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제천. 의림지, 역전시장, 혼자하는여행 스물한 살, RAIL路 전국일주

"우리 아들 살아 있었다면...조심히 다녀야 혀"
[연재] 스물한 살, 내일로 가는 칙칙폭폭 전국일주 (7) 제천
10.07.23 10:28 ㅣ최종 업데이트 10.07.23 17:59 박솔희 (jamila)
 

영월에서 단종의 숨결을 흠씬 느끼고 다시 제천이다. 제천 구경을 간단히 하고 숙박을 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제천역 관사에 숙박 예약을 해 놓은 것이다. '내일로플러스'라고, 내일로티켓을 특정 역에서 끊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는데 내가 발권한 단양역에서는 제천역과 단양역 관사에 각각 1박씩 묵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내일로 티켓이 인기를 끌면서 역마다 티켓 판매 경쟁이 붙어서, 직원용 숙소나 쓰지 않던 관사를 고쳐 내일로 여행객들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많다. 숙박 외에도 각 역별로 인근 관광지와 제휴한 할인쿠폰쿠폰이나 소정의 기념품 등을 제공하고 있어 내일로 유저들로서는 경비도 아끼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각 역별 내일로플러스 혜택 - 네이버 기차여행카페 바이트레인 http://cafe.naver.com/hkct)

해도 적당히 졌고, 나는 미리 봐둔 31번 버스에 올라 의림지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수리시설 의림지의 야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라는 의림지의 야경
ⓒ 박솔희

신라 진흥왕 때 우륵에 의해 처음 축조되었고, 고려시대 박의림 현감, 세종 때 정인지 등에 의해 여러 번 정비되어온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다. 예로부터 농업용수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제천 지역 농경지에 물을 대주고 있는 고마운 녀석이다.

호반의 둘레는 1.8km로 30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다. 밤인데도 산책 나온 주민들이 많았다. 과거 농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의림지는 이제 지역 주민의 쉼터이자 명승지의 기능이 주가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느리게 걸으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 해본다. 너무나 완벽한 날이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처음으로 혼자서 떠난 본격 전국일주 여행. 우리 사회에서는 도무지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가 힘들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여행가기… 음식 1인분은 팔지 않는 식당도 많고 티켓부스의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두 장이시죠?"라고 되묻는다.

특히나 젊은 여자에게는 제약이 심한데 "청승맞아 보인다, 외롭거나 심심하다, 뻘쭘하다, 위험하다" 등등의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을 피하기 위해서, 내 주변만 해도 편의점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랠지언정 혼자서는 절대로 밥을 안 먹는 친구들이 많고, 단지 주말에 혼자서는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청승맞고 쓸쓸한 여자로 보일 위험을 감수하고 휘적휘적 홀로 떠난 내 여정은 그 어떤 좋은 친구와 함께한 여행보다 즐거웠다. 나 자신과 세계가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수다에 여념이 없다보면 때때로 잊고마는 나 자신은 물론 그리고 매 순간 거치는 장소와 사람들의 매력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누구랑 같이 있을 때는 상대방의 기분을 신경쓰느라 온 정신을 뺏겨 버리는 나같은 A형으로서는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몹시 필요하고 또 소중하다. 때론 외롭고 청승맞아 보일지라도.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 자신 그리고 세계와 마주치기

 
  
제천 역전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만난 아주머니, 아저씨들.
ⓒ 박솔희

또한 귀한 것은 동행이 없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인연들이다. 의림지를 둘러보고 역전으로 되돌아 간 나는 미리 봐두었던 역전시장에 들어가 막걸리를 사먹었다. 열 시가 다 된 시간에도 문을 연 유일한 가게. 커다란 사발에 가득 담아 김치와 함께 주는 게 단돈 천 원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의 아저씨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말을 거신다. 학생이 혼자 여행 온 거냐며, 어디서 왔냐며… 아저씨들은 특히 내가 혼자 다니는 것이 궁금하신 모양이다. 혼자 다니는 젊은 여자는 늘 이렇게 주목을 받는다. 드시던 불고기를 한 접시 덜어 내게 나눠주신다.

