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여자박성경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나의 점수 : ★★★★
모두가 '비싼 여자' '나쁜 남자'가 되려고 하는 세상의 허를 찌르는 쉬운 여자
발랄하고 쉬운 문체라 잘 읽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칙릿처럼 별 내용이 없어서 술술 읽히는 건 아니다.
어떤 잡지에선가 소개글을 읽었고,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챙겨 읽게 됐다. 쉬운 여자. 쉬운 여자는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녀에겐 부탁하기 쉽고, 명령하기 쉽고, 막 대하기 쉽다. 그 단어는 또한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암시도 포함하고 있다.
모두가 쉬운 여자가 되기를 기피한다. 다들 '비싼 여자'가 되고 싶어하고 '나쁜 남자'를 따른다. 튕겨야 매력적인 것이고 거절해야 가치가 높아진다고 여긴다. 쉬운 여자는 매력 없고 가치 없다. 자존심도 없다. 모두가 쉬운 여자를 경멸한다.
쉬운 여자는 인생을 쉽게 생각한다.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을 뿐이다. 즐기고 싶을 뿐이다. 거절보다는 승낙이 재미있으니까. 싸우는 것보다는 그냥 져 주는 편이 편하니까 쉬운 여자가 된 것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허가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우린 다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것 아닌가? 무엇 하러 그토록 뻗대고, 도리질하고, 낯을 가렸을까? 이렇게 쉽게도 살 수 있는 것인데.
인생이란 롤플레잉 게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게임을 하다보면 누군가 부탁을 해 오기 마련이다. 승낙해도 되고 거절해도 된다. 때로는 부탁을 들어 주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어쨌거나 남의 부탁을 들어주다보면 경험치도 얻고 돈이나 아이템도 생기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게임을 하는 이유이며, 또한 삶의 본질이 아닌가. "그렇게 남의 부탁만 들어주다가 자기 일은 언제 하지?" 괜한 걱정이다. 본래 삶이란 부탁하고 부탁에 응하는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또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착하게 살다 보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겹쳐 보여 짜증이 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허허실실 하고 있으면 나 같은 사람은 답답해서 죽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분별하게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는 태도는 남의 성격을 망친다는 부작용이 있다. 주인공 나이지도 독백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이렇게 된 건 내 책임(p.268)'이라고.
"나는 삶이 내게 레몬을 주면 갈아 마실 생각도, 갈아엎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레몬을 내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갈아서, 예쁜 컵에 담고 장식용 우산을 꼽아 사람들에게 다시 내놓았다. 나는 사람들이 더욱 뻔뻔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조장하고 구경했다. 그걸 지켜보며 즐기고 박수까지 쳐댔다. 그 결과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나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내 탓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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