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극작가들 - 오세혁, 정소정, 김경란, 최현미 대학내일

  • 극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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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이란 묘하고도 괴이한 것이어서 우리는 만났다. 2011년 신춘문예에 수줍게 작품을 내밀어 최종심까지 오르거나 당선이 됐고, 올 봄 그 작품들이 모두 무대에 오른다. 대학로에 위치한 극작가들의 모임인 ‘라푸푸 서원’에서 따로 또 같이 공부하던 문우이며, 올해로 모두 서른을 맞이한 81년생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하다.
    신예 작가가 자기 작품을 상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극작이라는 거친 세계를 함께 탐험할 든든한 친구들을 얻는 일은 더욱 어렵다. 스물두 살 리포터에게도 이들은 소중한 친구요, 인연이다. 술과 연극, 글과 삶에 대한 애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는 만났다.



    오세혁
    극단 걸판의 배우, 작가
    2011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동시 당선 (서울신문에 ‘아빠들의 소꿉놀이’, 부산일보에 ‘크리스마스에 삼십만원을 만날 확률’)
    존경하는 인물은 찰리 채플린. ‘채플린 깊이보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정소정
    공기업 퇴사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가을비’로 최종심에 오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에 ‘뿔 자르는 날’로 최종심에 오름.
    알고 보면 팜므 파탈?! 네 명 중 유일한 기혼자.

     

    김경란
    출판사 근무 중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그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로 최종심에 오름.
    직장에선 제 정체를 몰라요. 이래봬도 방자 출신.

     

    최현미
    극단 걸판의 배우, 작가
    2011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에 ‘팬티하우스 블루스’로 최종심에 오름.
    촉망받는 광고인이 될 뻔 했으나, 지금은 천생 배우!

    자기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니까 어때요?
    소정
    진짜 좋아. 작품을 쓰면서도 ‘이걸 누가 알아보고 무대에 올려주려나’ 하는 생각이 계속 있거든. 아무런 기약도 없이 계속 쓰다가 막상 그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고, 그걸 봤을 때 진짜 놀라운 거지.
    세혁 못 올라가는 희곡도 굉장히 많으니까. 나는 극단 생활을 하니까 작품을 쓰면 우리 극단에서 무대에 올렸기 때문에 그런 괴로움은 없었어. 막상 신춘문예 당선되고 다른 극작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들 그런 목마름이 있구나, 내게 행운이 좀 있구나’ 생각하게 됐지.

    어쩌다 극작을 하게 되신 거죠?
    경란
    고등학교 축제 때 연극을 했어. 춘향전을 했는데, 아무도 방자를 안 하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할 사람 없으면 내가 할게’ 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완전히 얼어버린 거야. 애들이 완전 비난을 퍼붓고. 그게 트라우마가 됐어. 나중에 직장 다니면서 연극 관련 키워드로 찾아보다가 ‘라푸푸 서원’이라는 곳에 극작 클래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
    현미 아! 그걸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구나.
    경란 응. 이 트라우마를 해결해야겠다, 콤플렉스를 극복해야겠다, 생각했지.
    일동 (탄성) !
    솔희 자신의 트라우마와 맞서는 게 쉽지 않은데.
    경란 왜, 영화에서 배트맨도 어릴 때 박쥐를 무서워했잖아. 그 트라우마로 인해 두려움을 갖다가 그렇게 된 거래. 영화 스토리가.
    솔희 처음 트라우마를 가진 건 무대 위잖아요. 그런데 극작 수업을 들으셨네요?
    경란 대리인을 내세우는 거지. 나는 항상 열등감이 있고 콤플렉스 덩어리인 사람이라 직접 무대에 서진 못하지만,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고 할까?
    일동 멋있다!
    솔희 세혁, 현미 두 분은 대학 동아리에서부터 연극을 시작하셨죠?
    세혁 ‘한우리’라고 풍물패였어. 평소엔 풍물 치고, 일 년에 한 번 정기공연 할 때는 마당극도 한 번씩 만들어서 하고 그랬지. 본격적으로 내가 하게 된 건 ‘큰들’이라고, 진주에 있는 마당극단이 초대받아서 왔는데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어. 예를 들어서 수입농산물 때문에 괴로워하는 농민들 얘기 같은 거, 어떻게 보면 대학생들이 관심 갖기가 어려운데 그걸 잘 풀어내니까 다들 집중해서 보더라고. 연극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거구나, 싶어서 좋더라고.
    솔희 그래서 그 동아리 친구들을 중심으로 지금 활동하는 ‘걸판’이라는 마당극단을 만드신 거죠? 대학시절 동아리는 대개 동아리 활동으로 그치는데 그걸 어떻게 계속하고 극단까지 만드실 생각을 했어요?
    현미 선배들이 졸업하고 전문 풍물패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걸 봤어. 그걸 보니까 아, 우리도 그냥 취직할 수도 있지만 이런 길도 있구나 생각했지. 아까 말했던 큰들이라는 데도 또 경상대학교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거거든.
    솔희 보통은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이렇게만 가야 된다’ 길이 정해진 것처럼 생각하고, 또 그게 잘 안 되면 우울해하고.
    소정 그런 비전만 제시하니까. 거기서 벗어나면 완전 큰일이다, 낙오자다 해버리니까.

