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정선 中. 화암약수, 옥수수동동주, 정선아라리촌, 양반전 스물한 살, RAIL路 전국일주

마시면 신선 되는 물, 세 잔 이상은 곤란해요
[스물한 살, 내일로 가는 칙칙폭폭 전국일주 17] 정선 - 中
10.08.11 14:08 ㅣ최종 업데이트 10.08.11 15:03 박솔희 (jamila)
 

몰운대의 비경을 뒤로 하고 소금강변을 따라 산길을 달린다. 강원도는 워낙 산세가 험하다보니 교통이 불편하다. 교외에서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어려운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강원도 산골에서는 유난하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도 없어서 민둥산역 가이드 투어가 아니었으면 하나도 구경 못했을 거 같다. 다행이다.

산길에서는 운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디나 절벽이고 경사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험료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다고 한다. 보통 지형이 이런 곳에서 버스를 타게 되면 온갖 곡예에 널을 뛰는 운행에 조마조마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늘은 믿음직한 강원도 토박이 가이드 덕분에 몸도 마음도 편하다.

 

  
소금강변을 따라 달리며 마주친 강원도 산세
ⓒ 박솔희

보통 난 시티 투어나 단체 패키지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사람이 움직이다보니 서로 페이스가 달라 효율적이지 못하고 일정이 너무 빡빡해 충분히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일행과 잘 맞으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간과 돈 들여 나와서 짜증만 안고 가야 하는 '복불복'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조금 힘이 들어도 더 알차고 자유로운 나홀로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조금 고민하다가 민둥산역 가이드 투어를 선택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리무진 버스에서 졸며 멀미하며 따분한 것 말고 셋이서 넷이서 승용차 두 대로 움직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다. 평일이라 일행이 적어서 그럴 것이고, 여행자를 배려하는 민둥산역 직원분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

설탕 빠진 사이다 같은 알싸한 맛... 이런 게 진짜 약수구나

  
시원한 산속, 흐르는 강줄기 곁 바위틈에서 화암약수가 솟아난다.
ⓒ 박솔희

소금강에 물수제비 떠가며 여유 있게 움직여 도착한 곳은 화암약수터. 여느 산이나 절에만 가도 흔한 게 약수터인데 별다를 게 있겠나 생각하고 기대를 않았는데, 마셔 보니 이거 참 희한하다. 설탕 빠진 사이다 맛이라고나 할까. 페리에 같은 탄산수 느낌도 나고, 혀끝이 알싸하다.

알고 보니 이 물, 진짜 좋은 거란다. 1913년에 한 마을 주민이 신령스런 꿈을 꾸고 바위 틈에 샘솟는 물을 발견했는데, 마시니 온몸에 힘이 솟더란다. 탄산이온, 철분, 칼슘, 불소 등 9가지 필수 원소가 함유돼 위장병, 피부병, 빈혈, 안질환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하니, 너도 나도 자기 회사 것이 좋다고 광고만 요란한 병입 생수나 정수기 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 불로장생수 "신선이 마시던 영험한 화암약수, 오늘 와 우리도 고이 마시니 바로 선인인 양 마음도 하 맑고녀."
ⓒ 박솔희

"이 물을 하루에 딱 세 잔씩 먹으면 몸에 그렇게 좋답니다."

가이드 역무원님이 직접 바가지에 물을 떠 주신다. 약수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자 한 번에 많은 양을 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수량은 넉넉지 않다. 성수기에는 바가지를 대고 한참 기다려야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물이 모아진다고 한다.

"왜 하필 세 잔이에요?"

무슨 사연이나 있나 해서 약수터 주변을 기웃대는데, 다른 게 아니라 철분 함량이 높아서 석 잔이 넘어가게 마시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 몸에도, 약수터에도,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진리를 되새긴다.

옥수수 동동주 세 잔에 거나하게 취하고... 이게 바로 신선놀음

  
화암약수터 근처에서 먹은 감자전과 도토리묵무침. 아~ 또 먹고 싶다!
ⓒ 박솔희

신선이 마시던 불로장생수를 사이 좋게 한 잔씩 나누고, 계곡 물에 발 담가 더위를 식히다가 가까운 향토음식점을 찾았다. 산골 감자가 팍팍 들어간 감자전과 도토리묵무침 그리고 옥수수 동동주 석 잔에 기분 좋은 취기가 오른다. 역무원 두 분은 운전을 하셔야 하고, 그 외에는 술을 즐기는 이가 없어 맛난 동동주는 내가 제일 많이 마셨다.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이후 '탁주 홀릭'이 된 참이다.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유쾌한 대화가 오간다. 정선 토박이 역무원 분은 산골생활이 무료해 틈만 있으면 도시로 나간다고 한다. 도시의 복작거림에 시달리다 맑은 공기 마시러 온 우리 여행자들로서는 이곳이 좋기만 한데. 하기야 젊은 사람이 여기에서 평생 살자면 심심하긴 할 것이다. 나 같아도 여기 한 번 두 번 오니까 좋지 평생 살지는 못하겠다. 참, 모순이지.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또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휘돌아 이번에는 정선 읍내로 들어간다. 화암약수터 인근에 위치한 화암동굴에서는 매년 7~8월 납량특집 공포체험 이벤트를 한다. 뜨거운 여름날 서늘한 동굴에서 물리적·정신적 한기를 느끼면 그만한 피서도 없을 텐데. 동굴이 워낙 커 관람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오늘은 패스한다(화암동굴 공포체험 1만 2천 원).

