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 Voice] 프랑스 ‘똘레랑스’ 미국 ‘다양성’ 한국은? 대학내일

생긴 꼴대로 살게 나 좀 내비두세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툭 던진 아빠의 한 마디에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바지가 그게 뭐냐?”

이 바지, 포에버21에서 15불 주고 산 내 페이버릿 팬츠, 어떻게 생겼냐 하면, 일단 어른들 눈살 찌푸리시게 짧은 바지 결코 아니고 발목까지 사뿐 덮는 긴 바지다. 페이즐리를 응용한 무늬가 꽤나 화려해서 잘못 입으면 몸뻬 될 위험도 있겠으나, 내게는 잘만 어울렸다. 분명 무난하지는 않지만 내 개성을 잘 살려주는 옷. 미국에서는 보는 친구들마다 “너 바지 예쁘다”고 칭찬했고, 뭐 제 맘에 안 드는 이 있었겠지만 “바지가 그게 뭐냐?” 하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에 똘레랑스가 있다면 미국에는 다양성(diversity)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캘리포니아에서 반년을 지내고 돌아왔더니, 이전에도 갑갑했던 한국사회의 획일성이 너무나 극명하게 눈에 거슬린다. 연예인들 비슷하게 생긴 건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니고, 개성보다는 통일을 강조하는 사회 풍토도 그렇다 치자. 하지만 나름대로 꿈을 꾸던 친구들이 너무나 뻔하게 대학원에 간다거나 취업을 준비한다거나 하며 맞지 않는 제복에 사지를 끼워맞추려 애쓰고 있는 모습에는 좀 슬퍼지고 말았다.

그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길이 없다. 저마다의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지원군은커녕 잔소리꾼, 방해꾼만 천지다. 정신 차려라, 그거 해서 먹고 살겠냐, 부모님 생각은 안 하냐(아, 이거 쓰는 나도 좀 아프다. 좀 전에도 엄마의 잔소리 어택을 한귀로 흘리기 신공으로 겨우 방어한 참이라),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 등등등.

어른이 된다는 건, 철이 든다는 건, 순수하던 꿈은 추억의 갈피 속에 접어두고 현실이라는 미명에 복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놀이터를 떠나고 있었지만 나는 좀더 흙장난을 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이 조그만 놀이터의 그네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육삼빌딩 꼭대기에 갈 수 있대도, 내 두 발로 힘껏 땅을 굴러 날아오르는 그 짜릿함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미국에서 나는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보고 왔다. 가장 가까이, 내 하우스메이트이자 집주인이었던 신신은 반백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 고향 필리핀의 모기퇴치 캠페인과 봉사활동으로 활기차게 지내고 있었다. 여자 넷이 사는 집이었지만,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가 있었던 사람도 최고령자인 신신뿐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직장, 페이스북에 다니는 이반은 머지않아 퇴사를 꿈꾸고 있다. 회사에 불만이 있거나 연봉이 적어서가 아니다. 직장이란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남 일 해주고 돈 받는 곳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기 위해, 창업을 할 예정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길거리 공연으로 돈을 벌어 여행하던 테일러,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일하며 자기만의 인생 로드맵과 목표를 세워 살고 있던 데이빗 등등 꿈을 지키며 살고 있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계속 흙장난을 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었다. 돈 많이 주는 직장을 골라 취업을 하기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길. 내게는 이것만이 진정한 삶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조국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어른들이 정해준 길을 따르지 않으면 낙오하고 마는, 정말로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경제적 위협, 느껴진다.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우리의 꿈을 응원하기는커녕 뜯어말리고 좌절시키고 잔소리하는 그 무시무시한 오지랖들이다. 나이든 분들이 그러시면 그 분들의 시대는 그러하였겠지 하고 이해라도 하는데, 내 또래의 ‘어린 꼰대’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슬픔을 주체 못하곤 한다.

저마다 자기 생긴 ‘꼴’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우리, 각자 생긴 대로 살면 안 될까. 그리고, 나와 좀 다르게 생긴 상대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좀 존중해주면 안 될까.

… 다 됐고, 야 꼰대들아, 나 좀 내비둬!


저마다의

길을

만들어나갈수 있게

도와주는

지원군은

커녕

잔소리꾼,

방해꾼만

천지다


본 칼럼 내용은 대학내일의 전체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솔희 프리랜서 jamila@daum.net


박솔희

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다. 스물한 살 때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려 기차여행 가이드북「청춘, 내일로」를 쓰고 세상에 내놓았다. 스물둘에는 국내 최초 20대 헌정방송 ‘나는 껌수다’를 진행했다. 스물셋에는 교환학생을 핑계로 미국에 가서 카우치서핑만 신나게 하고, 올 가을 복학했다. 특별히 되고 싶은 무엇은 없으나 계속 글을 쓰며 제 멋대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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