    왜 하필 희곡이었어요?
    경란
     내 작품이 문학성이 강하다고 소설을 써보면 어떠냐고 권하는 분들도 있는데, 난 다른 건 별로 안 쓰고 싶어. 좋은 글은 물론 다 의미가 있고 생명력이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그냥 글자고 죽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걸 사람의 목소리에 얹어서 생명력을 주는 게 좋아.
    솔희 작품이 의도대로 안 나오면, 좀 싫을 거 같은데.
    경란 물론 희곡을 쓸 때 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그려지는 건 항상 있어. 배우가 내 생각과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냥 그 말의 운명이야. 말이란 게 살아있는 거라서, 지가 이렇게 나가서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
    소정 소설 같은 건 작가가 혼자 완성하는 거잖아.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은 다 다르겠지만. 그런데 희곡은 그 작가가 작품에 대해서 뭐라고 보장을 할 수가 없어.
    솔희 그런 게 극작의 매력인가요?
    소정 매력인 동시에 작가에겐 엄청난 고통인거지.
    솔희 치명적인 매력이군요.
    세혁 항상 미완성인 거지. 아직도 셰익스피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잖아. 계속 나오고 계속 바뀌니까. 힘든 동시에 매력이 있지.
    소정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 드라마도 좀 써봤어. 그런데 내가 가진 에너지는 TV 드라마하고는 맞지가 않더라고. 내가 항상 관심을 가지는 건 사람들이 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고, 그런 것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싶어. 그런데 드라마라는 건 밥을 먹다가, 드러누웠다가, 화장실도 갔다 오고, 그렇게 보는 장르잖아. 소재에 제약이 굉장히 많아.
    솔희 아무래도 대중성이 강한 매체니까.
    소정 그러니까 몰입해서 봐야하는 걸 쓸 수가 없어. 똑같은 얘기라도 희곡으로 쓴다면 다르겠지. 극장이라는 곳은 정말로 그걸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와서 집중을 하고 보는 공간이기 때문에.
    경란 영화랑은 어떻게 달라?
    소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영화도 좋은 매체지. 대학 다니면서 만들어보기도 했고, 나중에 또 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래도 연극이 제일 좋은 게, 연극은 말의 예술이거든. 특히 어떤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데는 희곡만큼 좋은 장르가 없어. 영화에선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촌스러워져. 보여주는 성격이 더 강하고, 테이크에 대한 계산이고. 많이 다른 작업이야.

