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大學에 대하여 - 비판적 지성의 실종 자기탐구일지 2010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 대학내일을 읽다가 갑자기 서글퍼짐을 느꼈다. '고려대 총학의 열람실 회복 시위' '경희대 책을 읽읍시다 제도에 단식 농성 돌입' '고려대 여학생, 전 남친에 공개사과하라는 내용의 대자보 붙여 화제' 등의 기사였다. 고려대에서는 대학 본부가 백주년기념관 열람실을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하자 총학이 나서서 시위한다고 했다. 경희대 정경대에서는 본부에서 강제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고 그러지 않으면 장학금 수혜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실시하자 단식투쟁을 하다가 부회장이 실신했단다. 학생운동판 기웃거리고 다닐 때 알던 오빠가 인터뷰한 내용도 나왔다.

나는 왜 기사를 읽으며 서글픈 마음이 들었을까? 한국 대학들에 문제가 많은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사실 나는 그 투쟁을 서러이 여긴 것이 아니라 조금 질투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희대가 아닌 숙대가, 단식투쟁 하다 쓰러진 정경대 부회장이 아니라 내가 서글퍼서 조금 울 뻔 하였다.

복학하니 새내기가 된 기분이라며 학교 다니는 걸 즐기던 내가 왜 질투를? 학교가 좋다고 학교 텀블러도 사서 들고 다니고 어제는 과 야구잠바도 신청했고 학교생활에 200% 만족하는 내가 왜 질투를? 여대 예찬론자인 내가 왜 질투를?
내가 경희대나 고대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 "여론 형성이 가능한 분위기"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여론이란 게 잘 생기지 않는다.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학교가 작아서일까? 그래도 거의 1만 명이나 되는 규모인데? 학교 게시판에 나타나는 글들이 여론인가? 최근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게시글들은 시험 기간에 자리 맡아 놓지 말자,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매너가 있네 없네 등등이었다. 가십만 있고 여론은 없는 것이다.

최근 중앙대에서 자유인문캠프를 개최한다고 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더니, 이거 굉장히 참신했다. 트위터를 통해서 재잘거리다 모인 중앙대 학생 여덟 명이 기획하고 준비한 강연회였다. 주최가 어디예요? 라고 물었더니 배후 세력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총학생회나, 이름만 바꾼 한대련 하부조직이나 뭐 그런 곳에서 주최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나는 약간의 문화적 충격마저 느끼고 말았다. 이 학교엔 여론이란 게 있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란 게 있고, 총학생회를 끼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모여드는구나.
우리 학교는 왜 그렇지 않을까. 작년에 선거철이 되어 그나마 게시판에 운동권이 어쩌고 뉴라이트가 어쩌고 하는 글들이 올라오니 '오늘 익게 왜 이렇게 무서워?'라며 로그아웃 하는 사람이 있던 기억이 난다. 몇주전 기숙사에서 야행성을 찍는 날에는 게시판에 불이 났다. 모두가 연성 뉴스에만 열광하고 있다는 거다. 그것도, 오로지 온라인에서만 소란할 뿐이고 학교 안은 늘 춥고 한산할 따름이다.

중앙대 자유인문캠프 얘기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을 더 적어보자면,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부담이 좀 된 게 사실이다. 내가 중앙대 학생도 아닌데 괜히 지분대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동안 워낙 중앙대 기사를 많이 쓰기도 했고.
정작 내가 다니는 캠퍼스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으면서...

