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학인] 장난감 요요 유희에 푹 빠진 어른아이: team yo&joy 이동훈 대학내일


- 장난감 요요 유희에 푹 빠진 어른아이: team yo&joy 이동훈(숭실대 언론홍보학 06)541호

장난감 요요 유희에 푹 빠진 어른아이
team yo&joy 이동훈(숭실대 언론홍보학 06)



여기, 8척 장신의 건장한 스물여섯 청년이 ‘요요를 한다’고 말한다. ‘요요를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아직도 유년의 장난감에 탐닉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면 새로운 장난질, 어른에 적합한 일을 벌이고 있는가. 막상 ‘요요를 하는 사람’도 요요가 ‘애매하다’고 했다. 취미라기엔 너무 삶 깊숙이 자리 잡았고, 그렇다고 요요질로 먹고 살지는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요만큼 자신에 대해서도 애매하다고 말한다. 놀고는 싶지만, 한편으론 공부도 안 할 수는 없다. 결국 모범생도 날라리도 아닌, 스스로를 ‘어중이떠중이’라 부르는 요요쟁이다.


‘중2병’ 앓던 ‘쭈구리’ 시절, 요요는 내 사춘기의 동아줄
요요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면 가장 먼저 모여드는 게 동네 애들이다. 조카를 놀리는 삼촌처럼 ‘까꿍’거리며, 현란하게 줄을 놀려 요요를 감췄다가 이내 눈앞에 내밀어 보이며 ‘용용 죽겠지’ 한다. 하지만 요요 묘기를 선보이는 어른에게 있어 요요는 장난감이 아니라 강력한 치료제였다. “쭈구리였다”는 그의 고백대로 요요는 그를 무대 위에서 수백 명의 관객을 압도하는 요요 플레이어로 바꿔놓았다. 그가 요요 덕분에 “사람이 됐다”고 말하는 이유다.
“중2병이 좀 심했거든요. 놀고 싶어서 시작한 거죠.” 한없이 암울해질 수도 있던 사춘기에 동훈 씨는 동아줄을 부여잡듯 요요를 잡았다. “그냥 재수 없는 범생이였죠. 조용하고 공부 잘 하니까 선생님들은 예뻐하시는데, 아무래도 노는 친구들에겐 미움 살만 한 캐릭터잖아요. 이지메 같은 것도 당하고 그랬어요.”
“나 좀 찌질했었어”라는 얘기를 별 거리낌 없이, 다만 “좀 오그라드네요”라고 웃으며 털어놓는다. 더 이상 과거가 그의 현재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때 한창 춤이 유행이라 ‘잘 나가는’ 친구들은 춤추러 다니고 그랬어요. 저는 그런 걸 할 만한 깜냥은 못 됐는데, 그래도 멋있어 보이긴 하더라고요. 저도 뭔가 재미있는 취미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죠. 친구도 사귀고 싶었고요.”
치과에 갔다가 우연히 뒤적인 만화잡지 ‘팡팡’에서 요요 만화를 보게 됐다. 궁금한 마음에 하이텔의 ‘요요사랑’ 동호회에 가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동호회 모임에 나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그렇다고 사람 성격이 갑자기 밝아지지는 않는 거라서 여기서도 모난 돌 취급을 받는 건 마찬가지였는데, 동호회에서 만나는 형들은 학교에서 보는 또래들처럼 ‘때리지는’ 않았으니까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 ‘갈굼’쯤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요요가 좋았으니까 계속 모임에 나갔고 연습을 했다. 그렇게 계속 부딪히고 깨지며 조금씩 사랑받는 방법을 배웠다. 꾸준히 요요를 하다 보니 공연도 하게 됐다. 대학로 등지에서 하는 동호회의 정기공연에 참여했다. 중학생이었지만 실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는 아직도 동대문 두타 앞에서 했던 첫 공연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요요가 일종의 배출구 역할을 해 줬죠. 학교에선 조용한 모범생이었지만 반대급부적인 자기표현욕구도 있었거든요. 공연을 하면서 그런 부분이 충족됐달까요.”