    작품 얘기 좀 해주세요.
    현미 
    난 대학교 다닐 때 알바를 무지 많이 했어. 등록금 버느라고 그랬지. 그 중에 하나가 신촌로터리에 있는 속옷가게에서 일하는 거였고, 그 때 경험으로 ‘팬티하우스 블루스’를 쓴 거야. 일하다보면 그냥 내가 말 그대로 시간을 버리고,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그저 ‘한 시간을 보내면 나한테 4천원이 떨어지지’ 하는 그런 젊음이 너무 싫었던 거야.
    경란 어떤 정신과 의사가 그러더라.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건 공부가 된다고. 하나도 낭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소정 특히 작가한테는 그렇지. 다 경험이 되니까.
    세혁 황석영 같은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사람은 보따리 매고 돌아다녔잖아. 그냥 그걸 쓰면 되는 거야.
    솔희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이 실제로 그렇게 시간 아깝다, 불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 같은 경우도 작년에 휴학 하고 본가 내려가서 놀았는데 그 얘기 하면 날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려 드는 선배로 있었어요.
    경란 사람들이 뭘 안하면 불안해 해. 잠깐이라도 자기를 한 번 돌아보고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좋은데, 다들 부산해. 강박증이 있는 거 같아.
    현미 나도 알바 할 때 항상 뭘 하고 있었거든. 알바 하러 왔으면 그냥 알바만 하면 되는데 이 시간에 뭘 안 하고 있으면 죽을 거 같아서 뭘 자꾸 붙잡고는 있는데 사실 싫거든. 그 때 차라리 많이 놀고 세상도 보고 그랬으면 더 좋았을 거 같아. 좀 더 놀걸. 어설프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솔희 사실 요즘은 등록금도 비싸고 여러 가지 사회 환경 상 초조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현미 나는 4학년이 거의 끝날 때까지도, ‘걸판’을 만들기 6개월 전까지도 그냥 취직할 생각이었어. 광고홍보학과였는데, 재밌었어. 학회도 하고 광고도 찍고 공모전도 해보고 정말 많이 했지. 이런 저런 광고 캠프, 홍보 캠프 같은 데도 찾아가서 열심히 듣고. 그런데 4학년 말 광고제에서 이 길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 팀별로 경쟁 PT를 했는데, 우리 팀 작품이 광고제 취지에 잘 맞아서 교수님은 우리를 뽑으려고 했지만, 사장님 마음에는 안 들었던 거야. 광고가 그렇거든. 아무리 크리에이티브가 어쩌고 해도 광고주‘님’이 그냥 이효리 나오는 걸로 합시다, 해버리면. 난 여름방학을 다 바쳐서 만들었는데 사장이 별로다 하면 끝나버리니까. 그래서 아, 이 길을 가면 이게 반복이겠구나, 나한테는 안 맞는구나 싶었어.
    솔희 그게 진짜 좋으면 아무리 까여도 좋았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던 거죠?
    현미 그동안 내가 노력했던 게 아깝기도 하고 속으로 갈등이 많았어. 그래서 그 시절의 나를 좀 해소하고 싶어서 작품을 쓴 거야.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요?
    소정
    작가들이 모이면 아무튼 말이 무지 많아. 지금 우리도 그러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야.
    솔희 세혁씨는 ‘작가는 팔아먹을 상처가 있어야 해’라는 말 참 좋아해요. 그런데 그렇게 상처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겉으로는 더 밝잖아요? 참 이상하죠.
    세혁 나는 그게 방어기제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 더 웃기거든. 자기 약점을 숨기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채플린 같은 경우도 그렇지.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죽고 어머니는 정신병으로 죽고 고아원에서 자랐어. 그런 사람이 최고의 코미디를 만들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슬펐기 때문이야. ‘자기는 웃지 않았으면 미쳤을’ 거라고 채플린이 이야기하는데, 그게 맞는 거야 진짜.
    소정 작가가 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인 거 같아. 그래서 상처도 잘 받고. 겉으로는 밝아 보여도 속으로 다 쌓이는 거지.

    앞으로 네 분, 어쩌실 셈이에요?
    세혁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몇 달 안 됐고 아직 뚜렷한 계획 같은 건 없어. 뭔가 긴밀한 동인 관계로 가도 좋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네 명이 같이 희곡을 쓰고 있으니까 서로 작품도 공유하고. 그렇게.
    소정 사실 일이라는 거, 작업이라는 건 아무런 인간 유대가 없어도 하는 거야. 중요한 건 친구지. 평생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라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정말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 서로 웅변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참 좋아.
    현미 사람이 제일 중요해. 만나야 하는 거지.
    솔희 단순히 동갑내기라는 걸 넘어서, 뭔가 맞는 지점이 있으시니까 또 만나는 거잖아요?
    소정 서로의 작품이 좋으니까. 작품이라는 건 노력의 결과이지만 그게 또 쓴 사람의 마음이잖아?

    걸판 5회 정기공연: 걸판 단막극장
    4월 23일(토)과 24일(일)에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걸판’ 정기공연이 열립니다. 오세혁 작가의 ‘아빠들의 소꿉놀이’, 최현미 작가의 ‘팬티하우스 블루스’가 양일간 4회(매일 오후 4시, 7시 30분) 공연됩니다. 공연이 끝나고 받은 감동만큼 지불하는 ‘감동 후불제’ 무대입니다. 많이 보러 와 주세요!


    - 박솔희 학생리포터 jamila@daum.net 사진 STUDIO ZIP 이운영

    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qd1Xv5nyiJMw3PiAlTtg28DIvxOyUeWVRkUAVO63IoWMUB1NJmJRXg%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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