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자기탐구일지 2012

남루하다, 참으로.

"내가 오늘 너무 피곤해서 널 못 참아주겠다"라는 말을 기어이 뱉어버리고, 공부하러 카페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술집을 찾았다. 바에 앉아 호가든을 한 병 시켰다. "재떨이 필요하세요?"라는 직원의 말에 아, 담배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소울메이트가 보고 싶었다. 맥주를 이내 다 마셔버리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요며칠 자주 생각해왔다. 나의 남루함에 대해서. 속좁음에 대해서. 외롭기 때문에 그저 부대끼며 살고 있지만 속에서는 순간순간 부아가 치밀곤 했다. 불필요한 예민함이었다. 겉으로는 성격 좋은 척, 털털한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까탈을 다 부렸다. 그래서 난 네가 싫어. 너랑 난 딱 여기까지야. 그거 알아? 사실 난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절반쯤의 죄책감과 절반쯤의 우월감 같은 감정. 못됐구나, 난 정말 최악인 인간이구나 스스로 되뇌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끈적하게 남아버린 청테이프 자국 같은 그런 남루한 생각이었다. 가장 나쁜 것은 이 생각이 결코 진심이 아니라는 거였다. 허세. 하필 어떤 작가의 청춘 시절 고뇌를 담은 에세이를 읽은 오늘 나는 무척이나 허세로 가득했다.

담배를 사서 친구가 있는 병실로 올라갔다. 친구는 여전했다. 내가 술 마시고 온 걸 5초만에 알아냈다(호가든이라는 것까지 맞췄다! 겨우 한 병 밖에 안 마셨는데! 엄청난 후각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의 동생이 옷가지와 수건 따위를 챙겨 가지고 왔고 나는 추석 이후로 내 동생을 본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갑갑해서 나왔어. 갑갑한데 동네를 벗어나 갈 데가 없어서 온 데가 고작 병원이군! 하긴 너야말로 갑갑하겠지. 예전에는 취재 때문이라고는 해도 엄청 돌아다녔는데, 집에서 글만 쓰니까 답답하기 짝이 없어. 왜 술 먹었는데? 친구랑 싸웠어. 응 뭐 엄청 구질구질하고 사소한 이유 때문이지 뭐. 왜 사람들은 서로를 참아야 하는걸까? 참아지니까 친구지. 그런걸까. 친구니까 참아주는 걸까. 난 요즘 삶이 좀 재미가 없어. 아아 떠나고 싶다. 한국은 너무 답답해!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보자는 사람이 많아도 피곤하거나 재미없거나 그래서 안 나가게 돼. 난 좀 많이 못된 것 같애. 요즘 주변에 말 통하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다. 내가 빨리 나아서 재밌게 해 줄게. 그래, 빨리 나아라.

병원 앞에서 친구랑 나란히 담배 한 대씩을 피고선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맥주를 한 캔 사서 마시며 집까지 걸어오는 길. 젊은이가 허세조차 없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지, 라는 글귀가 떠올라서, 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는 조금 더 허세를 부려도 괜찮은 거 아닐까 문득 어깨가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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