7, 8만 원짜리 수시 원서비도 아깝게 느껴졌다. 주변 어른들이 대신 몇 군데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떨어졌다.

"행정, 경영, 뭐 그렇게 취업 잘 될 것 같은 학과로 쓰셨더라고요. 저는 그냥 관심이 없었어요. 인생은 왜 사는 거지? 대학은 왜 가는 거지? 하던 때였으니까요. 그래도 대학은 가자 해서 다시 공부를 했죠."

학원 다닐 형편은 되지 않았으니 혼자 공부했고, 두 번째 수능을 치르자마자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한푼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잠실에 있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파업을 주도하려고 한 적도 있다. 관리자가 부당하게 차등임금을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키 170이 넘는 애는 180만 원을 주고, 그 이하는 140만 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나요? 처음부터 그렇게 계약한 것도 아니고 이미 일하고 있는 근무자들한테. 마음에 안 드는 애들 자르려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물갈이 하려고."

관리자한테 따로 연락이 왔다. 너는 일 성실하게 하니까 180만 원 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파업을 하자고 했어요. 그냥 안 나오면 무단결근으로 잘라 버리면 그만인 건데, 출근을 하되 파업을 하자고 했죠. 그러면 일이 더 좋게 된다, 했는데 다른 알바생들은 이해를 전혀 못하더라고요. 출근을 하면 일을 하러 나오는 거지 파업이 다 뭐냐고. 그런 얘기를 하던 중에 주임한테 들켰어요.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죠."

파업은커녕 근무자들이 함께 소장에게 따지러 간 적도 한 번 없었다. 울거나, 욕을 하거나, 그만 둬버리거나 하는 식의 대처가 전부였다. 스무 살 전후의 어린 알바생들에게 파업이나 단체행동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여울씨가 따로 가서 이야기해 봤지만 소장은 모르쇠였다. 이야기는 성과 없이 끝났다. 다음 달 통장에는 160만 원이라는 애매한 액수가 찍혔다. 뭔가 싶었다. 부당해고도 다반사다. 

"하루는 애가 휴게실에 울면서 들어오는 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주임님이 일 끝나고 들어오는 애한테 "OO야, 정말 미안한데, 내일부터 안 나와도 돼, 알았지?" 했대요. 그냥 그렇게 당일로 잘린 거예요. 애는 울더니 짐 싸서 나가버리더라고요. 사람을 그렇게 자르는 게 어딨어요, 아무리 알바라고 해도."

대학과 주차장 사이의 요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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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여울씨에게 대학은 충격이었다. 평일엔 학교 주말엔 주차장을 오가며 양 극단의 세계를 살아야 했다.
ⓒ 유성호



재수 끝에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미술사학과에 들어갔다. 우연히 진중권 교수의 책을 읽고 도상학에 끌려서 선택한 과였다. 입학 후에도 주말마다 일을 했다. 하지만 주차장과 대학교는 너무나 달랐다.

"돈 많고 잘 사는 애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특히 미술사학과는, 대부분 대학원이나 유학까지 생각하고 오더라고요. 주차장에서 만나는 애들이랑은 너무 달라서 충격이었죠."

평일과 주말, 학교와 주차장에서 양 극단의 세계를 살았다. 혼란스러웠다. 마침 학교에서 필수로 참가해야 하는 1개월짜리 기숙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차장에는 그동안 못 나온다고 말하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보통은 이런 애들이 대학을 다니는구나 싶었다. 다시는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가자, 주차장에서 연락이 올까봐 핸드폰 번호를 바꿔 버렸다. 그 길로 주차장과는 이별했다.

그래도 돈은 필요했으므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호프집, 빵집, 학원, 편의점, 카페, 사무직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올 봄에는 대학 생활도 좀 즐겨보고 싶어서 기타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카페 알바를 하다가 손목이 나가버렸다. 기타는 거의 못 쳤다.

쉴 틈이 없었다. 일 주일에 사흘은 학교, 이틀은 사무직 알바, 주말 이틀은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그러다 병이 났다. 폐렴에 걸려 입원해야 했다. 때마침 추석 연휴라서 학교는 안 빠져도 됐지만, 카페 일은 그만둬야 했다. 학교를 빠지기 싫어서 부득부득 퇴원했다. 일 주일간 병상에 누워 지내면서, 그간 애써 번 돈을 병원비로 날렸다.

스물두 살, 한창 꿈 많을 나이. 무기력에 이어 배운 건 눈치와 요령 그리고 '손님은 왕이다'.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죄송합니다' 꾸벅 숙이고 본다.

"어릴 때는 항상 어른들 말씀 잘 들으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사장님이 선생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잘 들어요. 이의를 제기하거나, 마땅히 받을 돈을 달라고 하는 얘기도 감히 못 하는 거죠. 얘기 해봤자 우리 시대에는 어려워 가지고 월급이 늦게 나왔다는 둥 하는 소리나 들어야 되고. 내가 일한 만큼 돈 받는 건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얘기 하는 것도 건방지다고나 하고.

그렇다고 내가 손님한테 욕 듣고 성희롱 당하고 할 때 그 '어른'이 보호해주는 것도 아니고. 법이 있어봤자 소용없고 괜히 얘기해봤자 나만 힘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다들 그냥 참고 넘어가는 거죠.

'고객님 차가 들어오십니다' 같은 잘못된 이중존칭 사용, 그런 거 틀린 거 저희도 다 알아요. 그런데 혹시라도 그걸 모르는 고객이 컴플레인 걸까봐 그냥 그렇게 하는 거예요. 잘못된 거 알아도."

여울씨와 함께 백화점 주차장을 둘러봤다. 명동 한복판, 수많은 차들이 드나드는 혼잡 속에서, 갓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게 앳된 주차도우미 몇 명이 동동거린다. 여울씨는 회상에 잠겨 여기저기 소개해 준다.

"주차장은, 제가 제일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생각이 많이 나는 곳이에요. 처음 이 주차장에서 두 달을 일하고 나서 악몽을 엄청 꿨어요. 꿈 속에서 계속 지하주차장을 헤매는 거예요. 욕 듣고, 차에 치이고, 한 번은 눈을 떴는데 팔다리가 없이 꽁꽁 얼어붙어 서 있는 꿈도 꾸고..."

백화점 입구를 통과하는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직원에게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하는 여울씨. 구김살 없이 참 밝다고 생각했던 표정은, 아까 그 주차도우미의 친절한 미소를 닮아 있었다.

"연말에는 뭐 해요?" 라는 물음에 "집에서 쉴 거예요"라면서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에 쉬어 본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서비스업 노동자에게 빨간날은 휴일이 아니다. 준비해야 할 대목, 제일 바쁜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청춘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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