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막걸리 자기탐구일지 2010

1. 무진장 오랜만에 술을 먹었다. 복학하고 처음이다. 막걸리를 꽤나 마셨고, 버스가 끊기기 전에 파하고 집에 왔지만 아침 수업에는 조금 지각했다. 8시 50분에 일어났는데, 여느 때처럼 열어두고 잔 창문에서 너무나 싸늘한 바람이 불어들어와서 화들짝 놀랐다. 하긴, 어제 봤던 오늘 아침최저기온이 10도랬으니, 추운 것도 당연. 급하게 눈에 보이는 대로 긴팔 티셔츠와 레깅스에 두툼한 니트 가디건을 걸쳤다. 머플러까지 둘렀다. 대충 찾아 입은 건데 꽤 마음에 들어서 기분 좋았다.
하지만 사진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나는 고작 10분 정도도 늦지 않았는데, 이미 출석을 불렀다고 해서 김이 빠졌다. 아침 9시에 하는 3시간짜리 수업이라, 나보다 늦게 온 사람도 열 명쯤은 됐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밥이나 먹고 올걸! 조리개와 피사계 심도 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어려웠다. 이 수업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던 연희 얘기가 생각나고, 성미는 수업이 재미 없다며 드랍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냥 사진 관련 책 한 권 빌려서 찬찬히 봐야겠다. 다음주부터 출사 나가면 좀 재미있어지겠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과제로 낸 사진. 한가한 일요일 오후, 아무 할 일이나 약속도 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좋아하는 책과 잡지를 잔뜩 끼고서 빈둥거리는 것. 몸에 좋은 샐러드와 향긋한 차도 함께. 선물받은 강아지 인형도 꼭 있어야 하고.
그런데 잘 찍은 사진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오늘 수업을 듣고 나니 더 명확해졌다. 초점이 분명하지 않고 그냥 어수선한 것 같다. 에잉. 다음엔 더 잘 찍어야지!

2. 어제는 언론공공성을위한대학생연대라는 멸실된 조직의 뭐 그런 사람들과... ㅋㅋㅋ 술을 마셨다. 난 원래 준영씨만 오는가 했더니 다들 한가했다. ㅋㅋㅋㅋㅋ 부르니까 다 왔다. ㅋㅋㅋㅋㅋ (승기씨 빼고ㅋㅋㅋ 아이구 귀한시간 굽신굽신)
복학한 이후 학회 모임 외에는 대학생들이 네 명 이상 모인 자리에 가 본 게 처음이라 난 너무나도 뻘쭘했다. ㅋㅋㅋㅋㅋ 하지만 여전했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의 정치적 포지션이 지나치게 왼쪽에 있는 걸로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사실은 그 사람들을 만나기가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었다. 스스로가 너무나 보수화되어버려서, 이제 이런 좌빨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하지만 오해, 오해였다. 승기씨는 내가 '보수화'된 게 아니라 '현실인식'을 제대로 한 것뿐이라고 했다. (역시 난 어휘력이 부족한 것 같다. 끄응.)
좌나 우, 진보나 보수, 개별이나 집단, 다 관계없이 양심적이기만 하면 된 것 아닌가!(세혁씨 표현대로 ㅋㅋ) 그들을 만나고 와서 고민이 많이 해소됐다. 다들 그렇게 현실인식을 명확히 하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나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 거였구나. 나도 그냥 그 정도면 괜찮은 거구나. 혁명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해서 좌절하고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었던 거구나. 다행이다.
여전히 나는 흔들리는 이십대의 고뇌 속에 살지만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너무나 행복하다.

3. 낮에는 sky님과 ㅋㅋㅋ 남산에 갔다. 남산에는 처음 가봤다. 좋았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서 실망했지만. ㅠㅠ 그건 내가 못 찍어서 그런 거다. sky님하는 사진을 잘 찍는다! 역시 미대생이다. 놀라웠다. 엔테라스의 눈꽃빙수가 다시 먹고 싶다. 또 가야지! :)

4. 두시에는 상담이 있었으니까 한시간동안 계속해서 상담 선생님에게 말을 했다. 세시반에 하늘언니를 만나서도 계속 난 떠들어댔다. 중대에 도착한 건 여덟시 쯤이었는데 그 때부터 거의 열두시까지 나는 또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난 진짜 말이 많다. 이야기하는 게 좋다. 이야깃거리도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남의 말을 안 듣는 건 아니니까, 말을 많이 하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다. 다만 좀더 조리있게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습해야겠지.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 로망이다, 로망.

5. 낮에 갑자기 '만행'이 생각나서 동건씨한테 물어봤다. 생각해보니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건 이번 학기가 처음이다. 그래서 개강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술도 마시지 않았고(그렇다고 술 많이 마시는 동아리를 한 적은 또 없지만) 대학생이 네 명 이상 모인 모임에 가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토록 괴롭던 알바도 그만두기로 했으니 난 한가로운 유한 대학생. 마땅히 끌리는 동아리가 있던 것도 아니고(그나마 3학년은 받아주지도 않고 ㅠㅗㅠ) 굳이 동아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한 것은 아니었는데, 생활의 활력을 위해서는 하나쯤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부쩍 추워지니까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겁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난 이쯤이면 늘 밑바닥까지 외롭고 힘들어지곤 했으니까. 겨울이 다가올수록 더더욱. 늘 궁금했던 만행이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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