"위험하게 왜 혼자 다녀?"
"혼자 다니는 게 더 좋을 수가 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다닐 때도 재밌지만, 그 재미가 웃고 떠드는 재미라면 혼자 다닐 때는 좀 더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달까요?"
"그래도 혼자 다니면 외롭잖어~ 특히 밤에 잘 때. 안 그려?"
"아이구, 그래도 혼자 다니니까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도 하고 하는 거지. 친구랑 같이 있었음 둘이만 떠드느라 정신 없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겠어?"
"에이, 그래도 누구랑 같이 다니는게 낫어~"

연신 잔을 부딪혀가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혼자 여행하는 재미와 자유란 이런 것이다. 맛난 칡막걸리에, 그리고 우연이 주선한 마주침에 조금씩 취기가 오른다. 그런데 옆자리 아저씨의 왕방울만한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나를 본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야 혀… 사고는 언제 어떻게 날지 모르는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우리 아들이 한 서른쯤 됐을 건데, 살아 있었으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겄지?"

갑작스레 슬픈 이야기에 뭐라 대꾸를 할지 몰라 "아…" 하고 멍한 표정만 지었다. 다행히도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곧 분위기를 무마시켜 주었고, 다시 재미난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 아저씨들은 젊은 시절 천안에서 서울까지랬나, 사박 오일 만이랬나 걸어갔던 무용담을 풀어놨고 가게 주인 할아버지까지 합세해 6·25 이후의 신산했던 삶을 말했다.

천 원짜리 잔술이나마 얻어 마시고 "조심해서 여행 잘 하라"는 당부를 뒤로한 채 숙소에 들었다. 나처럼 혼자 다니는 내일로 여행자 한 명과 같이 자게 됐다. 나는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신나게 여행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내일 영월에 간다는 그이에게 먼저 다녀온 소감을 전하고 며칠 전 다녀왔다는 순천은 어땠는지 들었다. 유럽의 유스호스텔이 이런 느낌이겠지. 혼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다 들어와 정보를 나누고 외롭지 않게 밤을 함께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 More Pictures

의림지 야경 :)

어딜 가나 이런 게 꼭 하나씩 있긴 하더라 ;ㅂ;

의림지 한 가운데의 다리를 건너간다.

조그마한 인공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터널 같은 느낌인데 빠져나오면 시원-

'의림지'? 아닌듯 ;_;

역전시장에서 사먹은 칡막걸리! 저 작은 표주박이 잔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가 천원이라니 완전 저렴!!

가게 주인 아주머니 ㅋㅋ

여행지에서 사람들, 특히 아저씨들을 만나면 사실 처음에 약간 경계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너무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주신 아저씨들이 좋은 분들이란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술도 안 드시고 별로 말은 없으셨지만 시종일관 미소- :)
너무나 만족스러운 하루의 마무리로 퍼펙트했던, 약 한 시간의 술자리- :D


+ 버스 정보

세명고(의림지) 방면 31번 : 제천역 ~ 세명고
10-15분 간격 운행, 휴일에는 배차간격 더 짧음. 막차 약 10시. 운임 1100원
제천역에서 길 건너 큰길 따라 몇 미터 가다가 약국 앞에서 탑승
역전에서 의림지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던 듯합니다.


구인사 방면 260번 : 제천역 ~ 구인사
08:15 ~ 09:40
10:15 ~ 11:35
14:00 ~ 15:20
15:40 ~ 17:00
18:15 ~ 19:50
운임 4400원. 제천역 바로 맞은편 시장 앞 정류장에서 탑승


단양(매포) 고수동굴방면 100번대
160번 제천역 ~ 단양(시내를 말하는 듯)
06:00 ~ 06:55
06:25 ~ 07:25
06:40 ~ 07:35
07:05 ~ 08:05
08:05 ~ 09:05
08:30 ~ 09:35
08:45 ~ 09:45
09:00 ~ 09:55
09:50 ~ 11:05
11:15 ~ 12:20
12:15 ~ 13:15
... 등

