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은 끝이 보이고 우리는 덥다가 끝났다. 계획을 세울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변명만 쌓였다. 역시 난 안돼, 괴롭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건 그쯤하고 비우러 떠나자. 수강신청을 마친 우리에게 남은 건 개강까지 기껏해야 2주 정도. 적은 돈과 시간으로, 새롭게 살아볼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추천하겠다. 여기까지 읽고 엄숙한 절을 상상했다면 잠깐! 요트를 타거나 맷돌로 간 커피를 내려 마시고, 피아노 연주와 마임, 강연이 함께한다면 어떤가. 요트체험을 하는 강릉의 현덕사와 ‘내비둬 콘서트’를 하는 김제의 금산사 이야기다.
자연스러워라
현덕사 요트 체험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절을 좋아했다. 고등학생일 때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를 읽으면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중략)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이 부분에서 너무나 감격했기 때문이다. 후에 나는 정말로 슬픔이 가득 찼을 때 절에 찾아가곤 했다. 지금껏 나는 그런 용도로 절을 찾곤 했는데, 강릉 현덕사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갔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요트. 절에서 이걸 탄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요트를 타며 명상을 한다니 더 놀라울밖에.
정문정 기자 moon@naeil.com
절에서 마시는
맷돌 사발 커피
현덕사에서는 보통 한 달에 한번씩 명상지도를 한다. 이를 지도하는 사람은 인도 명상 공동체 오로빌에서 살다 온 해피로터스 명상 연구소의 효산 소장과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의 고미숙 교수다. 점심 공양(절에서는 식사를 공양이라고 한다)을 마치고 모였다. 신선한 커피콩을 맷돌에 넣고 드륵드륵 갈자 커피향이 작은 방에 가득 퍼졌다. 커피도시 강릉에 있는 절에 있단 실감이 났다. 효산 소장은 ‘청바지 입은 수행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커피를 한 잔씩 내려주었다. 우리는 커피의 향을 맡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커피를 한 입씩 입에 넣고 머금었다가 살며시 삼켰다. 커피를 이렇게 천천히 마신 적이 있던가?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맞이하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효산 법사는 맛이 있느냐고 물어보더니 판단하지 말고 그저 느끼라고만 한다. 이어서 그는 “사실 가장 맛있는 커피는 자신이 행복할 때 마시는 커피죠”라고 말했다. “우리는 행복도 자꾸 외부에서 구하려고 하지만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자꾸 찾아 쓸 생각을 하세요”라고 말했다. 끄덕끄덕.
고미숙 교수는 이어진 기체조 강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은 쓰지 않고 머리만 많이 쓴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느낌을 자각하는 삶을 살라는 것. 바쁜 가운데서도 가끔 멈춰 서서 명상을 하는 것이 자신을 만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고미숙 교수는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며 직관을 키우다 보면 심리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된다고 조언했다.
무동력 순수
요트의 힘 같이
기다리던 요트 타임. 오후 3시, 차를 타고 경포대를 지나 안목해변의 강릉항에 도착했다. 강릉시요트연합회 회장이신 문상연 선장님이 요트를 태워주신다고 했다. 그는 2년 전부터 현덕사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요트를 태워주고 있었다. 줄이 당겨졌다가 늘어졌다가 돛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했다. 현덕사 주지 현종 스님은 요트를 잘 타는 건 바람을 읽고 그에 맞춰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며, 그처럼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말했다. 요트는 최소 2명의 사람이 서로 도와 배의 방향과 흐름을 조절한다. 함께 가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우리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촌부 같은 외모의 스님이 껄껄 웃으며 묻는다.
효산 소장은 요트 위에서 소리를 듣고, 바다의 색을 보고, 수평선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내 몸에 스치는 바람에 집중해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그는 강조한다. “뭐든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마세요.” 새로운 곳에 갈수록 카메라 렌즈가 나 대신 경치를 감상해주곤 했는데 오늘은 내가 바다를 보고 있다.
요트를 타고 돌아온 저녁에는 차를 마시고 밤에는 법당에 모였다. 가장 최근에 스트레스 받은 일을 생각하고 종이에 적었다. 그 일이 왜 내 마음을 괴롭혔는지 생각했다. 명상을 하면서 계속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적을 때만 해도 심각했던 일이 정색하고 생각해보면 역시나 가벼운 체념 상태가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는 고민을 적은 종이를 태우고 훌훌 일어섰다.
