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강릉. 경포대, 경포호, 경포해수욕장, 외로워도괜찮아 스물한 살, RAIL路 전국일주

외로워도 괜찮아, 그래야 어른이 되지
[스물한 살, 내일로 가는 칙칙폭폭 전국일주 15] 강릉
10.08.05 16:25 ㅣ최종 업데이트 10.08.05 16:25 박솔희 (jamila)
 

추암에서 동해역까지 택시로 이동한 후 다시 강릉으로 넘어가는 열차를 탔다. 아침 6시 15분 계룡역에서 출발해 조치원에서 환승, 조치원에서 제천, 제천에서 강릉까지 간 후 삼척행 바다열차, 다시 동해에서 강릉… 하루 동안 꼬박 8시간 30분을 기차 안에서 보낸 셈이다.

  
해질녘 하늘, 추암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 박솔희

그렇게 기차를 타고도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뗄 줄 모르니 이 정도면 기차 마니아를 넘어서 '오타쿠'라고 칭해도 될 것이다. 금방이라도 소금기가 훅 끼쳐 올 것처럼 새파랗던 동해도 밤에는 장사 없는 법인지라, 하늘 바탕에 흘린 귤빛 물감은 어둠 속으로 소거되어 이내 하얀 동그라미 하나만 남겨 놓는다. 강릉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달밤이었다.

  
강릉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려보니 이미 하얀 보름달이 떠올라 있다.
ⓒ 박솔희

경포호의 밤, 다섯 개의 달, 외로움

  
경포해변의 야경
ⓒ 박솔희

삼척의 죽서루와 함께 관동팔경에 들어가는 강릉 경포대에서는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달, 경포호에 비친 달, 바다에 비친 달, 술잔 속의 달, 그리고 님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달.

강릉역 오거리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니 높이 뜬 달이 경포호를 내리비추고 있다. 어쩜 저렇게 빛이 맑을까, 경탄하며 호수 둘레를 따라 걸었다.

잘 알려진 경포대나 율곡 이이의 생가인 오죽헌 외에도 강릉에는 둘러볼 거리가 참 많다. 전통 사대부 가옥 선교장, 허난설헌 생가와 초당두부마을, 국내 최대 사립박물관인 참소리박물관 등. 대부분의 관광지는 경포해변에 맞닿은 경포호 주변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도 용이한 편이다.

원래는 허난설헌 생가를 보고 가까운 초당두부마을에서 맛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강릉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늦은 밤이라 관광지는 다 문을 닫았지만 호수는, 바다는, 언제나 인간에게 관대히 열려 있다.

  
경포해변. 평일이라 사람이 썩 많지 않아 조용하고 좋았다.
ⓒ 박솔희
부산에서 밤바다를 보았다. 늘 활기차고 불빛이 반짝반짝한 해운대나 광안리의 밤과 달리 이곳 강릉의 해변은 차분했다. 쏴아, 하고 울리는 파도 소리에 마음이 경건해지는 기분. 파도가 높아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나까지 쓸려가 버릴 것만 같다. 이래서 바다는 늘 경외로운 존재다.
  
경포해변. 모래.
ⓒ 박솔희

아무리 빛나는 날이었대도, 아무리 보름달이 밝아도 까만 밤이 되면 쓸쓸해진다. 그저 누가 날 어디론가 데려가 줬으면 싶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내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형식적인 피알(PR, 나이트클럽의 호객행위를 이르는 은어)을 하고 있는 삐끼도 혼자 산책하는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렇게 쓸쓸해 하면서, 왜 굳이 혼자 여행을 하냐구? 그건 이 약간의 외로움과 객창감이 삶의 본질이고 여행의 본질임을 알기 때문이다. 동행과의 무의미한 언어 교환과 상대의 체온에 대한 감지, 그것이 결코 외로움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 외로움을 충분히 느끼는 데 필요한 감각을 분산 시켜 사람을 잠시 무디게 만들 뿐.

흔히 성격이 '외향'적이니 '내향'적이니 하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본디 외향적이라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나지만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완벽하게 내향적이 된다. 한 학기를 휴학하고 본가에 내려와 지내면서,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혼자 배낭 매고 훌훌 떠남으로써 나는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자기자신과 시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소통은 타인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자기자신과도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 그것이 이 세계와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이다.

조금 쓸쓸해도 괜찮다. 그래야 어른이 될 테니까. 생소한 장소에서의 생소한 기분이 좋다. 끝도 없이 해변을 걸었다. 관성처럼, 발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경포호 위로 휘영청 떠오른 달
ⓒ 박솔희

소요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경포행 버스 1100원
복숭아속살 주스 950원
강릉시내행 버스 1100원
찜질방, 담요 대여 7000원
식혜 250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 = 12650원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 More Pictures

추암에서 동해 가는 택시 안. 아까 삼척에서 봤던 국토대장정 무리를 또 만났다 ;_;ㅋㅋ

초저녁달이 예뻐서 찍어봤다.

밤의 경포호

경포호 인근에서 왕년의 인기 드라마 <보고 또 보고>를 찍었다고 한다.