170번 제천역 ~ 고수동굴
07:15 ~ 08:25
07:30 ~ 08:35
08:15 ~ 09:15
09:20 ~ 10:30
10:35 ~ 11:55
11:50 ~ 13:00
... 등

100번대 버스는 직접 타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200번대 노선과 같은 위치에서 탑승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뒤에 잘린 부분은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모르는 부분 ;ㅂ; 시내버스 안에 시간표가 붙어 있고 역 매표창구에도 시간표가 있습니다. 다 제가 디카로 찍어온 사진 판독(!)해서 정리한 것이에요. 필요하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 되었으면 하는 마음 :)


덧글

  • 주차장 2010/07/25 00:10 # 답글

    오래전 제천의 재래시장에서 먹었던 납작만두... 기억나네요... 정확히는 기억안나지만 약간의 겨자가 들어간 맛이었는데... 지금도 있을려나? 그 좌판? 흠... 잘 봤습니다.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25 00:29 #

    역전 말고 또 재래시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납작만두는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어제도 강원도 갔다오다가 제천에서 환승을 기다리면서 보리밥을 먹었답니다!ㅋㅋ 다음에 또 가게되면 납작만두가 있는지 잘 살펴봐야겠어요. ^ ^
  • 주차장 2010/07/25 17:33 #

    역전에 시장말고 다른데 시장이었던것같네요... 강원도 중소도시에 가면 대개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의 시장이 있는데, 제천도 그랬을지도...
  • 2010/07/25 04:06 # 답글

    아 이거 계속 읽고 있자니 여행가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ㅎ ㅠㅠ 올해도 가버릴까요? 내년 여행을위해 모든걸 아껴두고 있는뎃...... 이렇게 여행기를 계속보다가는 곧 떠날것같네요 ㅎㅎ 역시 여행기는 설렙니다!!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25 09:42 #

    떠나세요 떠나 ㅋㅋㅋㅋㅋ 장기여행 계획하시나 봐요? 저도 적금 들고있긴 한데 ㅋㅋ 그래도 한번씩 떠나줘야 한다니까요! 내일로 잘 활용하면 정말 저렴하게 여행할수있어요 >.< 여행비용에 관한 포스트도 작성해뒀는데 곧 올립니다-
  • 프리템포 2010/07/26 19:48 # 답글

    아 너무 부럽네요. 제가 나이는 더 먹었는데 생각은 참 깊으시네요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27 10:13 #

    앗, 과찬이세요 ㅋㅋㅋ 서로 각자 더 겪은 삶의 범위가 있을 거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서 더 빨리 깊어질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요뭐 :)
  • 다스커피하우스 2010/07/30 10:59 # 답글

    RAIL路er 미운오리 님이신가요? 다스커피하우스(Das Coffee-Haus)입니다. 제천에 관련된 것을 검색하다가 여기로 와서 링크했습니다. 해당 현판(鏡湖樓)은 '경호루'라 합니다. 검색창에 '제천'을 입력해 보세요.
    P.S.다음 달에 영화제가 있는 거 아세요?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30 22:13 #

    앗,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ㅋㅋ 제천음악영화제! 평이 좋아서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시장이 그거 없애고싶어한다고 ㅠㅠ 한방엑스포만 미는 모양 ;ㅂ; 그래서 영화제 쪽에서 무지 고생스러운 모양이더라구요. 제대로 행사가 진행될런지 ㅜㅗㅜ ㅋㅋ
    제천에 사셨었나봐요? 만든지 얼마 안된 블로그로 보이는데 포스트양이 상당하네요 :D
  • 다스커피하우스 2010/07/31 20:55 # 답글

    제가 대학 시절 때 제천에서 주로 활동을 했었어요. 제천 영화제에 관해서는 유감이로군요. 2달 전에는 전주 영화제에 갔었는데, 그쪽이 더 나은 듯.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01 00:16 #

    올해 아예 없어져버리진 않을거 같고, 어떻게 되어가는지 좀 지켜봐야겠지요 ㅠ 진짜 없어진다면 캐안습 ㅠ 이거 뭐 시장 한명 잘못뽑은죄 ㅠㅗ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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