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숙박 On the Road - 22 겨울 여행

길 나선지 삼일째. 포항에서 울산 가는 기차 안. 열차는 아주 느리게 달린다. 좌석 네 칸을 차지하고 앉아 다리 쭉 뻗고 아이폰 충전하고 양말 말리고 경주 양동마을에서 산 약과까지 풀어놓고 먹으면서 간다.

가난하고 젊고 그런데 겁은 별로 없는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이다보니 자연히 숙소는 찜질방을 애용하게 되는데 이게 참 재밌다.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고급 온천 사우나가 있는가 하면 그냥 동네 목욕탕 같은 곳도 있는데 사실상 대부분의 찜질방이 후자다. 아주머니들이 시끌시끌 수다를 떨면서 설 음식이 어쩌구 올케가 어쩌구. 오늘 아침 포항 중앙사우나엔 무지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오셨는데 다른 아주머니가 "아이고 할마시" 어쩌구하면서 춥다고 드라이어로 머리도 말려 주고 "어째서 이리 멀리 왔능교" 하면서 "내가 우리 엄마한테도 이리 몬한다"며 즐거웁게 아줌마들끼리 깔깔깔 환담을 나누는 풍경이 참 보기에 좋았다.(사,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음) 엄마가 딸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그런 편한 모습들. 불혹이 넘은 나이임에도, 청보리밭에 선 소녀의 그것처럼 자유로이 풀어헤친 웃음들.

찜질방에서 자는 게 불편할 때도 있지만 겨울이다보니 뜨시게 지지고 잘 수 있어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이런 저런 알바를 하면서 전국의 온갖 숙박업소들을 겪어본 경험상, 어설픈 모텔보다는 깔끔한 찜질방이 오히려 나은 경우도 있고.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지역은 영 한정적이니...

찜질방도 다니다보면 꼭 나같은 내일로어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용건이 없어서 굳이 말을 걸진 않았지만 그 또한 참 재미있는 일이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둘이서 저만큼 짊어지고 다니는구나. 내일은 어딜 가려는구나. 남들은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지 훔쳐보고 엿듣는 재미.


덧글

  • 2011/01/28 23:27 # 답글

    찜질방 ㅎㅎㅎㅎ 겨울엔 찜질방이 참 좋은것 같아요 ㅋ
    추운날 빨빨 돌아다니다가 밤에 뜨끈하게 지지면 피로가 싸악~
    그리고 마주치는 많은 내일러들 ㅋ 말걸어보지 않아도 알아볼수 있는... 온몸으로 '나 내일러다' 라고 발산하고 계신분들이 한가득 ㅋ
  • 미운오리 2011/01/29 00:00 #

    온몸으로 발산ㅋㅋㅋㅋ 여름엔 더 명확하죠 무조건 밀짚모자에 티켓 목에 걸고다님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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