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한열도 모르는 요즘 중학생, 다 교과서 탓이다 OhmyNews

지난 9일(화) 이메일을 한 통을 받았다. '교과서에서 이한열 열사 사진 삭제'라는 제목의 이메일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중학교 역사교과서 내용 중 ▲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 일왕을 천황으로 ▲ 임정요원 사진 설명에서 김구 선생 설명을 삭제하고 이승만, 안창호 선생만 설명 ▲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삭제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각 교과서가 모두 권고대로 수정되었다고 알리고 있었다. 이한열 열사의 사진은 명동 성당에 모인 시민 학생들의 시위 사진으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이한열도 모르는 애들 문제라고? 다 어른들 탓

기자는 2010년 1학기에 선발된 제3회 이한열장학금 수상자다. 이한열장학회는 6월항쟁정신 계승과 이한열 열사 추모라는 취지로 2009년 연세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동문 모임 중 "요즘 대학생들이 이한열이 누군지도 모르더라"는 푸념이 터져 나왔고, 어떻게 하면 대학생들이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열사의 이름을 단 장학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라도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리라는 작은 기대로, 회원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만든 풀뿌리 장학회라 더 뜻깊다.

그런데, 그러잖아도 이한열이 누군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 세태에, 역사교과서에서 열사의 사진이 빠지게 된다는 거다.

▲  '이한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진, 최루탄 피격 순간 쓰러지는 열사의 모습
ⓒ 이한열기념사업회 홈페이지 화면 캡쳐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는 2013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심사를 위해 검정심의회를 구성하여 검정심사를 했다. 이에 따라 9종 18책의 교과서가 최종 합격되었으며, 검정심의회의 권고에 따라 일부 수정이 가해졌다. 대표적인 내용이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빠진 것이다.

▲  국사편찬위원회 설명자료에 포함된 사진. '쓰러지는 이한열' 사진이 '6월 민주 항쟁(명동 성당 시위)'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 국사편찬위원회 설명자료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체 사유에 대해서 "학습자가 중학생임을 고려해 직접적이고 참혹한 사진 제시에 대해 재고려 요망"이라는 내용의 해명 자료를 내놓았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일제 치하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이 재현된 천안 독립기념관은 중학생 이하 출입 불가로 지정해야 하는가? 역사 교육이란 때로 뼈아픈 현실과 어두운 과거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왕→천황, 일본군 성노예→일본군 위안부, 이건 진짜 못 참아!

이한열 장학금 수혜자이며,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 교과서에 나온 열사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열사의 사진이 교체된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열사의 사진이 빠진 자리에는 6월 항쟁 중 명동 성당에 시위 군중이 운집한 사진이 들어갔다. 열사정신 계승도 중요하지만 6월 항쟁도 중요하니까,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교체 내용을 면밀히 뜯어보면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관이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일왕(日王)'을 '천황'으로 바꾸고 일본군의 '성노예' 대신 '위안부'라는 표현만을 사용한 것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을사늑약'은 '을사조약'으로 바뀌었고, 임시 정부 요인들의 사진 설명에서 김구 선생의 설명이 빠지고 이승만, 안창호 선생에 대한 설명만 남겼다.

교체 사유에 대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자료를 보면(10월 9일자 및 10월 11일자) 역사학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된 집필기준 및 편수자료에 의거한 내용이라고 해명돼있다. '국왕'을 '천황'으로 수정 권고한 것에 대해서는 "'천황제 중심의 정치체제'라는 용어는 메이지유신 이후 성립된 일본의 근대 정치 체제에 대한 역사용어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고친 것이나 일본군 성노예를 일본군 위안부로 고친 부분은 교과부 제공 편수자료(교과서 용어집에 해당)를 따른 처리일 뿐이라고 설명돼있다. 실제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한국역사용어 시소러스(사전)에서 '을사조약'이나 '위안부'를 검색하면 용어 검색결과가 나오지만 '을사늑약'이나 '성노예'를 찾으면 용어 검색결과가 나오지 않고 유의어인 을사조약과 일본군위안부만 검색된다.

▲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역사용어 시소러스 검색 결과
ⓒ 화면 캡쳐 및 재편집



역사는 기계적 서술이 아닌 맥락 고려한 사관 따라 쓰여야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과부 편수자료를 따른 것뿐이라는데 편수자료 만든 이들도 아닌 애먼 검정위원들만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검정심의회 명단을 살펴보니 평범한 대학교수나 중고교 교사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서술은 단순한 맞춤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계적 편의를 따라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독도를 일본어로 하면 분명 다케시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이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할 이유는 결코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동해보다는 일본해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인다. 위키피디아에서 'East Sea of Korea'를 검색하면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고 'Sea of Japan'에 대한 설명으로 리디렉션되는 지경이다. 표기 문제에 대한 논란을 다루는 항목도 'Sea of Japan naming dispute'라고 나와 있지 'East Sea of Korea naming dispute'라고는 안 한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교과서에 동해 대신에 국제적으로 확립된 일본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걸까?

군국주의적 색채를 띠어 그동안 사용이 금기시돼온 천황이라는 표현도, 도대체 뭘 '위안'했다는 건지, 완곡어도 그런 완곡어가 없는 위안부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위안부(Comfort Woman)라는 표현은 국제적으로도 성노예(Sex Slave)라는 표현으로 점차 바뀌어 가는 추세다.

역사는 사관의 문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역사관 없이 기계적 객관성이나 정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준을 무분별하게 따른다면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는지 모른다.

두 차례나 설명자료를 내놓은 궁색한 변명이 무색하게 9일 교과위 국감에서 민주통합당 김태년 의원의 질의를 받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검증 심의에 대해 당시에는 보고를 받지 못해서 수정 권고 내용을 뒤늦게 알았다"며 "절차를 밟아야 하겠지만 (문제가 된 권고 사항들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말해 편찬위의 이중잣대를 드러냈다. 하루빨리 올바른 사관이 담긴 역사교과서 그리고 편수자료가 마련돼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는 이한열 열사 사진이 역사교과서에서 빠지게 된 국사편찬위의 권고에 대하여 10월 16일(화) 오전 10시 30분에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항의 방문한다.




덧글

  • 지나가던과객 2012/10/14 10:37 # 삭제 답글

    그건 교과서 탓이 아니라 시험문제로 출제 안하는 어른들 탓입니다.
    6.25나 이한열씨 관련해서 수능에 시험문제로 출제가 된다고 해보세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거기에 대해서 대충 어떤 내용인지 자연히 알게 될걸요.
    시험에 출제 안하니 거기에 대해 공부를 소홀히 하고 그럼 자연히 모르는 거죠.
  • 페이토 2012/10/14 17:56 #

    엄연히 국사, 한국근현대사 교과과정이고 따라서 소위 "시험범위"인데 무슨 말씀이신지.
  • ... 2012/10/15 00:54 # 삭제 답글

    중학생 교과서에 성노예라고 나오면...
    발랑 까진 천조국 고등학교 교과서도 성노예라고는 안 쓰고 완곡하게 표현했드만...(유학출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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