철이 들면서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결코 부정할 수 없으며, 그런 식으로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딛고 선 땅을 다진 후에야만 비로소 하늘까지 뻗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들어와 있는 지윤이는 나와 얘기할 때마다 '언니 같은 사람은 미국에서 살면 정말 잘 맞을 거야'라고 추천해준다. 굉장히 리버럴한 사고방식이나(한국의 오지랖퍼들 사이에서는 이게 꽤나 스트레스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점 등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솔깃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지만 내가 한국을 영원히 떠날 수는 없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여기가 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중앙대에 대한 기사도 많이 쓰고 외대, 한양대, 서울대 등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녔지만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정체성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내 학교 얘기를 썼었다. 메이트와 학제개편, 소송 건 등 세 편 정도.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다시는 안 하기로 했다. 이미 1월에 썼던 기사로 학교 본부에서 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그러고보니 나 대신 홍보실장의 이가는 소리를 들었던 당시 부총 언니와 우리 잡지 편집장에게 심심한 미안함을 전하고 싶네) 정치적 부담감이 너무 심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학교에 대해서 침묵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는, 아예 사회 기사를 쓰지 않았다. 꼭 필요한 청탁을 받은 것 외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 자기 얘기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 얘기를 하고 다니겠는가. 그런 식의 '남말'이 어떻게 진실할 수 있겠는가. 모순이었다. 입을 다물었다. 여행을 떠났다. 여행기를 연재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던 공지영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대로 너무 행복했으니까. 평생 세상의 아름다움만 좇아도 다 보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글이 반응이 더 좋았고 정신이 덜 피곤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고,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런 극단적인 마음이 든 건 내가 외로웠기 때문인 것 같다. 절대적인 동조자, 내 편이 없었다. 중앙대라고 해서 모든 학우가 두산에 반대하고 자유인문캠프를 듣지는 않겠지만 소수나마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뜨겁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동지가 없었다. 혼자 잘난척만 하고 있는 꼴이었다. 친구들은 지지하고 응원하고, 걱정도 해 주었지만 그게 다였고, 게시판에는 나에 대한 선플과 악플이 거의 반반씩 달렸다. 모두가 파편화된 개인의 발언들이었다. 말하자면 기반이 되는 조직이 없었다. 희망의 진지랄 것이 없었던 거다. 하루아침에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인터넷 게시판의 지지글을 난 신뢰할 수 없었고, 그나마 비슷한 정치적 포지션에 있는 총학생회와는 도무지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어린 나로서 풀어나가기는 어려운 관계였다. 나는 철저하게 고립돼 있었다. 외로웠다.

고려대와 경희대에서, 그들도 분명 녹록치는 않지만 동지를 믿고 투쟁하고 있을 것이다. 여론을 믿고 적으나마 지지해주는 학우들을 믿고.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 자체가 나는 너무 부럽다. 고려대 여학생이 전 남친 들으라고 붙였다는 자보조차 질투가 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공론화시킬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 온통 홍보만 있고 언론은 없는 우리 학교 게시판. 내가 작년 이맘을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도저히 소통되지 않는, 답답한 공기에 숨을 쉴 수 없어서. 중도휴학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엉망으로 살아낸 한 학기를 버틴 뒤 나는 도망쳤었다. 살기 위해서.

조금 불안하다. 내가 다시 도망쳐버리고 말까 봐. 걔네 학교도 막상 가 보면 별 볼 일 없을 거라고, 멀리서 보니까 희극인 것 뿐이라고 다잡아본다. 그리고 넌 이렇게 리버럴한 학교 분위기를 좋아한 것 아니었냐고, 맘에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인간관계를 절대 못 견디기에 여대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고 자문해보기도 한다. 어쩌면 요즘 우리학교에 별다른 사안이 없어서 조용한 것 뿐일지도 모르고.
난 여전히 우리 학교가 좋다. 우리 과 커리큘럼도 좋고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좋아한다. 다만 이곳은 말 그대로 하나의 고등교육기관일 뿐이고, 담론이 나오고 여론이 형성되는 공간으로서의 캠퍼스, 大學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때로 그게 아쉬운 것이다.

지윤이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궁금함으로 가득차 있다. 그 애가 어떻게 변할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오십 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울던 그 세계시민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찾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NGO에 뜻을 품고 있고, 누군가는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며, 월스트리트를 꿈꾸거나, 평범한 한국 대학생이 돼 버렸거나, 신앙생활에 충실하기도 한다. 그 애의 대학생활이 기대대로 훌륭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본부가 학내언론을 검열하는 일이 흔하다는 말에 기절초풍하는 것으로 보아 많이 부딫히고 깨지게 될 것 같다. 내 동생도 이십여일 후면 수능을 친다. 정말이지,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ps. 개인적으로 나를 모르는 사람도 이 글을 볼 수 있을 테니, 학교 이름을 명시하여 쓴 것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적은 것처럼 스스로의 정체성에 충실하고 싶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쓴다.

ps2. 이건 ps에 넣기에는 좀 중요한 얘기이긴 하지만, 생각해봤는데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비판적 여론이 잘 형성되지 않는 건 애들이 그냥 대책없이 착하고 순종적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자애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사회학과처럼 제대로 된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없다. 인문학부라고 해 봤자 언어 관련 학과가 전부다. 총대를 멜 수 있는 집단이 없다고나 할까. 개별적으로 깨어 있는 학생들은 많은데 학교 안에 머물러 있지를 않는다. 밖에 나가면 다 만난다. 그런데 학교에만 돌아오면 냉랭하기만 하다.
우리 학교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지난 주에 학보를 봤는데 숙대신보 대학문학상 공모전에 평론이 단 1편밖에 응모되지 않았다. 심사평은 편수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맥이 빠진 느낌으로 대학가의 비판적 지성 실종을 우려했다. 대학생들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걱정스러운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 공모전은 재학생만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이런 분위기가 우리 학교만의 문제도 아니다. 다만 내가 숙대를 다녀서 더 날카롭게 볼 수 있는 것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우리학교가 조금 더 쌀쌀한 것 같아 아쉽다는 것이다.

