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나는 별로 사랑받고 자라지를 못해서 사랑받는 방법을 잘 모른다. 타인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거 잘 못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누가 나한테 잘해주면 어색해서 달아나버리고 신세를 지게 되면 한시바삐 빚을 갚아야 한다고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배우고 익혀야 하는 거라 생각해서 고상한 척 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김현진이 말하듯 '양지로만 걸어온' 그런 여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배타적이기까지하다. 혼자서 밥도 잘 챙겨먹고 늦은 시간 집에도 잘 찾아 들어가고 절대로 정줄 놓고 술을 먹지 않는다. 누구한테 의지하기도 싫고 누가 나한테 의지하는 것도 싫다. 어차피 영원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을 것을 알아서 그렇다. 괜히 습관 들였다가 잃은 뒤에 허전함을 느끼기 싫어서 그렇다. 어쩌면 그냥 이게 익숙하고 오래되고 편해서 그런 부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단지 익숙함의 결과만은 아닌 것이, 어릴 때부터 친구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가던 다른 애들과는 달리 혼자서 특활도 경시반도 했었고 집에도 잘 걸어갔으니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좋다. 특히 효창공원역을 이용해 귀가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익숙한 동네의 익숙한 어둠, 익숙한 스타디움과 익숙한 가로수, 문 닫은 가게들, 늘 지나치면서 아직도 한 번을 못 가 본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카... 숙대입구 쪽 길은 늘 왁자해서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다. 효창공원에서 제2창학 캠퍼스를 지나 집에 오는 길은 언덕이 가팔라 힘은 들지만 조용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 그 길에서 피웠던 담배 연기나 울었던 눈물 같은 것들은 어디 날아가지 않고 그 나무들 밑에 고대로 남아 있다, 몇 해째.
- 2010/12/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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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제 속에 있는 온갖 못난 것, 뾰족한 것, 예쁘지 않은 것들을 위악 부리지 말고 담담하게 꺼내놓는 게 요즘 제 인생의 화두예요. 자기탐구일지를 써나가고 있는 셈이죠, 카테고리 이름처럼요.
(근데 진지한 얘기하다가 죄송하지만 같이 멍멍.....에서 뿜게 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동물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요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