CF에 나오는 ;ㅂ; 와이파이 존 인ㅋ증ㅋ

커피공장 테라로사. 강릉에 있는 유명한 로스터리 커피 전문점이다. 원두판매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경포해변에도 있는 줄 몰랐는데 우연히 만났다.
다른 곳에 본점이 있는 걸로 아는데, 밤이라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들러보고 싶다.

모기장 텐트의 위ㅋ엄ㅋ
해변가에 비치는 낮은 불빛 외에, 바다는 정말정말 씨꺼맸음.
부산은 광안대교가 있어선지 환-한데.

여긴 나름 불빛 번쩍 ㅋ

10시 40분 막차 타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
가로수에 전구를 예쁘게 밝혀 놓았더라.

움직이는 차 안에서 찍었더니- 보름달이 반달이 됐다. :D


+ Additional Information

강릉역에 붙어있던 종이.
저기 표시된 버스타는 곳이 강릉역 오거리. 여기도 웬만한 버스는 다 있지만,
역에서 10분쯤 걸어 시내의 신영극장 앞으로 가면 버스가 훨씬 많다.
정동진으로 가는 버스도 있고. 강릉 시내에서 정동진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30분마다 버스가 있다.

강릉역 오거리 버스 시간표
희한하게 주문진 가는 건 5분마다 있고 경포 가는 건 30분마다 있단 말이지 ;_;ㅋ

시내에 돌아와서, 홈플러스에 있는 프리머스에서 영화 한 편 보고 찜질방에서 잤다.
경포에서 202번 버스 타고 시내로 나와서, 신영극장 앞에서 내려서 그 방향으로 좀 직진하면 홈플러스가 보인다.
그리고 신영극장에서 반대 방향으로 좀 가면 '동아호텔'이 있다. 거기 찜질방이었는데, 역시 호텔 찜질방은 실패하지 않는다. :D 말이 호텔이지 좀 작아 보여서 걱정했는데 객실은 모르겠지만 찜질방 시설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가격도 6천원으로 저렴. 강릉시민들도 많이 와서 자고 있더라. 다만 담요를 따로 1천원 내고 빌려야 한다. 그리고 여기 식혜, 아주 맛있다. +_+ ㅋㅋ
바닥에 까는 매트도 두툼한 편이라, 수면실 가서 편하게 잤다. 유후 :D
여기 말고도 강릉은 꽤 번화한 동네라, 찜질방도 많고 맥도날드도 24시간이고 하니까 밤에 시간 보낼 거리나 잠자리 걱정은 안 해도 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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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싱클레어 2010/08/06 00:54 # 답글

    글이 참 깔끔하고 이쁩니다ㅋ유용하기도 하고 발랄하면서도 성찰하려는 모습에 안좋은 글들을 본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ㅜㅜ! 올해가 내일로를 탈 수 있는 마지막 해라 언제라도 광주를 떠났으면 하는데 솔희기자님 글이 참고가 많이 될 거 같애요ㅋ다음 편도 얼른 올려주시길!ㅇㅛㅇ!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06 16:05 #

    히히, 고맙습니다! :D 스물한살 칙칙폭폭 카테고리에 보시면 여태까지 연재한 것 모아두고 있어요. 집이 광주이신가 봐요? 광주편도 있는데, ㅋㅋㅋ 유스퀘어 앞 3천원짜리 백반집을 아시는지?ㅋㅋ
  • 2010/08/06 19:32 # 답글

    강릉! 강원도라 그냥 산하고 탄광(?)만 있을줄알았는데 엄청 번화한 도시였던... ㅎㅎㅎ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06 20:08 #

    그러니까요 ㅋㅋㅋ 서울이랑도 가깝고. 오히려 탄관 이런건 볼래도 없던.. ㅋㅋㅋ
  • dunst 2010/08/10 13:18 # 답글

    이오공감에 환불글이 떴길래 보러왔다가 내일로에 꽂혀버린 ㅋㅋㅋ 내일러시군요. 저는 아직 출발기간이 남아서 잔뜩 기다리고만있습니다:)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10 13:19 #

    넵, 내일로 전국일주 하고 있습니다 :D
    어디로 여행하시나요? 왼쪽 카테고리에서 내일로 전국일주 보시면 내일로 여행기를 다 모아뒀어요. 정보도 많이 담았으니까 제가 다녀온 지역이라면 분명 도움되실 거예요. ^ ^
  • ㅎㅎ 2011/07/07 01:39 # 삭제 답글

    올해 내일로 계획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ㅋㅋ
    많은 도움이 됬어요^^
    근데 사진을 보니 너무 반갑네요
    저기 국토대장정 무리속에 제가 작년에 있었을 것 같아서요ㅋㅋ
    동해루트를 돌아서 강원도를 계속 떠돌았는데 내일로하시면서 보셨군요ㅋ
    올해는 힘든 행군이 아니라 여행이라 너무 기쁩니다 +_+ㅎㅎ
    즐기면서 볼수 있겠죠?ㅋㅋㅋㅋㅋ
  • 미운오리 2011/07/07 11:06 #

    와우. 반갑습니다!! :D
    올해는 내일로 여행 하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만 많이 만드시기를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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