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9 연희단 거리패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공연 리뷰


오후 세 시, 대학로 예술극장 3층의 대극장 앞은 꽤나 붐볐다. 좌석이 거의 찼다. 재작년엔 여기서 '햄릿'을 봤다. 대극장은 아니었고 조금 작은 상연관에서. 오늘 공연은 오영진 원작의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각하'. 작년 여름에 밀양 연극제에 갔을 때부터 기회가 된다면 한 번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한 극이었는데 세혁씨 초대로 걸판 단원들과 함께 보게 됐다. 운이 좋았다, 고맙게도.

역시 연희단 거리패, 싶었다. 대사에 살아 있는 말맛이라든지, 상당히 정교한 미쟝센도. 소품이나 세트가 간소한 소극장 공연도 나름 매력이 있지만 섬세한 미술적 요소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대학로에 넘쳐 나는, 일부 수준 떨어지는 무게감 없는 공연과 달리(그렇다고 꼭 무게가 있어야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고한 뿌리가 있는 느낌이라 굉장히 든든한 기분이다.

오영진 원작의 희곡 그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이윤택 감독의 연륜, 연희단 거리패의 실력이 더해진 훌륭한 극.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호흡, 발성, 연기력 모두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극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들도 짚어 보자면, 전반부가 불필요하게 길어서 이중생의 등장이 늦어진 점. 불필요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짜임새의 문제일 듯 싶다. 연회를 준비하는 과정보다는 장례 이후의 상황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복선도 뭣도 아닌 부분이 너무 길어서, 여기서 지루함을 느껴버린 관객들이 꽤 있지 않았나 싶다. '도대체 이중생은 언제 나오는 거야?' 하면서. 실제로 연극 끝나고 나오면서 사람들 떠드는 거 귀동냥한 얘기도 있고... 하지만 원래 연희단 거리패 극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야 충분히 즐길 수 있었겠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들이 이중생에게 던지는, "챙피하지 않아요?" 그 외마디 호통이 굉장히 연희단 거리패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은 파격적이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어 지는, 그런. 후반부에 송달지가 부인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이나, 뺨을 때리는 장면도. 순간순간 살짝 깜짝 놀라게 되는 장면들.

마지막, 이중생의 죽음은 정말 엄청났는데, 영화의 슬로모션마냥 천천히 뒤로 넘어가는 모습에 거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다. 저걸 연극에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더욱 깊은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나서 이중생은 다리를 긁다가 옆으로 돌아 눕는다. 같이 연극 본 사람들과 이야기한 것에 따르면 모성 회귀가 아니었겠는가, 해서 납득이 되긴 했지만 내 생각엔 그냥 쓰러진 그대로 암전되고 극이 끝났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특히 죽어가는 자가 다리를 긁는 모습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지극히 하찮아 보이는 지점-가려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풍자적 암시였겠지만, 그냥 볼 때는 뭔가 감이 확 오지도 않고 썩 우습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극 전체적으로 적절한 웃음 코드가 배합되었고 충분히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 극을 '코미디'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풍자극이고 부조리극이고 비극 아닌가? 이 공연이 '제1회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의 일환이라는 점은 나중에야 알았는데 사실 그런 타이틀에 걸맞을 만큼 웃겼는지는... 뭐 코미디라는 것이 개콘, 웃찾사처럼 빵빵 터지는 것만 말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그런 웃음을 기대하고 본 것도 아니었고. 내가 생각할 때 이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벌에서 가장 웃겼던 지점은 공연장 앞에 세워져 있던 엑스배너의 문구...

대학로 코미디페스티벌이 연평도에서 용맹함을 보여준 해병대를 응원합니다. 해병대 현역 및 해병대 예비역이 전우복을 입고 극장에 오시면 본인에 한해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동반자 5000원)

아무리 연극이 보고 싶어도 누가 대학로에 전우복을 입고 오겠냐(혹시 이거 결행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인증샷을 트랙백해주시면 새해맞이 큰웃음 감사...)고 혀를 내둘렀는데... 나중에 티켓 자세히 보니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 후원으로 돼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그런지... 아무튼 ;_; (웃긴 것은 아니지만 헌혈증을 가져오거나 낙도주민을 위한 책 3권 이상을 기증해도 무료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함. 뭐 취지는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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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엔 이번에 세혁씨 희곡을 연희단 거리패에서 상연하게 되는 인연 등등 덕분에 단원들이 생활하는 곳에 가서 이윤택 감독님과 또 다른 여러 선생님들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이런 저런 말씀들 들으면서 괜히 거장이 아니구나, 역시 선생님들은 생각하시는 수준이 완전 다르구나 확 느꼈다. 작년 밀양 연극제에서 인상 깊게 봤던 '한 여름 밤의 꿈' 연출하신 남미정 선생님도 가까이 봴 수 있어 영광이었다. 되게 곱고 밝고 젊으신 분이었다.
공연 마치고 피곤하셨을 단원 분들께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지만 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닼. +_+ㅋ

p.s. 리뷰는, 처음엔 별로 쓸 말 없다묘 간단히 몇 줄 적으려고 시작하는데 항상 끝은 비대해지고 만닼. ㄷㄷ


덧글

  • 연희단단원중. 2011/01/10 16:16 # 삭제 답글

    와 이런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연희단거리패 단원 이기도하고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에 출연한 배우이고
    그때 같은 자리에 식사준비를하던 단원이기도 하네요 ㅋㅋㅋㅋㅋ^^

    히히 갑작스레오셔서식사를하셔서 불편하셨겠지요~~~~
    좋은 평가와 극에대한 신중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고 참고할게요^^
  • 미운오리 2011/01/15 02:10 #

    앗. 불편했다기보단 오히려 폐를 끼쳐 죄송할 뿐이지요!!
    좋은 극 잘 보았어요, 앞으로도 기대합니당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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