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자기탐구일지 2010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가장 단순하게는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어디 소속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모임에는 이렇게 오게 되었다고 소개하곤 했다. 미니홈피에는 십수개의 사집첩을 만들어 내가 속한 그룹을 알렸고, 배너를 다섯 개쯤은 달 수 있었으면 했다. 치기 어린 아마추어리즘에 빠져 있었으나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 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단이란 개인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전부는 아니기에.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장소에 서식하는지가 더 자신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그의 목소리, 좋아하는 장난, 나비를 채집하는지 여부이지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질문하는 나이, 형제 수, 몸무게, 아버지의 수입 따위가 아니라는 어린왕자의 의견을 따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깨달은 것은 역설적으로 나의 無취향이었다. 여기저기 관심은 많고 조금씩 다 할 줄은 아는데 그저 뒤죽박죽 섞여있는지라 아무런 확신이 없다. 말을 뱉고 나면 곧바로 내면의 이율배반 속에 갇혀버렸다. 어쩌면 이렇게 어느 것의 주인공도 되지 못하고 지켜보는 것만이 나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인간도 말도 아니고, 어느 한쪽과도 함께하지 않는 켄타우로스처럼. 그러나 나는 켄타우로스처럼 지혜롭지 못하기에 번민은 계속 깊어지기만 했다.

나라는 인간을 소개하는 일이 피곤해지자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됐다. 한 달, 두 달... 점점 더 자신의 내면으로만 깊이깊이 침전해 들어갔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내가 쓰는 돈을 관찰하고, 내가 읽는 책을 기록하고, 내가 어울리는 친구들을 떠올려보았다. 대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일관성이라는 게 도무지 없었다. 나는 괴물인가? 디아스포라인가?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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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다행히도 내 양심이 살아 있다는 사실. 도덕적 우월감이나 부채의식을 떨쳐버리면 완벽한 주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양심이라는 녀석이 발목을 잡더라. 그러나 그는 고마운 구속이었다. 오히려 나를 더 자유롭게 해 준 구속이었다.

'진짜 진보'를 고민하는, 최소한 관심을 갖고 그를 지지하는, 본질을 탐구하는 일에 천착하는 건전한 이들 가운데서 가장 나다워짐을 느낀다. 가장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소속감을 느낀다. 나의 생각과 느낌과 삶의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90% 정도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상징자본을 구축하고 싶어했던 어설픈 소영웅주의는 타파하기로 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가벼운 세 치 혀는 꽉 붙들어두자고 마음먹었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절실한 것이 생겼다. 그를 좇으며 허위로운 껍데기들을 벗어버리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보다 뚜렷하게 발견하리라. 다른 것은 다 버려도 괜찮다고 여길만큼 절실한 그 무엇. 다른 것을 다 버리고도 그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분발할 작정이다. 아, 설렌다.


덧글

  • 조댕 2010/10/31 17:56 # 삭제 답글

    진지함이 숙성되어가는게 느껴지네... 나도 고민을 좀더 숙성시켜야 겠는데....
  • 2010/11/01 16: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운오리 2010/11/02 23:54 #

    고맙습니다 ^ ^ 이런 댓글, 늘 힘이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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