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_ 수정이 만났다 자기탐구일지 2010

수정이를 처음 만난 것도 일 년 반이 훌쩍 넘었다. 여름에 보고 못 봤던 수정이를 오늘,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수정이는 내가 지난 일 년 반 동안 참여했던 우리 학교 잡지 '숨'을 창간한 편집장이다.

오래된 친구가 별로 없는 편인데, 오늘 수정이랑 이야기하다보니 우리가 굉장히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성장'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나, 또 지난 번에 만났을 때와, 오늘의 수정이는 상당히 달라져 있다. 잡지 하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해 앳된 얼굴에 터질 듯한 미소가 맺혀 있던 수정이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던 잡지 발행과 잡지사 운영에 지쳐 있던 그러나 여전히 꿈 많고 욕심 많던 수정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확히 발견하고 그 길을 향해 너무도 즐겁게 춤추며 나아가고 있는 수정이.
나 역시 많이 변했다. 오늘은 별로 표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수정이는 내가 꽤 차분해졌다는 걸 알아챘다. 신이 나서 여기저기 기웃대고 쏘다니는 거 좋아하던 시끄러운 망아지 같던 나, 잡지사에 많은 애정을 갖고 참여했지만 거듭된 실망과 좌절(이는 나 자신에 대한 것도 다분히 포함한다)로 어지러워하던 나, 수 년 동안 간직했던 장래희망을 깨끗이 정리하고 이제는 완전히 글 쓰는 사람이 되어있는 나.
돌이켜보면 '정치인'이라는 참으로 대범하고도 오만방자한(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오그라든다) 꿈을 오래 꾸다 그것을 정리한 계기가 숨이었다. 잡지에 기사를 쓰다보니 글 쓰는 게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다고, 언론정보학부를 2년째 다니면서 그제야 처음 결단했던 기억이 난다. 별로 신경쓰지 않던 <대학내일>을 비롯 여러 잡지에 관심을 갖게 해준 것도 숨이었다.(지금 내 삶에 있어서 대학내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를 상기해보면 재삼 숨이 고맙다.)

수정이가 내년 여름에 조기졸업을 하고 학석사 연계과정을 밟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사실 길지도 않은 일 년 반이 하세월처럼 여겨진다. 우리 둘 다 진짜 애기 때 만났는데. 나는 또 휴학을 할 거니까 아마 수정이가 석사를 마친 뒤에도 한참 더 있다가 학부를 졸업하게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어차피 학교엔 별 뜻 없고, 나름 준프로로서(지나친 표현이라고 여기는 독자가 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계속 글을 쓰고 있으며 조만간 프로가 될 가능성도 꽤나 엿보이기 때문에, 우리 둘 다 이제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줍음 많고 어려움 많던 수정이는 활달하고 편한 사람이 됐고, 겁 없이 시끄럽고 잘난 체 하기 좋아하던 나는 이제 아주 조금쯤은 분수를 아는 인간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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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반, 아니 거의 이 년에 더 가까운 시간 동안 네 권의 잡지를 만들었다. 그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별로 솔직하지 못했다. 괜한 상처만 주고 마는 것은 아닐까 입에 가득 머금고도 토하지 못한 말들을 전부는 아니라도 꽤 뱉아냈다. 수정이는 생각 외로 선선히 인정할 부분은 인정했고(사실 수정이가 왜 그런 직언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애가 너무 바쁘고 벅차 보여 그걸 폭발시키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도 나를 위한 자기방어였다. 진실로, 위선이란 얼마나 해로운가) 오해가 있었던 부분을 설명해주었다. 끝, 이 나버린 후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가벼운 뒷풀이마냥 쫑파티마냥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고 나누지 못했던 생각과 마음들을 나누었다. 무척 유쾌하다.

많이들 컸다, 우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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