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광주. 유스퀘어, 골목집식당, 카페 달콤, 국립518민주묘지 스물한 살, RAIL路 전국일주

80년 광주와 08년 촛불 사이, 망월동의 스산한 바람
[연재] 스물한 살, 내일로 가는 칙칙폭폭 전국일주 (3) 광주
10.07.12 11:46 ㅣ최종 업데이트 10.07.12 11:47 박솔희 (jamila)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이 센트럴시티와 연결돼 있듯, 광주 광천터미널은 유스퀘어라는 공간에 면해 있다. 밤 아홉 시쯤 도착하긴 했는데 벌써 자러 가기는 이른 듯해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고 괜히 길기만 해서 끝나고 나오니 자정이 지나 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난데없이 객창감을 느끼며 미리 봐둔 찜질방을 찾아들어갔다. 터미널에서 5분 거리다.

낯선 곳에서 밤을 맞고 보니, 워낙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타지에서 홀로 잔 건 거의 처음이라는 생각이 났다. 친구랑 같이 숙박을 하든지 아니면 친구네 집에 가서 자든지 대개는 그랬다. 모르는 곳에서 낮을 보내는 건 마냥 새롭고 두근거리지만 밤은 조금쯤 무섭고 또 외롭다. 역시 잠은 집에서 잘 걸 그랬나, 싶다가도 객창감이 짙어지는 만큼 집에 돌아갔을 때 행복하겠지, 하며 덥고 시끄러운 수면실에서 잠을 청한다.

빛고을 광주, 햇볕이 뜨거웠다

 
  
광주광천터미널에 연결되어있는 유스퀘어
ⓒ 박솔희

그다지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피곤한 김에 곤히 잤는데, 일어나 보니 아홉 시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광주에 온 건 지난 여름에 이어 두 번째인데, 단지 내가 여름에만 와봐서 받은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광주는 참 이글이글, 하다. '빛고을'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태양이 붉고 참 뜨겁다. 한마디로 덥다.

터미널 맞은편의 백반집에서 인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와 옆 테이블 아저씨 덕분에 아침을 잘 해결했다. 나는 3천 원짜리 '셀프 백반'을 먹었고 아저씨는 삼겹살을 드시고 계셨다. 아저씨가 난데없이 "학생, 나 좀 도와줘요" 하기에 도대체 뭘 도와달라는 건가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 그렇다며 내 그릇에 삼겹살을 잔뜩 집어 올려주셨다. 이런 거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생각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식사를 마치고 홀연히 가게를 떠나셨다. 나중에 주인 아주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를 얼핏 들으니 국가유공자신데, 삼겹살을 1인분씩 파는 가게가 잘 없다보니 근처의 상무지구라는 곳에서 여기까지 와서 종종 식사를 하고 가신단다. 가족이나 친구는 없으신가? 우연히도 오늘은 6월 25일. 이런 날이면 한 번씩 재조명되는 국가유공자들의 힘겨운 생활에 대한 뉴스를 본 게 떠올라서 사정은 잘 모르지만 괜히 안쓰럽고 내가 다 미안하다.

국립 518 민주묘지

- 개방 시간: 3~10월 08:00~19:00
                 11~2월 08:00~18:00
   입장료, 주차료 없음. 연중 무휴

- 민주묘지 내 518 추모관 / 어린이 체험학습관
   개관 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5월 중에는 휴관 없음
- 홈페이지 http://518.mpva.go.kr

아침 든든하게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잡지도 뒤적거리면서 빛고을의 한가를 즐기다가 터미널 앞에서 518번 버스에 올라탔다. 노선 번호부터 의미심장한 518번 버스는 518기념공원과 518자유공원, 518민주묘지 등 광주의 주요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유적지를 거친다. 흔히 망월동 묘역이라고 알려져 있는 518민주묘지로 향했다. 버스는 30분에 한 대씩이라 꽤 기다려야 했고 터미널 앞에서 민주묘지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국립 518 민주묘지, 망월동 구 묘역의 스산한 바람

 
  
국립518민주묘지와 망월동 구 묘역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
ⓒ 박솔희

 
  
국립 518 민주묘지의 추모탑
ⓒ 박솔희

바람이 스산했고 나중에는 비도 한 방울씩 떨어졌다. 여행 중에 비가 오는 것만큼 반갑지 않은 일도 없지만 왠지 그걸 저어할 수가 없었던 게, 광주였기 때문이다. 날씨가 괜히 흐린 게 아닌 것 같았다.

광주 북구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는 1994년 시작된 묘지 성역화 사업의 결과로 1997년 완공된 것이다. 그 전에 오월영령들은 현재 묘지 뒤편에 있는 망월동 구 묘역에 묻혀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은 손수레나 청소차 등에 실려와 아무렇게나 매장됐다.

그 뒤 망월동 묘역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민주성지로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지자 군사정권은 묘지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시도했다. 묘를 이장하도록 유족들을 회유하는 등 묘지를 분산시키려고도 했단다. 그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라서 국립묘지 완공 후에도 구 묘역을 원형대로 보존해 놓았고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열사들을 안장하는 묘지로 활용하고 있다.