현덕사 템플스테이 참여하기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3시간 정도 소요되며, 강릉역에서 현덕사까지는 303번을 타고 30분 정도를 가면 된다. 요트 체험은 템플스테이 참가 시 추가비용없이 할 수 있으며, 매달 둘째 주에는 커피 강의가, 매달 넷째 주에는 명상과 기체조 강의가 있다. 1박 2일 기준 1인당 참가비는 5만원이다.
hyundeoksa.or.kr
그냥 내비둬! 금산사 토크콘서트
지난 해 여름, 금산 보광사에서 열리는 산사음악회에 갔다가 나는 일감스님을 처음 뵀다. 스님은 대화 중에 “내비둬 콘서트를 시작했어”라고 하셨고 나는 “내버려두라고 할 때의 그 ‘내비둬’요?”라고 다시 물었다. 스님은 “그렇지! 한 번 와서 봐. 아주 좋아”하고 껄껄 웃으셨는데 그 말이 잊히지 않았다. 내버려두라니, 가끔 남에게 외치고 싶었던 말이다. 사실 내게도 그랬고…. 1년 만에 스님이 말하는 그 내비둬를 만나러 금산사로 갔다.
정문정 기자 moon@naeil.com 사진 이상민 학생리포터
낭만적인
여름 산사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착수하는 것을 보고 스님은 괴로워했다. 자연스럽게 두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런 무한경쟁적이고 개발우선주의적인 세상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님은 지난 해 여름부터 ‘내비둬 콘서트’를 시작했다고.
콘서트를 시작하기 전 저녁 공양과 타종을 마쳤다. 큰 법당에 7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둘러 앉아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의 멜로디가 피아니스트 안병주씨의 손끝에서 울려퍼진다.
일감스님이 콘서트 시작을 알리며 말한다. “세상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스트레스가 많지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일감스님의 말씀, “그럴 땐 그냥 ‘내비둬’라고 말해보세요. 대신 남이 내버려두라고 하면 나도 그렇게 해줘야 공평하겠지요?” 스님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려는 마음부터 내려놓고, ‘방하착(妨下着:그저 내려놓기)’하라고 말한다.
이달 4일 강연을 진행한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씨는 ‘나를 사랑하기’라는 주제로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크게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했다. 그는 부모가 자식을 비판할 때 실수를 지적하면서 “우리는 누가 자기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게 됩니다. 강한 어조로 나쁘게 말하면 기분만 나쁘죠.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대부분 그렇게 대합니다. 남이 나에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을 대해보세요.”
문답 중 그는 또 “약점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약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자신의 약점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라며 자신을 인정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나쁜 일만 안 해도 좋은 사람입니다”라며 조급한 마음들을 다독였다.
강연 중간 중간 스님의 농담이나 부연 설명이 함께 연결되고, 피아니스트 안병주씨의 연주도 이어졌다. 밤 9시를 훌쩍 넘기며 시작한 마지막은 마임이스트 최경식 교수의 공연으로 마무리됐는데, 풍선과 비눗방울이 동글동글 튀어나오자 어렸을 때의 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는 입을 헤벌리고 비눗방울이 내 쪽으로 올 때마다 바람을 후후 불어 공중으로 더 높게 날려 올렸다. 뒤에 앉으신 스님도 연신 손뼉을 쳤다.
내게만
집중하는 시간
새벽에는 3시에 일어나 절을 하고 명상을 한다. ‘내비둬’가 주제인 만큼 의무는 아니다. 자고 싶은 사람은 더 자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곳 금산사 템플스테이만의 특징이다. 지난밤 콘서트를 보고 난 후 나는 아이처럼 웅크리고 자면서 오랜만에 좋은 꿈을 꿨다. 맑은 아침이었다. 특히 새벽에 일어나 별을 보고 찬바람을 쐬거나 108배를 하고 종아리가 당기면 기분 좋게 멍청해져서 그 심각한 고민들이 에라 뭐 이깟 거가 다 이깟 거지 싶어졌다. 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을 멈추고 내게만 집중할 수 있다. 그때의 기분은 굉장히 자유롭다.
깨끗해진 오후, 일감스님과의 차담 시간엔 무엇이든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다. 아이들이 “스님은 왜 고기를 안 먹나요”부터 “부처님은 왜 금색인가요” 같은 깜찍한 질문들을 해댔다. 질문하기가 쑥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스님은 아이들을 뛰어놀게 하고 어른들은 질문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부르시기도 했다.
스님은 젊은이들에게도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한다. 지난달에는 프로 레슬러 김남훈씨를 초청했는데 그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 젊은이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20대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 특히 20대는 많은 결정들 앞에서 고민이 많을 때입니다.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안전한 자연으로 와서 쉬어 가세요. 그러면 자연이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주곤 하지요.”
금산사 템플스테이 참여하기
매주 넷째주 토요일에는 일감스님의 ‘내비둬 콘서트’가 진행된다. 이번 여름휴가를 맞이해 금산사에서는 매주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달 18일에는 가수 신현수씨와 김용진씨가, 25일에는 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출연한다. 피아니스트 안병주씨와 마임이스트 최경식 교수는 매주 등장한다. 1박 2일 기준 참가비는 7만원. 금산사를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김제역이나 전주역으로 와서 버스를 타는 것을 추천. 역에서 40~50분 정도 걸린다.
geumsan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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