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했다는 원피스. 거의 검정에 가까운 색인데 '네이비'라는 설명에 엄마는 실제 제품은 푸른색일 걸로 짐작하고 주문했단다. | ⓒ 박솔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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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ㅠㅠ)."
택배상자를 열어본 엄마의 반응이 마뜩찮다. 낮에 택배가 올 테니 받아두라기에 무언지도 모르고 챙겼건만, 그 정체는 새로 산 원피스였다. 그런데 옷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 내가 봐도 우리 엄마 평소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엄마는 여름 원피스를 사야겠다며 몇 주 전부터 노래를 불렀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색이나 소재 모두 요즘 입을 옷은 아니다.
어디서 옷을 샀느냐 물으니 '인터넷'이란다. 인터넷! 회사 일 때문에 억지로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거 빼면 자기 이메일 주소나 아이디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엄마가 인터넷 쇼핑을 했다고? 평소에 인터넷으로 사야 할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나에게 '선주문'하고 보던 엄마가 나도 모르는 사이 직접 인터넷에서 원피스를 구매했단 말인가?
알고 보니 요즘 회사에서 인터넷 쇼핑 붐이 인 모양. 모 쇼핑몰이 그렇게 괜찮더라 하는 '강추'를 듣고 엄마도 부화뇌동, 띄엄띄엄한 솜씨로 사이트에 들어가 옷을 주문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한창 기사쓰기에 몰입해 있을 때 저쪽 방에서 엄마가 와보라는 소리를 들은 체 만 체 했는데, 그때 주문한 옷이란다. 화면상으로는 검정에 가까운 색인데도 엄마는 '네이비'라는 상품 설명만 보고 시원한 여름색이겠지 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거다.
회사 동료 추천에 '귀 펄럭'해 지른 첫 인터넷 쇼핑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데, 첫 인터넷 쇼핑이야 말해 무엇하랴. 직접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도 집에 가져와 보면 달라 보이는 일이 허다한데 직접 보지 않고 산 물건이 마음에 쏙 들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웬만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교환이나 환불을 잘 안 해줄 뿐더러 택배비도 부담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 다음부터는 꼭 '딸에게 선주문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은 셈 치고 넘어가려 하는데, 옷값이 무려 12만6000원이란다. 포기하기엔 너무나 큰 액수다.
어떻게든 환불을 받아 내라는 엄마의 요구에 따라 우선 쇼핑몰 접속에 시도했다. 주문은 어떻게 했는지, 신기하게도 엄마는 사이트 주소도 기억을 못 한다. 택배 상자에 쓰인 주소로 찾아 들어가자 이번에는 아이디를 모른다. 아니, 회원가입을 하긴 한 거야? 몇 번의 시도 끝에 로그인에 성공한다.
그런데 주문 내역을 보니 해당 제품은 교환·환불이 불가한 할인상품이다. 일이 복잡하게 됐다. 일반 상품도 이틀 이내에 왕복 택배비를 부담해야만 반품이 가능한데, 이 제품은 하자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반품할 수 없다는 거다.
잘못 산 옷 반품 작업 착수, 할인상품은 환불 못 받아?
이쯤 되자 나는 고등학교 때 배운 <법과 사회> 지식을 총동원했다. 전자상거래법에 의하면 온라인으로 구매한 제품은 하자와 관계 없이 무조건 7일 이내에 교환·환불을 해 주게 되어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우선 도움을 얻기 위해 한국소비자원(1372)에 전화를 걸었다.
| ▲ 한국 소비자원 누리집 화면. 예전 이름은 '소비자보호원'이었으나 소비자를 단순히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자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개칭했다. | ⓒ 한국소비자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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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잘못 샀는데, 할인상품이라 반품이 안 된다고 하네요. 환불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전자상거래법에 의하면 7일 이내에 무조건 반품할 수 있어요. 쇼핑몰의 정책이 다르다고 해도 그건 약관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기 때문에 법에 의해 효력을 잃습니다. 우체국에 가서 물건을 내용증명우편으로 보내버리세요."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 | - 통신판매업자와 재화등의 구매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소비자는 계약서면을 교부받은 날부터(재화등의 공급이 그보다 늦게 이루어진 경우에는 공급이 개시된 날부터) 7일 이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음(법 제17조제1항). - 다만, 재화등의 내용이 표시‧광고 내용과 다르거나 계약내용과 다르게 이행된 경우에는 비록 소비자의 귀책사유로 재화 등의 멸실·훼손, 가치감소 등이 있어도 당해 재화 등을 공급받은 날부터 3월 이내, 그 사실을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약철회등을 할 수 있음(법 제17조제3항). |
아하! 명쾌한 설명에 머리가 맑아진다. 쇼핑몰에서 반품을 안 해준다고 해도 소비자보호를 위해 7일 이내에는 무조건 해 주도록 법에 쓰여 있기 때문에 내가 물건을 보내 버리고(청약철회 의사 표시) 환불을 요구하면 되는 거다. 다만 쇼핑몰에서 물건을 받고도 못 받았다고 발뺌할 경우에 대비해 내용증명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용증명우편이라 함은 말 그대로 우체국에서 그 우편물의 내용물과 발송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법적 근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번에는 쇼핑몰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법적으로 환불이 가능하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하는 쇼핑몰이라면 상당히 언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조금은 마음을 졸였다. 원만하게 환불을 받고 싶을 뿐, 싸우기는 싫으니까.
