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근데 난, 바르게 안 살 건 데 ? 대학내일

- 근데 난, 바르게 안 살 건 데 ?544호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취업 준비 잘 하고.’ ‘어른들 말씀에 토 달지 말고.’ 남의 말 잘 듣고 남이 시키는 거 하는 게 ‘바르게’ 사는 길이라면, 나는 별로 바르게 살고 싶지 않다. 따분한 바른생활소녀가 되느니, 행복한 불량소녀가 되리라.



편리한 모범생 안전한 알파걸… 트러블메이커가 되지 않기 위하여
이십여 년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간혹 받았던 상장에 쓰인 것처럼 ‘타의 모범이 되었던 적’은 별로 없으나 대체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 왔다. 남들이 안 하는 짓을 조금 하기는 했어도 남들 다 하는 일을 빠트리지는 않았다. ‘정상적으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수능을 치러 성적에 맞는 대학에 왔다. ‘열정’과 ‘긍정’의 힘으로 가득 차서 ‘스펙’을 쌓고 ‘경험’을 찾았다. 간혹은 장학금도 받을 만큼 ‘열공’을 했고, 빼곡한 이력서와 화려한 자소서 스킬에 부러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어쩌다 삐딱선을 타고 싶은 기분이 샘솟으면 “정신 차려, 이 친구야” 머리를 쨍 하고 울려주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다시금 ‘노력’의 이유를 찾아내기도 했는데 분명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였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점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간신히 두 해를 버텨낸 뒤에는 부랴부랴 짐을 싸서 서울생활을 청산, 도망치듯 본가로 내려가 꽁꽁 숨어 버려야만 했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대학생다운 열정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최선을 다했으나, 어째서 나는 갑갑했던 걸까. 열정도 패기도 없이 우울한 기분으로 아무 것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깨달았는데 그 갑갑증의 원인은 내가 너무 ‘바르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미디어가 하라는 대로. 기업이 원하는 대로. 사회가 권하는 대로. 요구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불만 갖지 말고. 남의 말을 잘 들으면, 그저 웃으며 모든 상황을 긍정주의로 치환하면, 모든 게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자책하며 더 열심히 하면 나아질 거라고 희망고문을 해대면, 참 편리하다…… 안전하다…… 피곤하지 않다…….



긍정의 힘? 웃기지 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노력하면, 간절히 바라고 굳게 믿으면,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날마다 상상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그러니까 힘내라고, 이기라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싸우라고? ‘파이팅, 힘내, 울지마.’ 이 아름답고 희망적인 단어들은 때로 지독한 폭력이 된다. 기운 없어 죽겠는데 나보고 왜 힘내래. 우울한데 난 울지도 못하나. 감정의 진폭은 억압당한다. 무절제한 감정의 발산이란 ‘바른 것’이 아니라서다. 그렇다면 나는 바르고 싶지 않아. 세상을 다 가진 듯 마음껏 기쁘거나 남의 눈치 안 보고 충분히 슬퍼하고 싶어.