요요는 신기한 장난감, 하지만 우리 공연은 장난 아니죠
요요는 작고 가벼워 가지고 다니기 쉽다. 별다른 무대 장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보니 기동성을 요하는 길거리 공연에 적합하다. 관객과 가까이 만나며 순간순간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애드리브도 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길거리 공연의 매력. 요요라는 아이템 자체가 독특하다보니 관객 반응은 항상 좋은 편이다.
“아무래도 특이한 아이템 덕을 많이 봐요. 밴드 공연 같은 건 비교적 흔하니까 사람들이 ‘와, 신기하다’ 이러면서 보진 않잖아요.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일단 요요를 들고 나왔다는 것부터가 희한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안주하지는 않으려 한다. 늘 촉을 세운다. 멋진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만이 아닌 참신한 레퍼토리가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연습실에 모여 다섯 시간씩 꾸준히 연습한다. 이렇게 해서 만든 쇼가 성공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8년 안산 국제 거리극 축제였다.
“철저하게 레퍼토리를 짜서 공연을 하니까, 관객 몰입도가 장난이 아닌 거예요. 수백 명이 몰려서 까치발 들고 보고 그랬으니까요. 지역 축제라서 관객 대부분이 작년 공연도 봤던 주민들이었는데, 다들 우리 공연이 훨씬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축제 끝날 무렵에는 사회자가 ‘이번 안산 국제 거리극 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팀’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니까요.”
국내에서 요요를 하는 사람들의 풀 자체가 넓지는 않지만, 동훈 씨가 속한 team yo&joy의 실력은 그 가운데에서 독보적이다. 팀원 모두가 10년 이상 요요를 해온 실력자들이다. 특히 동훈 씨는 양 손을 다 이용하는 투핸드 요요의 일인자다. 매년 전국대회가 열리는데 올해 투핸드 요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몇 년 동안 2-3위에 머물다가 마침내 1위에 등극한 기분은 짜릿했다.
“범생이었다더니, 끼가 좀 있었나보네?”라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요요가 좋아서 열심히 한 것 뿐”이라며 해명한다. 두어 달만 연습하면 꽤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원핸드 요요와 달리 투핸드 요요는 반년쯤 해야 겨우 기술 하나 소화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도 플레이어가 별로 없다. 원핸드 요요는 중급자라도 센스만 있으면 상급자를 이길 수 있지만, 투핸드 요요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조건 오래, 열심히 하는 게 답이고 동훈 씨는 뚝심 있게도 그렇게 했다. 어쩌면 그가 외로운 ‘쭈구리’였기 때문에 택할 수 있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요하러 영국까지 가요
team yo&joy에게 그리고 그에게 있어, 요요는 단순한 취미 이상이다. 내년 여름에는 팀원들이 함께 영국으로 날아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계획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는 세계 최대의 예술 축제다. 연극, 마임, 오페라, 밴드, 서커스 등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온갖 종류의 퍼포먼스들이 여름 내내 에든버러 시가지에서 펼쳐진다. 아티스트로서 참가 신청을 하면 공연을 할 부스를 내어주는데, 거기서 거리 공연을 할 생각이다.
“워낙에 큰 축제인데다가, 유럽에서는 거리 공연에서 모금이 잘 돼요. 일단 비행기 표를 어떻게 살까 고민하고 있고 현지 경비는 거기서 조달할 수 있겠죠.” 다른 팀원들도 서로 ‘뭐 팔 거 없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의견을 내는 중이다.
그런데 요요 하나에 이렇게 오래 매달려도 괜찮은 것일까. 동훈 씨도 어차피 요요로 밥 벌어먹고 살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만한 시장도 없고, 별로 가능하지가 않으니까요”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남들은 어학연수 하러 가는 영국에 요요 하러 간다. 한가한 소리 아니냐고 따졌더니 자신감으로 응수한다. “제가 좀 독하거든요. 요요 하면서도 공부도 하고 다 잘 할 수 있어요.” 여전히 모범생도 날라리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다. 놀고는 싶지만, 공부도 놓기는 싫은 애매한 심보다.
사실 요요가 그의 미래에 있어서 영 ‘딴 짓’인 건 아니다. 지금 그가 꿈꾸는 일은 장기적인 문화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문화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문화 기획은 단순히 이력서에 열거할 ‘스펙’만 만든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넓은 시야와 참신한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걸 기르기 위해선 아주 많은 걸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공익근무를 하는 동안 2백여 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책도 읽고 영화도 많이 보려 하고요. 우적우적 먹어치우는 중이죠.”
조금만 잘 나가보고 싶은 모범생의 욕구불만으로 시작한 요요가 십 년이 넘었다. “지겹지는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한다.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어 준 게 요요인걸요. 무엇보다 요요가 정말 재미있어서 계속 하는 거고요.”
하지만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그는 이제 곧 4학년이 되고, 대학교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졸업을 하고 나면 지금처럼 팀 활동을 계속 하기는 어려울 테다. 길어야 내년까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공연은 못 하더라도 요요는 계속 할 거예요. 정말 재미있거든요. 죽을 때까지 가지고 놀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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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희 학생리포터, 사진 문혜인 학생리포터 l jamila@daum.net ㅣ 2010-12-03 (21:10:02)

원문 링크
http://www.naeilshot.co.kr/inter_view2.asp?id=interview_me&mode=view&idx=230&page=1

* '나 대학인' 코너 처음 가져가는 거라 쉽진 않았지만 대체로 뿌듯한 결과다. 지면에는 사진이 크게 들어가서 글이 꽤나 잘렸다. 온라인판도 좀 편집이 들어가긴 했는데 지면보다는 많이 살아 있는 편. 인터뷰에 협조해 주신 동훈씨와 team yo&joy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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