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신경질, 김소영, 달 문장 훔치기

에펠, 널 보러 왔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걸친 너는 널 본떠 만든 무언가를 손에 잔뜩 그러쥐고서 쉴 새 없이 추위 속을 오가던 검은 사람들을 우롱하면서 아름다운 춤을 추었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빛나는 옷을 걷어낸 너의 맨몸은 차갑고 비쩍 말라, 무척 추웠다. 그렇게 볼품없는 너를 밟고 올라간 꼭대기에선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근데 그게 좋았다. 제대로 널 다시 보러 오겠다는 어설픈 다짐도 없이 모든 게 담백했으니까. 뜨거운 뱅쇼를 마시며 일부러 지하철역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던 것도, 센 강에 흘려버려도 그만인 시시껄렁한 생각들도 좋았어. (p. 37)


12월 31일

에펠탑으로 향하는 파리의 지하철은 혼란과 대재앙. 충동적으로 나선 길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한 손에 먹다 만 로제 샴페인을 그대로 들고 탄 나는 그나마 양반. 테킬라에 보드카까지 모두들 파리에서의 새해맞이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

영국에서 갓 도착한 청년 둘, 숙소에서 만난 언니 두 명과 12월 31일의 에펠탑을 보러 가는 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정신없이 흐르고는 있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 아무래도 함께인 사람이 아쉽다. 그래도 반짝이는 에펠탑을 마주하는 것에 무게를 둔다면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결정이리라.

에펠탑 앞에는 이미 언제부터 기다렸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광장처럼 펼쳐져 있다. 카운트다운 십 분쯤 전에 도착한 우리는 욕심 없이 뒤쪽에 자릴 잡았다. 별말을 할 사이도 아니어서 주위를 살피며 자정이 되기만 기다리는데, "누나도 한 장 찍으세요" 같이 온 남자애게 카메라를 들이민다. 처음 본,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람의 카메라에 나를 담는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럴까요, 하며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어코 사진 한 방을 찍었다.

밤보다 어두운 탑 아래, 미소가 매달린 얼굴과 허연 입김들만 둥둥 떠오른다. 저마다 사랑하는 친구들, 소중한 연인과 끼리끼리 모여 한 손은 와인잔을, 한 손은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른다.

- 시작한다!

누군가의 어색한 외침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에펠탑. 빛나는 별을 전신에 뿌려놓은 듯, 온통 반짝거렸다. 때론 푸른색으로, 때론 따뜻한 노란색으로 우주의 파랗고 노란 별들이 모두 내려와 탑 전체를 감싸 안은 것처럼 별들이 가진 수백 개의 눈이 한꺼번에 깜빡였다.
사람들의 함성소리, 샴페인 따는 소리 속에서 누군가는 축배를 들고, 누군가는 포옹을 하고, 함께 온 앳된 얼굴의 언닌 뒤돌아 이렇게 소리쳤다.

- 나 서른 됐어요!

나, 말없이 눈만 끔뻑이던 나. 벅찬 가슴 앞에 가만히 손을 모으고 있던 나는 무엇을 빌었던가. 이런 순간이 거의 그렇듯 결국 나의, 우리의 행복을 빌어버렸다. 파리에서의 나도, 서울에서의 나와 당신들도 모두 행복하길. 시시한 듯 보여도, 언제나 시시한 것이 중요하니까.
집에 가는 길의 지하철은 그나마 탄 것을 황송해야 할 정도로 지구 멸망 급의 카오스. 돌아와 부푼 가슴을 애써 모른 체하며 돌아눕던 붉은 침대 위의 내가 떠오른다.

반짝이는 에펠탑과 언뜻 에펠탑을 닮은 샴페인.
파리는 이제 잠이 듭니다. 서울, 해피 뉴 이어! (p. 40-42)


위험한 여섯 시

여섯 시가 되어 마시는 한잔 술은 내게 일종의 예방접종이다.

어디로, 어디로든 떠나길 간절히 바라던 때가 있었다. 무엇을 시작한 적도 그래서 끝을 볼 것도 하나 없는데, 그저 여기만 아니라면 무언가 할 수 있기 이전에 숨이라도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차고 또 찼다. 그러다 흘러넘쳐 정말 휙 떠나버릴까,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으로,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없음'에서 다시 시작되길 절실히 바랐다.
기실 휙 떠나는 걸로는 감당이 안 돼, 펑 하고 증발해 흔적도 남지 않기를 얼마나 소망했는지 모른다. 정말 막연하다고밖에 설명이 되질 않아 누군가가 너는 떠나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겠냐고 묻는다면 묵묵부답 할 수밖에.

나는 단지 되묻는다. 자연광이 두 배로 투과되어 걸쭉해진 저녁 나절, 해의 색이 무서워진 적이 있느냐고. 솟아오르는 먹먹함과 억울함을 가둬둘 길 없어 덜컹거렸다. 미칠 것 같다는 말 외엔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시간이 있느냐고. 나는 매일이 그렇다고.
그리움도 겁이 나는 이곳을 내가 정말 떠나게 된다면 지금보다 잠을 좀 더 자고 밥을 좀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다. 여전히 '잘'이란 부사를 붙이지 못한 건, 나는 내가 어디를 가도 이것을 홍역처럼 앓으리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 여전히 와인 한잔으로 머리를 마취시킨다.

해가 사라진 뒤에도 괜찮기 위해. (p. 53-54)


... 주말은 어딜 가도 가도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실댄다. 그래서 늘 재래시장을 찾아가 그 분위기 속에 휩쓸리는 게 좋다. 그 속에선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다. 그러니까 글이 이따위다. <보헤미안의 파리>에 대해서 미묘한 반발심이 인다. 이 작가는 파리에 와서 행복하기만 했단 말인가? 파리에서의 안 좋은 감정이란 게 이곳에서 살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뿐이라면, 어떻게 여기서 창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행복하기만 한 파리였다면 나는 노트북도, 빨간색 몰스킨도 들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행복하다면 나는 무언가를 쓰기보다 그저 순간을 즐기는 데 온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p.135)


해봐야 아는 일

정신없이 달려오다 문득 뒤돌아봤을 때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을과 산이 펼쳐져 있기를.
익숙한 것들이 곁을 무례하게 채우지 않기를.
또한 항상 살아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또 바란다.
익숙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삶과
그 삶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외로움일수록
뼛속 깊이 치민다는 걸.
그걸 감당하기엔
온실 속에서 가만히 밖을 내다보는 화초 같은 나였다는 걸.
까닭 없는 우울과 깊이 없는 슬픔은 또 얼마나 가볍고 선정적이었는지.

스물다섯, 혼자서 떠난 여행은 이리도 노골적이다. (p. 173)


... 나의 서울. 디자인 서울이, 강남이 아쉬운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새로 지어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빌딩보다 한옥의 고급스러운 선이, 지극히 개인적인 서양의 식문화보다 수십 가지 찬거리, 그 위에서 젓가락을 부딪치여 먹는 우리 식문화가 훨씬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을 아는 일. 어려운 걸가? 낙원상가를 밀어내고, 도로를 매끈하게 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낙원동 특유의 비릿한 분위기를, 우리 고궁과 삼청동의 한옥들을 지켜내는 일이다.

독특이 매력으로 간주되는 시대다. 그게 무엇이든, 가꿀수록 빛나기 마련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움은 완벽해진다. 나는 서울이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보톡스를 맞기보다 찰진 피부를 더욱 찰지에, 윤이 나는 검은 머릿결을 더욱 윤나게 가꾸면 좋겠다. (p.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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