바른 생활은 내 스타일 아니야
가족력 탓에 몸이 아파 한동안 ‘바른 생활’을 했다. 8시 기상 12시 취침. 아침 꼭 챙겨 먹기. 복식호흡과 족저근 운동 열 세트씩. 커피?설탕?밀가루?우유?술(세상의 모든 맛있는 것) 금지. 대학생이 된 뒤 가장 건전한 생활을 했다.
잠을 규칙적으로 자니 제 때 밥을 챙길 수 있었고, 수업에 늦지 않고 집중도 잘 됐다. 공강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해 과제도 밀리지 않았고, 밤을 새워 벼락치기 하는 일은 없어졌다. 음식을 가려 먹으니 소화가 잘 되고 안색이 맑아졌다. 몸도 생활도 건강해졌다. 문자 그대로의 웰빙이고 바른 생활, 아주 모범적이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석 달쯤은 지속했어야 할 생활 패턴을 한 달 만에 (의사 선생님 몰래) 폐기한 것은 역설적으로 ‘삶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다. 몸이 바라는 것과 마음이 바라는 것이 늘 같지는 않은 탓. 주당은 아니라도 즐기던 술을 못 마시니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었고, 아침마다 테이크아웃하던 아메리카노를 끊으니 단골 카페 사장님들과도 괜히 소원해지는 것만 같아 섭섭했다. 파스타를 못 먹는 건 괜찮았지만 식사와 취침을 중심으로 생활이 결정돼 버리니 말 그대로 먹고 자는 걸 빼면 집과 학교, 병원 뿐. 공강 시간에 친구랑 맛난 걸 먹지도 못하고 술 약속도 잡지 못하니, 간 안한 반찬마냥 그저 심심한 일상이었다. 싱거운 게 몸에는 좋다 하지만 맛은 없었다.
육신과 일상 양쪽에서 소금기가 쫙 빠졌을 즈음 오랜만에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 인생 상담을 하게 됐다. 새벽까지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사이에 두고 떠들어댄 뒤 할증 붙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왠지 배시시 웃음이 났다. 분명 건강에 해로운, ‘웰빙’과는 거리가 먼, 의사 선생님이 듣는다면 잔소리를 퍼부어댈 행동들이었는데 왜 흐뭇했을까. 살아 있음, 이라고 적으면 좀 과하고 아직 젊음, 을 재삼 자각했달까. 이런 게 젊음이지, 이게 바로 삶이지 싶어서. 규칙적인 일상성의 파괴는, 고딩 시절의 자습 땡땡이처럼 신나는 일이었다. 즐거웠다. 밤이 깊어져도 잠은 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스스로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권리의식을 부단히 발현하니, 분방한 생활에의 열망은 지극히 파괴적이었다. 원하는 대로 먹고 마셨고, 할증 붙은 택시뿐 아니라 할증 풀린 택시, 막 다니기 시작한 첫차 등을 애용하여 귀가하곤 했다. 어차피 삶 자체가 건강에 유해한 것 아니던가. 천천히 죽어가거나, 조금 더 빠르게 죽어가거나, 속도의 차이 아니겠어?
새벽까지 놀고 난 다음날은 분명 피곤하다. 피부는 푸석해지고 트러블이 한두 개씩 솟아나기도 한다. 숙취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오전 수업에 늦거나 아예 결석을 하는 일도 꼭 한 번씩 생긴다. 분명 올바른 일도, 바람직한 경우도 아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 걱정에 오늘 밤의 즐거움을 포기하지는 말기로 했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고서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불투명한 미래에 조바심치다 현재를 놓치는 건 바보짓이다.
비단 방탕하게 살겠다는 호기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의 안락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오늘 행복하고 내일 불행하거나, 오늘 불행하고 내일 행복하거나, 어차피 행복의 총량은 같지 않은가. 그러나 오늘의 인내가 반드시 내일의 열매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고, 오늘 즐긴다고 해서 꼭 내일 비참해지고야 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베짱이가 되는 쪽을 택하리라. 쓸모없어 보이는 농땡이를 부리며 시간을 보내리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리라. 누가 그랬더라. 술을 마시는 건 시간 낭비지만 마시지 않는 건 인생 낭비라고. 충분히 시간을 낭비하되 달콤한 내 인생은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으리라.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그렇게 했듯이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유예하는 법을 배우는 게 ‘바르게’ 사는 길이라면, 나는 별로 바르게 살고 싶지 않다. 내 멋대로, 실컷 불량하게 살 거다. 내 멋대로 못되게, 우울하지만 신나게, 파이팅 따위 외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 거다. 철없는 소리라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그럼 뭐 어때, 난 아직 젊고 이렇게나 행복한데.
thanx to 불량소녀 김현진

어떻게 젊은 사람이 해서 마땅한 짓만 골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젊음이 만약 있다면 그야말로 젊음의 수치라 할 만 하다. 그대들, 젊은이들이여! 할 수 있는 한 열렬하게 사시라. 연애든 뭐든. 그리고 너무 약은 선택만 골라서 하지는 말기 바란다. 좀 바보 같더라도 그대들 본능에 충직하기 바란다.
- 최성각 ‘인생기출문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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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희 학생리포터, 사진 김지영 문혜인 학생리포터 l jamila@daum.net ㅣ 2011-01-02 (10:31:35)

* 원문 링크
http://www.naeilshot.co.kr/special.asp?id=special&mode=view&idx=1445&page=1


덧글

  • 2011/01/05 09: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운오리 2011/01/05 13:16 #

    으악. 정말요?? ㅠㅠ 진짜 이런 가뭄에 콩나는 선플 덕분에 제가 글을 씁니다 ㅠㅠㅠㅠㅠ
  • 2011/02/13 08: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운오리 2011/02/13 10:16 #

    우와아. 탐닉 감사요 ㅠㅠ ㅋㅋㅋ
    김현진의 불량소녀백서나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같은 책 추천할게요!! 제 글이랑 기본 아이디어가 비슷^_^ 저도 그 책들 읽고 무지 좋았던. 그놈의 긍정, 사랑 요딴것들 때문에 우리 인생이 더 힘든 거예요 젠장 ㅠㅡ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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