다행히 상담원이 친절했다. 반품 의사와 구매자인 엄마 이름을 말하자, 당연히 처음에는 할인상품이라 반품이 안 된다고 했지만 내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전자상거래법에 의하면 환불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귀 쇼핑몰에서 안 된다고 하면 나는 내용증명우편으로 제품을 보내 버리는 수밖에 없다"며 은근한 협박(!)을 하자 약간 당황하며 확인 후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한 시간쯤 후에 나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한 구매 부탁드린다"며 친절하게 반품 절차를 알려주는 쇼핑몰을 믿고 내용증명 없이 물건을 발송했다. 환불액은 며칠 후 내 계좌(!)로 고스란히 입금됐다.
대부분 인터넷 쇼핑몰은 우리 엄마가 이용한 곳과 같이 반품 기일을 2~3일로 정해 두고 있고, 할인상품이나 이벤트 상품은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화면과 다르다 해도 '귀찮아서' 교환이나 환불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본적인 관련 법률을 숙지하고 소비자원의 도움을 받는다면 쇼핑몰의 일방적인 불공정 약관에 의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다만 단순 변심 반품의 경우 환불이 가능하다고 해도 왕복 배송료는 소비자 부담이기 때문에 여전히 신중한 구매 태도가 요구된다.
이 사건으로 우리 엄마의 훌륭한(!) 인터넷 실력은 두고두고 아빠와 나의 놀림감이 되고 있다. 환불 받은 12만6000원으로는 엄마에게 저렴하고 시원한 여름 원피스를 하나 사 주고, 차액은 내가 수수료로 받기로 했다.
엄마, 이제 다시는 인터넷 쇼핑 안 할 거지?
+ 8.9. 오후 5시 추가
오마이뉴스 댓글로 지적이 들어와 보완합니다. 법률에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소비자의 청약철회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 출처는 소비자원 웹사이트의 소비자 관련법령 입니다.
□ 거래의 안전을 위해 다음의 경우에는 소비자가 변심을 이유로 통신판매업자의 의사에 반하여 청약철회 등을 할 수 없음(법 제17조제2항). 단, ②~④의 경우 견본품을 제공하거나 그러한 사실을 표시한 경우로 한정함(법 제17조제6항). ① 소비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재화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다만, 재화 등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를 제외함) ② 소비자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의하여 재화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③ 시간 경과에 따라 재판매가 곤란할 정도로 재화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④ 복제가 가능한 재화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⑤ 개별 주문 생산되는 재화 등 청약철회시 판매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되어 소비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경우
정리하자면, 기본적으로 모든 전자상거래 거래물품은 7일이내 교환환불이 가능하나 소비자 귀책으로 인한 재화의 멸실, 훼손이 있거나 상품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에는 반품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음반이나 게임CD, 화장품 같은 경우 개봉 후 환불이 불가하다고 패키지에 쓰여 있는 경우가 많지요. 이 경우 반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까지 모두 반품해준다면 소비자 보호를 넘어 판매자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박스 안 설명처럼 물건 자체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재화의 멸실, 훼손, 가치감소 등이 있다 하더라도 청약철회가 가능합니다. 언제나 법이 만능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현실에서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상황에는 법 조항이 적확히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건전한 구매 태도 및 상도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8. 9. 오후 11시 추가
올린지 열두 시간이 지나고도 트래픽이 계속 확확 올라가기에 확인해보니, 이오공감에 올랐군요!! 한두번 추천받은 적은 있어도 이렇게 올라간 적은 처음 ㅜㅗㅜ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라서 기쁩니다 유후- 이 모든 영광은 한국소비자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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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저도 몇 번 그런 일을 겪었는데 귀찮아서 환불 안하고 그냥 옷장에 모셔놓고 있거든요..ㅠㅠ 좋은 정보 감사해용 :)
다음에 반품할 일 생기면 꼭!! 이용해 보시길 ^ ^ ㅋㅋ
글도 참 잘쓰셔서 내용 이해도 쉽게 되었습니다.