조선 근대 자본주의 태동기를 배경으로 한 연암의 <양반전>

  
환곡 천 섬을 갚지 못해 옥에 갇힐 신세가 된 양반과 이를 핀잔하는 부인
ⓒ 박솔희

"옛날 강원도 정선에 한 가난한 양반이 살았는데 날마다 글이나 읽었지 밥벌이를 할 줄 몰라 관가에서 곡식을 꾸어다 먹으며 연명하였다. 어느새 빌린 곡식이 1천 섬에 달했는데 이를 갚을 길은 없고, 꼼짝없이 옥에 갇힐 판이었다. 사정을 안 이웃의 부자 상민이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들였다.

평소 왕래하던 양반이 갑자기 상민이 되어버린 처지를 안 군수는 양반의 신분을 되찾아주기 위해 꾀를 부렸다. 부자 상민에게 직접 양반증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며 양반이 지켜야 할 온갖 골치아픈 덕목과 못된 특혜들을 나열했다. 이야기를 들은 부자 상민은 "양반이 도둑놈과 다를 바가 없다"며 샀던 양반 신분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다시는 양반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잘 알려진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줄거리다. 신흥 갑부인 부자 상인이 나타나고, 양반 신분을 사고 팔게 된 조선 근대 자본주의 태동기의 정선 땅을 배경으로 한다. 정선 아라리촌은 이 양반전의 줄거리를 중심으로 정선의 옛 주거 문화를 재현해 놓았다. 전통와가와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 등 비슷한 듯하지만알고 보면 다른 전통 가옥들과 물레방아, 통방아, 연자방아 등 옛 농기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아라리촌 입장료 없음).

  
하늘 높이 뻗어 있는 솟대들
ⓒ 박솔희

  
▲ 귀틀집 산간지역 원시주거의 한 형태.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올려 벽체를 삼으며,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운다. 많은 적설량을 견딜 수 있고 온도유지가 용이하며 짓기 쉬워 오래 전부터 산간지대 화전민들이 이용해 왔다.
ⓒ 박솔희

  
▲ 너와집 2백년 이상 자란 소나무토막을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정선지방의 전통민가로 내부에는 이 지역의 특징적 용구인 '화티'가 있다. 이는 부뚜막 귀퉁이에 진흙을 이겨 쌓은 것으로 조명 대용, 조리용, 불씨보관용으로 썼다.
ⓒ 박솔희

  
▲ 저릅집 주로 정선과 삼척 지역에 분포하는 전통민가 중 하나로 대마의 껍질을 벗기고 난 줄기인 저릅을 짚 대신 이엉으로 이은 집을 일컬으며 겨릅집이라고도 한다. 속이 빈 저릅대궁이 단열재 기능을 하여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 박솔희

끊임없이 정선아리랑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하나도 투박하지 않게 돌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세심함이 돋보인다. 대개 관광지는 입구의 안내판만 봐도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알 수 있는데, 상세한 국문 안내에 더해 영문 안내도 형식적이지 않고 재미나게 번역해놓은 모양새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이 대세인데, 양반전이라는 이야기를 지역민의 삶과 곁들여 소개하는 아라리촌, 참 잘 꾸며 놓았구나 싶다.

  
군수가 방문하자 상민이 된 양반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군수는 영문을 몰라 그를 일으킨다.
ⓒ 박솔희

  
양반은 모내기철에 남의 소를 멋대로 먼저 가져다 쓸 수 있는 특권이 있다.
ⓒ 박솔희

  
▲ 양반증서 아라리촌 방문 기념으로 받은 양반 증서. 한자 이름을 잘 몰라도 찰떡같이 고쳐서 써 주신다.
ⓒ 박솔희

  
▲ 그네타기 전통 그네는 줄이 길어 동네 놀이터 그네마냥 쉽지 않다. 왕년의 실력(?)을 뽐내 봤다.
ⓒ 박솔희

  
▲ 해나무 오후의 태양이 소나무 사이에 걸려 꼭 열매맺은 것 같다.
ⓒ 박솔희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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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약수 지나 정선읍내 가는 길. 소금강변에 잠깐 내려 물수제비 뜨고 놀았다.
그 근처에 이런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는데, 뭐라고 쓰여 있긴 했는데 잊어버렸다. ;_;ㅋ

화암약수

화암약수터 뒤편에는 이런 돌무더기가 여러 기 쌓여있다.

무사 산행을 바라는 마음들이다.

완전 맛있겠 ㅠ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 또 먹고 싶다!!

안내판 내용을 보니, 번역이 성의 있게 돼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Ignoble Nobleman?' 같이 라임을 맞춘 거라든지.

부잣집-

양반의 집

식당 등도 모두 전통 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짜임새가 있다.

날아라~ ㅋㅋㅋㅋㅋ 나 진짜 쫌 잘 탔다. ㅋㅋㅋㅋㅋ

양반은 멋대로 죄 없는 상민의 상투를 틀고 괴롭혀도 되는 특권이 있다.

저릅집 처마. 저릅 대궁들

성황당

양반님네 팔자걸음 따라하기

양반은 언제나 팔자로 걷는다.

요게 스피커. 귀를 대어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지어졌다.



이글루스 가든 - 여행다니기

덧글

  • 스카이 2010/08/12 10:14 # 삭제 답글

    오호호호 ㅋㅋㅋㅋ
    그네 아주 신명나게 타고있는 모습이 좋구나 얼쑤
    ㅋㅋㅋ도토리묵 먹고싶다. ㅜ
    우헬헤렐
    님 나 컴백햇음/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12 10:44 #

    덩실덩실 얼쑤!
    와우 you're back!!! 유후 별일 없었음?ㅋㅋ see you soon!!
  • 2010/08/13 09: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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