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홍대놀이터 자기탐구일지 2013

1. 사실 가장 잘 써지는 글의 종류로는 페북 타임라인의 허세나 제출 마감을 한 시간 남겨둔 페이퍼도 있겠지만 술먹고 헛소리를 많이 지껄인 다음날 아침의 참회록(!)도 퍽 순위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중국에 있을 때야 그렇다 치지만 한국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나가도록 끄적거리는 일기 외에는 아무것도 쓰질 못했는데 이렇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 한 잔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는 걸 보면 말이다. 글이 얼마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쨌든 참회하는 무드로 차분하게 글을 쓰며 앉아라도 있는거다.

2.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던 건 어제 마신 두 병 반쯤의 맥주 때문만은 아니고... 홍대 한복판에서 온갖 중국어 헛소리를 지껄여댄 ㅎㄷㄷ한 기억이 떠올라서... 카일이 같이 가자! 고 어눌한 한국어로 말하는 걸 보고 나도 질 수 없다는 듯 중국어로 워먼 이치 취바! 라고 떠들어댔고, 엄청 큰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지나가는 사람 옷에 흘렸는데 이건 진짜 지금 생각하니 어이없지만 나도 모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뚜이부치가 나왔고...... LOL (취한 사람이니까 냅두고 간다는 듯 그 사람은 짜증난 표정으로 떠나갔다. 죄송합니다 ㅋㅋ) 누구한테 말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아무튼 뭔가 중국어로 많이 떠들었다. 참 신기해. 몇마디 하지도 못하는 중국어인데. LOL

3. 아무튼 전혀 계획에 없다가 갑자기 저녁에 홍대를 간 거였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몇 년째 홍대에 다니지만 나는 그 '홍익어린이공원'에서 단 한 명의 어린이도 본 일이 없다. 그나마 그동안은 거리의 예술가들이나 아마추어 댄서들이나 십대들이 많이 있었지만 여름 휴가철이어선지, 어제는 온통 외국인 천지였다. 나의 홍대놀이터가 온갖 술취한 외국인들에게 유린당하는 느낌이었다구! 오직 막걸리아저씨만이 변함없이 놀이터 언저리를 지키고 계셨달까. 놀이터는.... Barely artsy anymore but became a sort of hookup place for foreigners. Kinda sad. 어쨌거나 나는 랜덤맥주뽑기를 해서 카스가 걸리고 또 오비가 걸렸지만 벡스를 달라고 징징거려서 친구가 돈 더 내고 벡스 사주고...(좋은 친구다... ㅠㅠ) 매화수를 영어로는 'Sweet Blooming'이라고 부르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랬던 토요일 밤의 홍대, 홍대놀이터. 적당히 마시고 취하고 떠들고 떡볶이 먹고 집에 왔다.

4. 어쩌면 퍽 안정적일 수도 있는 진로를 버리고 나는 아마 서울을 떠날 것이다. 그것에 대해 중국에 있을 때나 돌아온 다음에나 계속 고민이 많았다. 언제나 모험을 즐기는 나지만 유난히 고민이 깊었던 건, 계획했던 것에서부터 인생이 너무나 많이 달라질 것 같아서다. 특히, 글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라는 생각에 그랬다. 하지만 나는 분명, 한 시간의 독서와 한 시간의 홍대놀이터 중에 홍대놀이터를 택할 사람이다. 시집에 코를 쳐박기보다는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볼 사람이다. 그것만이 진짜니까. 여전히 흔들흔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떠날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911
64
487583

교환학생 완전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