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9 17 <비포 미드나잇> 영화 리뷰 - 내 인생의 영화들

비포 미드나잇
에단 호크,줄리 델피 / 리차드 링클래이터
나의 점수 : ★★★★

맛 좋은 스끼다시 같은 영화


@home, IPTV



간절히 바라건대 비포 시리즈는 한 20년이나 30년쯤 지난 후에 또하나의 속편을 만들어야 한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늘그막에 추억에 젖어서라든가 감독 링클래이터가 재정난에 허덕여서 과거의 영화를 다시 우려먹어야 했기 때문이라든가 비엔나, 파리, 펠로폰네소스에 이어서 런던이나 베를린이나 시카고 같은 도시에서 광범위한 협찬을 받아서라든가, 어떤 비루한 이유라도 좋다. 제발, 비포 선라이즈, 선셋, 미드나잇을 잇는, 그러니까 이제 할 것도 없고 완결된 것 같긴 하지만 애프터 미드나잇이든 비포 눈이든 좋으니, 20년 쯤은 가뿐히 기다리겠으니 속편을 만들어달라.

앞으로 약 20년간 나는 자의적으로 네 번째 비포 시리즈를 기다리며 살아갈테다. 그런 희박한 희망이라도 없으면, IPTV로 4000포인트나 결제하고 본, 내가 아껴마지않는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가 이렇게 끝난다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극장 상영을 놓치고 나서 아끼고 아끼고 고대하고 고대해 봤는데 이게 뭐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비포 미드나잇은 맛 좋은 스끼다시 같은 영화였다. 훌륭한 스끼다시를 먹고 입맛을 돋워 놨더니 '회는 안 나와요, 영업 끝났으니 나가세요' 소리를 들은 기분이다. 전작들이 스끼다시였고 미드나잇에서 절정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전작들은 각각 훌륭한 정찬이었다. 비포 선라이즈는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마시는 비엔나 커피 같았고 비포 선셋은 달콤한 디저트 같은 셀린의 노래와 춤으로 끝나는 프랑스식 비스트로 식사였다.

비포 미드나잇도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았다. 이미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상태였기 때문에 뭐든 사랑스럽고 의미있어 보였고 셀린과 제시 둘만의 문법도 이해가 됐다. 전작들의 인기 요소를 그대로 가져와 최대한 강조했다. 위트 있고 리듬감 있는 두 사람의 끊이지 않는 대화와, 셀린과 제시의 투샷이 시종일관 비춰진다. 지적인 프랑스 여자 셀린과 미국인 소설가 제시에게 어울리는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라는 로케이션도 나쁘지 않았다. 비엔나나 파리보다는 중년에 더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하고. 그리스의 해변에서 함께 모여 먹는 그리스식 정찬도 좋았다. 하지만 거의 입에도 대지 않은 두 잔의 와인과 셀린이 남기고 떠난, 식어버린 차처럼 중요한 게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안주만 먹고 술을 안 마셨어! 라든가. 어제 영화가 끝나자마자 어안이 벙벙해 친구에게 카톡으로 징징거렸던 날것의 표현대로라면 전희만 잔뜩 하고 오르가슴을 못 느낌 기분이야! 라고도 할 수 있을 거고...

전작들의 인기에 힘입어 팬서비스처럼 나온 영화란 걸 알지만, 그걸 감수한다 해도 아쉬웠던 건 허무한 결말이다. 어쩌면 전작들도 결말이 완결적이지는 않았지만 후속편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실망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결편이라고 생각하고 본 영화가 너무 헐렁하게 끝나버려서 헐?? 이게 끝??! 싶었달까. 중년이 된 두 사람이 자주 다투고 현실에 찌들어 로맨스가 실종된 상태인 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영화가 그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주려 했던 것도. 셀린과 제시는 시종일관 다투고, 셀린은 히스테리를 부리고, 제시는 그런 셀린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하지만(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이며 로맨스 돋는 건 바로 셀린에 대한 제시의 끝없는 사랑이다. 여성향 영화임이 증명된다.) 한편으로는 떨어져 사는 아들에 대한 염려를 감추지 못하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주요 주제는 책이나 음악이나 철학, 혹은 사랑과 인생보다는 아이들, 새 직장, 서로의 바람에 대한 의심들로 바뀌어있다. 성당과 묘지, 레코드점과 바에 가고 핀볼 게임을 하던 이십대 초반의 셀린과 제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서 만나 유람선을 타고 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삼십대의 셀린과 제시는 이제 초대 받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며 아픈 아이들을 챙기고 선물받은 와인을 따놓고도 아들 걱정에 다투고 오랜만에 갖는 둘만의 시간을 기대하다가도 '나 이제 자기 사랑 안 해'라며 나가버리는 중년의 셀린과 제시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 불만은 비포 미드나잇이 전작들에 비해 너무 단조로워졌다는 거다. 핀볼 게임이나 유람선은커녕 애들 뒷바라지에 느긋한 산책조차 하지 못하니까. 어쩌면 그게 현실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게 진짜야'라던 제시의 말처럼. 그래도 영화는 영화니까, 마지막 순간에 셀린과 제시가 손을 잡고 왈츠라도 추는 게 어땠을까. 끝간데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말다툼은 그만 하고. 어쩌면 너무 클리셰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영화는 영화잖아!

아직 중년이 되지 않은 나로서는 영화가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혹은 영화적이지 않다고 느껴진다. 일단 20년쯤 더 살아보고 판단해야겠다. 맛 좋은 스끼다시 같은 건 사실 영화가 아니라 중년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맛도 없는 스끼다시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 때까지는, 제4의 비포 시리즈가 나와서 노년의 로맨스와 판타지를 회복시켜줄거라고 믿을 테다. 바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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