ㄳㄳ
애걸복걸해서 같은 제품의 다른 색으로 교환했었는데..
이제는 잘 알았으니! 소비자의 권리를 되찾아야겠어요!
오프라인 거래는 전자상거래와는 적용 법률이 다르기는 하지만 7일이내 교환환불 해주어야 하는 건 같아요. 곤란한 상황일 때는 늘 1372 소비자원에 전화해서 상담하시길! 정부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가 허접하고 형식적인 게 많은데 소비자원은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넘 좋았음 ㅠㅗㅠㅋㅋ
의류상품의 택은 미운오리님께서 말씀하신 화장품, 음반, 게임등의 패키지와 거의 동일 취급됩니다.
택을 떼어버리셨을 경우, 재화가치가 손상되어 반품이나 교환이 불가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저도 남성의류쇼핑몰을 하는 사람이여서 어떤 글인지 궁금했었는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시니 이런 부분은 더 조심해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제 친구가 아버지가 철판업자 하셨는데
남품하면 바로 안주고 약속어음 휴지수표 또는 다음번에 줄땐 전거 주고 다다음번에 전전꺼주고
그런식으로 몇번 안주고 그렇다고 거래를 안하면 돈을 못받으니
안되고 그러다 은퇴했는데
포기했죠 건설업계 회장님들은 자기자식 술먹고 진상피다 맞으니 경호원이랑 그 술집가서 전기충격기로 지지고
패도 별로 처벌을 안받는걸 아니
대기업하고 싸울려면 소송하고 변호사비 내다 보면 있는집도 망하니
그냥 쿨하게 포기 ㅋㅋㅋㅋㅋㅋㅋ
까짓거 몇억 못받는거 흔하잖아 그런거 아니면 밥한번 사는거지
다들 그렇게 하니
의류업계는 그나마 착하죠 그런거 하나 보면 덜덜떠는데
국세청이랑 전문법무진붙여 맞짱뜬 기업 등등
아주 대단한 사건들이 있으니
뻘글도 추천해버려서 멍청한 짓하는 꼴좀 보래요~ 하는 느낌으로 올리기도 하고 그래서..
무조건 100% 환불 불가인 경우가 많죠.
아무리 쓰레기 같은 옷을 팔아도 어린 친구들은 법을 몰라서
환불 요청 못 한다는 걸 이용한 더러운 상술이죠.
...이 상식이 제발 다들 통했으면 좋겠는데......
제 동생은 반대로 사업자의 입장이라,쇼핑몰을 하는데 반품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더라구요.
반품이 참 싫은 건 맞나봅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일종의 편법을 쓰는 거겠죠.
저는 동생 얘기 들어보면 그런 게 어려운 거 같아요.
상품 상세 사이즈 같은 게 다 적혀 있는데(그릇이나 인테리어 소품의)
상품을 받아보고 '생각 보다 너무 작다' 라든가 '생각 보다 크다' 그런 것...
소비자의 입장에선 분명히 반품 가능할 거 같기도 한데~ 반품 불가사유 같기도 하고 ㅎㅎ 애매하네요.
확실히 잦은 반품은 판매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소비자보호법의 취지는 거래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이기 쉬운 소비자를 판매자의 횡포(??) 내지는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불공정 약관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이즈가 생각과 다르다거나 하는 이유를 포함해 단순변심이라도 일주일 이내에는 무조건 교환환불해주게 되어 있어요. 사업을 하려면 그런 부분도 감수해야 하는 거 같아요. ㅜㅗㅜ ㄲ
가장 좋은건 신중하게 구매하고 반품을 하지 않는 것이겠죠 ;_ ;ㅋㅋ
트랙백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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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희 신문은 서울 지역 전철역 앞에서 배포하는 무가지입니다.
참고로 글 제목 클릭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포스트의 원글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서요. 오마이뉴스는 중복 게재를 허용하기 때문에 문제될 부분은 없지만 참고하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옷 살때 인터넷 쇼핑을 하고 싶어도
막상 가보면 다수의 쇼핑몰이 공지에 일부 품목은 환불 불가라고 써놓고
들여다보면 일부 품목이 아니라 거의 90% 이상이 환불 불가라고 되어 있어서
도저히 인터넷에 나온 정보만 보고 옷을 살 수가 없어서 구매 자체를 포기했었거든요.
뭐... 환불이니 교환이니 하는 것도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라
앞으로도 인터넷으로 옷을 살 일은 없을것 같긴 하지만
저런 법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좋은정보 알아갑니다! 앞으로 인터넷에서 구매할때 참고해야겠네요 ㅋㅋ
상법도 배웠는데 새로운걸보니, 제가 진짜 상법을 대충배웠군요,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