ps3. 그나저나 이거 뉴스비평 밸리에 넣으면 맞는 거겠지? 이글루스는 사회 밸리를 만들어 달라!

ps4(자정 지나서 추가). 생각해봤는데 이 문제는 요약하자면 비판적 지성 그리고 대학 문화의 실종으로 볼 수 있다. 우리 학교만의 고유한 문화가 부재하고, 학생들의 의견 사이에 다양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또 떠오른 건데 작년 이맘때, 정확히는 11월 3일 학생의 날에 내가 오마이뉴스에 처음 썼던 기사가 바로 그 대학 문화의 실종에 대한 것이었다. 옛날에 쓴 글은 늘 부끄러우니까 링크는 안함. 글은 못 썼는데 문제의식은 정확했던 거 같다, 지금 봐도.


이글루스 가든 - 하루한번 정부까는 가든

덧글

  • 백치미 2010/10/27 14:48 # 삭제 답글

    ㅡ 오랫만이네....
  • 미운오리 2010/10/27 16:35 #

    새세대에 발행을 안해서 그렇지 글은 계속 쓰고 있어요 ㅋㅋ
    선배님 저 페이스북 접고 트위터로 갈아타는중인데 트위터는 안하세요?ㅋㅋㅋㅋ
  • 버디 2010/11/13 22:43 # 답글

    희망의 진지라는 것을 구축하기 참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걸, 힘들어해야죠.
    대학에서 새로운 걸 배우기보다는 거기서 시작해보려 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쓸쓸히 들어가버렸네요
  • 카르테 2011/03/01 14:26 # 삭제 답글

    우와.....저도 이번에 숙대에 입학하면서 혹여 그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하는데..ㅎㅎ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 미운오리 2011/03/02 13:35 #

    아, 혹시 트위터에서 팔로한 후배님인가요?
    갑갑하죠. 맞아요. ㅠㅠ 이 글 쓸 당시 아무튼간 참담해서 이렇게 적었어요. 하지만 숙대만의 문제는 정말 아니랍니다.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학교마다, 과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비슷해요. 괜히 남의 학교가 더 좋아보이는 심보일 뿐이라능 ㅋㅋ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 숨쉴 통로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봐요. 저만 해도 즐겁게 살고 있는걸요. :) 아, 무책임하게 들리려나요. 아무튼 새내기에게는 무한X100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일단을 즐겨 보시고, 많이 기웃기웃 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한학기쯤 신나게 보낸 후에, 이게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활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는 차차 고민해봐도 좋을 거 같아요.
  • 카르테 2011/03/12 04:08 # 삭제

    까먹고 있다 이제 찾아왔네요 ㅋㅋ
    음.. 제가 생각했던 대학생활은 맘놓고 말할 수 있는 대학, 토론 가능한 대학,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 정도였지요 ㅎㅎ
    그 중 '원하는 공부'는 이루었는데 맘놓고 말하는 것, 토론 가능한 것은 아직 찾지 못했네요 ㅠㅠ 미운오리님 말씀대로 아직 새내기라 무한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ㅎㅎ 그래도 학기 초, 새내기여야 들 수 있는 '동아리'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는건 사실이에요. 지금 동아리를 잡지 않으면 숨을 틜 수 없을 것 같고, 토론은 영영 물건너 갈 것 같고 해서요. 그래서말인데 혹시 추천하실만한 동아리 있으면 말씀 부탁드려요 ㅎㅎ
    또 잊을만~하면 올게요 ㅋㅋ 답글 감사해요!!!
  • 미운오리 2011/03/12 16:19 #

    잘 찾아 보면 좋은 동아리 많은데 ㅋㅋ 게시판을 잘 봐요!
    방금 도서관 갔다 왔는데 1층 화장실 입구 쪽에 있는 게시판에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 동아리 포스터가 잔뜩이던걸요. 학번 제한 없다는 말에 낚여 문학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어요 ㅋㅋ
    독서 토론 동아리도 많이 있고요. 자본주의연구회 같은 곳은 포스터부터 '진보적인 동아리' 어쩌구 쓰여 있던데. 인문학 관심 있으면 쿰이라는 동아리도 괜찮고요. 언급한 두 가지는 연합동아리인데 지부별로 활동도 많이 해서 괜찮을 거임! 학내동아리든 연합동아리든 제한 갖지 말고 찾아 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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