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자기탐구일지 2010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의 <빈 집>을 찾아 읽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인상이 써지고 가슴이 아프다(그냥 비유가 아니라 진짜, 물리적으로 아프다!). 조금 울었다.

아픈 짝사랑으로 인해 촉발된 고민의 시간은 순환논법처럼, 간신히 아퀴를 지어 놓았던 내 안의 어려운 질문들을 다시금 헤집었다.

1. 나는 어디에 속하는 인간인가?
어디에도 진정으로 속할 수 없는 신산함을 관찰자('Observer'는 영어에서 언론인, 기자를 뜻하기도 한다)로서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어왔지만 인터뷰어보다는 인터뷰이로 살고 싶은 열망이 남아 있는지, 의연한 사관의 역할을 해내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탓인지 문득문득 외로움은 갑작스런 포격처럼 엄습한다.
진보적인 양심가로 살겠다고 결심하며 마음이 좀 편해지기는 했지만 외적 선언에 비해 반대급부적으로 깊어진 내면의 공허감 때문에 스스로 근신하기로 결정한 일은, 괜한 소외감만 다시금 일깨우고 말았다. 내가 진짜 저 판에 속하는 인간이기는 했던가, 하는.(아, 이거 쓸데업는 중이병인 거 알겠는데 실제로 내 정신세계가 중2 수준인데 너 왜 중이병 드립이냐고 욕해봤자 갑자기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1학년 때 입당했던 것도 비슷한 기분의 발로였는데. 내가 대충 이 언저리에 있는 건 알겠고, 싱크로율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다만 어딘가 소속되고 싶었기 때문에... 모종의 멤버십을 원했던 것이다. 결국은 나와 영 맞지 않았기에 탈당했고,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차라리 조금 쓸쓸한 편을 택하기로 한거지만, 그렇지만...

2. 자아의 실현과 형성
근신하고 있는 건, 내 자아의 실현과 그 형성 사이에 간극이 너무나 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일어의 arbeit, 즉 '일'은 자아를 실현한다는 뜻이란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러기도 했지만 멀리 갈 것 없이 대학시절만 회고해 보아도, 난 늘 일을 잘 했고 그래서 칭찬을 받았고 그에 따라 고래가 춤추듯 계속해서 일을 했다.(못 하는 일은 그냥 안 했다) 일하는 게 즐거웠고(남들이 잘 한다고 인정해 주니까) 자아를 실현하면서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만큼의 자아 성숙, 자아의 형성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은 상대적으로 공허했는데, 그 빈곤감이 절정에 이른 것이 지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술자리 같은 데를 나가 보았자 내적 성숙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말재주만 발전할 것 같아서 조용히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말이 통하는 한두 명과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사람 많은 모임에 나가는 건 극도로 자제하는 중이다.
일과 생활이란 게 딱히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일을 곧잘 하는 것에 비해 내가 너무 삶을 살 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처세술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진정하게 사는 법을 너무 모른다는 걸 알았다. 특히 관계적인 측면에서. 삶에 정답 따위가 어차피 있겠냐마는, 사람이란 다들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또 비슷하기도 해서 일정한 규칙성이란 있기 마련인데도...
예를 들어, 인터뷰에 써야 하는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취재를 넘어 더 깊은 관계를 만드는 건 잘 못한다. 여기 저기 기웃대고 다니는 걸 즐긴 탓에 발은 진짜 넓긴 한데, 모든 걸 공유할 수 있고 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좋은 친구들은 많지만 친구는 친구일 뿐이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거든) 아마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더 외로움을 타는 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연애를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게 또 악순환인 것이, 나란 인간이 이토록이나 건조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연애를 못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운동을 삶의 진정성의 중요한 축으로 여기고 지내긴 했지만, 그것이 참 비장하고 딱딱하고 심각한 소리 아닌가... 나는 연예인에도 관심 없고 TV도 안 보고 가십거리도 싫어하고, 사실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음악도 안 듣고 소설도 안 읽고 그래서 무진장 건조해져 버렸기 때문에, 가벼운 화젯거리와 농담들 사이에서 꽃피는 게임 같은 스파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바쁘고 정신이 없다보니 유머감각도 떨어지고 말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연애라는 목적성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사는 삶의 본질에 심각하게 위배된다고 느껴서, 다시금 감수성을 회복하고 말랑말랑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어쩌면 내가 가장 인간적이었던 시간들은 뉴스도 전혀 안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 없이 차 마시고 음악 듣고 책 읽던 올 봄이었다) 그동안 나는 조그만 외적 성공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자아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했다. 외적 성공에 실패하거나 그에 별 관심 없는 이들이 내적인 유희에 천착하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그건 절반의 성공이고 절반만의 삶이었다.

3. nerd의 알리바이
스스로가 알면 알수록 굉장히 방어적인 인간이라는 걸 느끼고 있다. 외연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도전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도발적이지만 내적인 측면, 희고 붉은 속살을 끄집어내 부닥쳐야 하는 쓰라림 앞에서는 전혀 면역이 되어 있지 않아서 굉장히 아파하고 혼자 앓는다. 이 안팎의 부정합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고("넌 씩씩하니까" "넌 강해") 그래서 더 외로워져버리고 만다. 게다가,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부합하게 행동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애써 더 밝은 척 하느라 기운을 빼고 만다. 분명 난 달라지고 있는데.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오글거려서인걸까.
자꾸만 알리바이를 만들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너드 같은 녀석. 멍청이.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꺼내 보지 못하고선.


덧글

  • 버디 2010/11/26 17:13 # 답글

    기형도 시인은 한글이 남아있을때까지,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대학생들에게 눈물로 읽힐 운명일지도 모르겠군요.
  • 미운오리 2010/11/26 20:39 #

    어디 대학생들에게뿐이겠습니까. 졸업하고 나면 이 시가 아프지 않을까요... 그러고보면 전 고등학교때부터 이 시에 사무쳤었죠 ㅠㅠ-
  • 버디 2010/11/26 21:28 #

    그래도 생채기에 무뎌져가다보면 무덤덤하게 넘길때가 있을지도 모르죠.
    김용택 시인의 '그 강에 가고 싶다'에 보면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언젠가 그 구절에 한동안 넋을 잃었던 때도 있었죠.
  • 미운오리 2010/11/27 14:14 #

    ㅠㅠ 무뎌지고 말겠지만 그 또한 애석한 일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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