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명품백'도 공장에서 찍어낸 거잖아 - <명품 판타지> 서평 OhmyNews - review

당신 '명품백'도 공장에서 찍어낸 거잖아
[서평]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명품 판타지'의 실체
11.07.04 11:20 ㅣ최종 업데이트 11.07.04 11:20 박솔희 (jamila)
 

패션의 역사는 인류의 태동과 함께 시작됐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것도 실을 잣고 옷감을 짜는 방적과 방직, 즉 패션 산업이었다. 조선시대 여인들만 해도 머리숱이 풍성해 보이려고 수 킬로그램에 이르는 가채를 머리에 얹고 다니지 않았나.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패션에 대한 욕구는 고래로 강력했다.

'명품'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점령했나

  
<명품 판타지> 겉그림
ⓒ 레디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패션이 강력하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명품'이라고 불리는 고가 브랜드의 위용은 하늘을 찌르다못해 뒤흔드는 수준이다. 지난 2010년에는 유명 명품 '루이비통'의 인천공항 입점 성사를 위해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직접 공항까지 나가서 루이비통이 속한 LVMH 그룹의 회장을 영접하기도 했다. 백화점에서도 이른바 명품이라고 하는 고가 수입 브랜드들은 파격적인 입점 수수료나 유리한 매장 위치 등 파격적인 혜택을 받고 있는 편이다.

왜 모두가 명품에 목을 매게 되었을까? <명품 판타지>(류미연, 김윤성 저, 레디앙 펴냄)는 '럭셔리(luxury)'라는 단어의 번역에 함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본래 럭셔리는 '사치품', '사치재'라는 뜻이지만 한국의 패션 미디어가 영리하게도 이를 '명품'이라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사치품'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싹 제거하고, 다만 고급스럽고 품격 있다는 느낌만을 남겼다. 그리고 그 전략은 매우 유효했다.

이미지 형성 뒤 대량생산하는 '명품'... 판타지를 팝니다

패션은 판타지를 판다. 행복한 여인이 될 것 같은 판타지,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울 것 같은 판타지, 그 남자가 나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판타지, 중산층 아메리칸이 된 것 같은 판타지다. -<명품 판타지> 38p

'3초백', '5초백', '지영이백'… 모두 명품 가방에 붙어있는 애칭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3초에 한 번씩 마주칠 수 있다고 해서 3초백, '지영'이라는 여자 이름만큼이나 흔하다고 해서 '지영이백'이다. 진품이든 '짝퉁'이든, 여성들이 명품 가방을 들고 싶어하는 것은 '판타지' 때문이다. 명품 가방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의 인생마저 명품이 되리라는 판타지 때문이다.

사실은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제품들 역시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수작업으로 소량만 생산하는 제품들을 통해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한 다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들은 가격을 낮추고 대량 생산하는 매스티지(Mass+Prestige)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소비자는 명품이 아니라 명품의 판타지만 사고 있는 셈이다.

탄탄한 구성, 지루하지 않은 전개... 군더더기는 아쉬워

<명품 판타지>는 일방적인 판타지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에게 "게임의 룰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사치품이 명품으로 둔갑한 마케팅 전략을 간파하는 것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명품 브랜드의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패션계의 모더니즘 혁명가였던 샤넬을 중심으로 책의 전반부를 이끌어 나간다. 토털 패션의 시초인 샤넬에서 시작해 유니클로(UNIQLO), 자라(ZARA) 등으로 대표되는 스파 브랜드까지 샅샅이 훑고 있다.

패션의 모더니즘을 선언한 샤넬의 이야기로 시작한 책은 우리 시대의 유행, 우리 시대의 패션 혁명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문을 닫는다.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에코 스타일'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패션 잡지가 정치나 사회의 문제를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환경과 생태에 대한 부분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도 한다.

샤넬과 모더니즘 예술가들의 재미있는 일화에서부터 섹스 앤 더 시티, 빅토리아 베컴의 이야기 등을 담아 지루하지 않은 흐름을 보여준다. 일본과 프랑스 등지로 취재를 다녀오는 등, 책을 쓰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게 한다. 전반적인 짜임새도 탄탄하다.

'사치품'을 '명품'으로 둔갑시킨 네이밍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 제목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명품 판타지의 허구를 파헤치는 것보다는 코코 샤넬의 삶을 조명하는 데 더욱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이라기에는 군더더기가 많아 정돈이 덜 된 글매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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