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른 삶으로 다른 세상 꿈꾸는 극단 '걸판' OhmyFreedom 대학생기자단

대학로 공연? 됐고...무선 마이크 3개면 '끝'
[인터뷰] 다른 삶으로 다른 세상 꿈꾸는 극단 '걸판'
11.08.26 10:26 ㅣ최종 업데이트 11.08.26 10:26 박솔희 (jamila)
 
<서울신문>과 <부산일보> 두 곳에서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8월 초 열린 2011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대상과 연출상 수상. 한 해 150회에 달하는 엄청난 공연 횟수…. 대학로에 자리 잡은 유명 극단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경기도 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당극단 '걸판' 이야기다.

극단 걸판의 슬로건은 '정의로운 천하극단'이다. 실력이 있을 뿐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수상작인 <그와 그녀의 옷장>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모티브로 만든 노동극이며, 신춘문예 당선작인 <아빠들의 소꿉놀이>는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 가장들의 이야기다.

극장에서도 공연을 하지만, 걸판의 에너지는 현장에서 나온다. 반값등록금 집회, 노동조합의 파업 현장, 농민대회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투쟁 현장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걸판진' 웃음으로 녹여버린다.

투쟁은 즐겁고 희망차야 하기에, 걸판의 작품은 대부분 코미디다. 깔깔깔, 폭소를 자아내는 배우들의 재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웃다보면 어느새 눈가에는 감동의 눈물이 맺혀 있는 식이다.

  
극단 걸판의 단원들. 왼쪽부터 오세혁, 최현미, 안진영(그네), 박정길, 강동효 단원.
ⓒ 박솔희

노동자들의 이야기 '폭소'로 전하는 걸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었죠. 형과 함께 고아원에서 불행하게 자랐어요. 그런 사람이 전 세계인의 배꼽을 잡는 최고의 코미디를 만든 겁니다.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웃지 않았으면 미쳐버렸을 거라고 했어요."

걸판의 배우, 작가, 연출가이자 올해 신춘문예 당선의 주인공인 오세혁 단원(31)은 채플린을 언급하며 웃음의 힘을 강조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노동자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요. 우리 작품인 <그와 그녀의 옷장> 같은 경우도 비정규직 이야기죠. 하지만 대놓고 구호를 외치거나 욕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결국은 그런 메시지를 남기는 거니까."

걸판은 마당극단이다. 그래서 정해진 무대보다는 '아스팔트' 현장을 더 많이 다닌다. 마당극이 흥하던 1980~1990년대에는 실력 있는 극단도 많고 불러주는 현장도 많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그렇지 못하다. 노동조합도 농민회도 시민사회단체도, 극단을 부를 만한 예산도 없고 그만한 무대도 갖추기 힘들다. 큰 극단은 아무래도 세트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학로 극장들이나 지역 축제 위주로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걸판은 '박리다매'를 선택했다. 무선 마이크 3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간소한 공연을 많이 한다. 100분짜리 공연도 있지만 15분, 20분짜리 단막 레퍼토리도 여럿 준비돼 있다. 그럴듯한 무대에서 세련된 공연을 한번 하는 것보다는 현장을 자주 가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걸판에는 더 의미 있기 때문이다. 잦은 공연을 통해서 배우들의 기량도 탄탄하게 다져진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연상시키는 노동극 <그와 그녀의 옷장>
ⓒ 걸판 제공

대학로 무대 버리고 선택한, '박리다매' 전술

걸판은 2005년 처음 결성된 젊은 극단이다. 배짱도 좋다. 모두 대학로만을 주목할 때 안산이라는 불모지에 터를 잡았다.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극장에서 안정적으로 공연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막상 극장에서 공연하는 팀은 오히려 고민이 많아요. 대관료가 엄청 비싸거든요. 한 달 공연하고 나면 천만 원, 이천만 원 빚을 지는 일이 허다하고, 돈 버는 건 건물 주인뿐이에요. 그래도 대학로를 떠나지 못하는 거죠.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쪽에만 집중이 되니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용기는 오히려 현실 고민까지 어느 정도 해결해줬다. 걸판은 극단 중에서는 드물게 '월급'이 나오는 팀이다. 상황이 어려운 대학로 극단들은 배우들이 생계를 위해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만큼 연습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월급이 나온다 해도 평범한 직장인에 비하면 적다. 안진영 단원(26)은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걸판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지만 이 길을 온 이유에 대해 "뭔가 남는 게 있어서"라고 한다.

"회사 생활 하면 돈도 벌고 안정적이겠지만, 거기서 얻는 게 없었어요. 그냥 나는 일을 하고, 그만큼 월급 받고, 그게 전부죠."

최현미 단원(31) 역시 같은 생각이다. 걸판의 창단 때부터 참여한 그녀는 대학 시절 광고쟁이를 꿈꾸는 인재였다.

"돈은 결국 버는 만큼 쓰는 것 같고, 살면서 어떤 재미를 갖고 살 거냐 하는 게 중요한 거죠. 돈 많이 벌어서 어디 휴양지 같은 데 다니면서 재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재미를 위해서 하루의 아주 많은 시간을 회사 책상 위에 붙어 있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이 해야 하잖아요. 저는 좀 덜 먹고 덜 입고 하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사에 고용되는 것은 결국 종속되는 거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폭이 무척 좁죠."

  
극단 걸판의 단원들
ⓒ 박솔희

"집주인은 될 수 없지만 삶의 주인은 될 수 있어요"

남들처럼 집 사고 차 사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극단이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가 월급 모아서 집 사고 차 사고는 절대 못하죠. 하지만 걸판 차원에서 공동 극장, 공동 차, 공동 주택 등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어요."

가치를 두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 강동효 단원(30)은 '집주인'보다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제 목적은 집 사고 차 사는 게 아니에요. 재밌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죠. 뭐 어떤 사람들은 집 사고 차 사는 게 재밌을 수도 있는 건데, 저는 그게 재미 없어요. 집 한 채 사기 위해서 그게 뭐하는 거야. 재미없잖아. 집주인 되는 것보다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게 저는 재밌거든요."

남들과 분명 다른 삶.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면서 생계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운이다. 극단 걸판의 단원들은 분명 남들보다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고 만족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집도 있고 차도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냥 그걸 포기하고 이걸 하는 거지. 갖고 살아야 하는데 빼앗기고 사는 건데, 그게 옳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삶을 살면서도 여전히 다른 세상을 꿈꿔요. 연극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믿어요."


덧붙이는 글 |
* 걸판 오세혁 단원의 신춘문예 당선작 두 편을 엮어 만든 연극 <크리스마스에 소꿉놀이를>이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상연됩니다. 일반 2만 원, 대학생 1만5천 원, 초중고생 1만 원. 문의 및 예약 02-763-1268.
* 박솔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 : 대학로 공연? 됐고...무선 마이크 3개면 '끝'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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