 
  
국립 518 민주묘지의 묘역. 오월영령들의 무덤이 정갈하게 정돈돼 있어 보기에도 좋고 그들의 넋이 제대로 위로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도 좋았다.
ⓒ 박솔희

민주의 문을 지나 들어가 참배광장에서 분향을 하고 묘역을 둘러봤다. 국립묘지는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민주열사와 518 희생자들이 넓고 깨끗한 묘지에 따뜻하게 묻혀 있는 모습을 보자 괜히 내가 다 안심이 되었다. 마음의 빚을 덜었달까.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민주주의는 분명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니까.

 
  
오월영령뿐 아니라 여러 민주 열사들의 묘가 안장된 망월동 구 묘지
ⓒ 박솔희

차분한 느낌의 국립묘지와 달리 뒤편으로 이어져 있는 망월동 묘역은 조금쯤 비장한 느낌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열사를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즐비하고 바람결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도 들려올 것 같다.

박종태, 이용석 열사를 비롯 비교적 최근에 돌아가신 노동열사들의 묘가 여러 기 있었는데 그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08년 촛불정국의 한가운데에서 분신해 돌아가신 고 이병열 열사의 묘였다.

 
  
망월동 구 묘지에 안장된 고 이병열 열사의 무덤. 고 이병열 열사는 2008년 6월 촛불정국의 한가운데서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 박솔희

뜨거운 여름이었고 나는 촛불집회에서 만난 학교 선배들을 따라다니는 새내기였다. 선배들을 따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이병열 열사 영안실에 가서 문상을 하고 거기서 밤을 샜다. 아침엔 상여꽃도 접었다. 서울광장 영결식과 이어진 가두행진에도 참여했다.

친지가 아닌, 생판 모르는 남의 상가에 간 것도 장례식에 참석한 것도 처음이었다. 영정사진으로밖에 본 적 없는 분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굉장히 슬펐던 기억이 난다. 분신. 전설처럼 귀동냥한 전태일이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그렇게 죽었더랬다. 나로서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목숨을 끊은 그가 슬펐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펐고 그래도 바뀌지 않는 고지식한 무언가가 더 슬펐다. 만장의 행렬이 종로를 가득 메웠다.

그의 죽음 이후 만 이 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수많은 민주유공자들의 '화려한 휴가' 후 달라진 것은...

묘역을 둘러보고 나서 한편에 있는 추모관을 둘러봤다. 추모관은 518 민주항쟁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잘 갖추어 놓았다. 어린이 체험학습관도 따로 있는데 민주주의 '조기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518 민주묘지 외에 상무대 옛터인 상무지구에 있는 518 기념공원과 518 자유공원에도 들러 보면 광주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 데 교과서보다 낫다.

 
  
추모관 안에 전시돼 있던 피묻은 돌. 518 민주항쟁의 현장을 증거한다.
ⓒ 박솔희

동명의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광주 민간인 학살 당시 계엄군의 작전명은 '화려한 휴가'. 수많은 열사, 희생자들이 화려한 휴가를 떠난 후, 201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열사가 나지 않는, 그럴 필요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소요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골목집 셀프 백반 3000원
달콤 커피 아메리카노 3000원
버스비(광천버스터미널→518민주묘지) 1000원
버스비(518민주묘지→금남로) 1000원
떡볶이, 튀김 3000원
버스비(광주YMCA앞→광주역) 100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 = 12000원

우리는 느리지만, 때로 헛걸음질하고 되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8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08년에 촛불을 들었고 20년, 30년 후에는 그 촛불의 기억이 또다른 역사, 또다른 진보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꼭 그래야 한다.

5월이 아닌 망월동의 오후는 매우 한산하여 한두 방울 흩날리는 빗방울과 함께 쓸쓸했다. 비장스럽게도 열사정신에 감화해서 눈물이 막 쏟아지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누굴 위해선지 모르게 나도 한두 방울 흩날렸다. 다시 518번 버스에 올랐다. 광주를 떠날 무렵엔 빗줄기가 굵어졌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 More Pictures

광주 광천터미널, 유스퀘어에 도착해서.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골목집식당. 큰길에 있는 것도 아닌데 우연히 잘도 찾아냈다.
광주에도 이렇게 싼 밥집은 잘 없단다. 택시기사님들이 애용하는 거 같았다.

셀프 백반이 3천원이다. 나는 살짝 편식을 해서 안 집어 온 음식도 있어 식판이 약간 휑하지만-
여기에 계란프라이도 하나 해주시고, 감자조림도 주셨다. 상추는 집에서 직접 기르신 거라며.
거기다가 옆테이블 아저씨가 주신 삼겹살까지! 3천원으로 아침 든든히 먹었다 +_+
삼겹살은 7천원인데 1인분도 되는 곳 처음 봤다. 맛도 좋았다.

유스퀘어 옆 신세계백화점에서 바로 대각선 방향에 있는 카페 달콤. 여수에도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다. 거기도 내가 무지 좋아하는 덴데! 아무래도 별 관련은 없는 것 같지만-. 참새가 방앗간 들어가듯 들어가 버렸다. 카페 '달콤'의 다른 사진들은 여기에

민주묘지 가는 길
정말 우연히도 6월 25일이었다. 그나마 집에 가서 뉴스 보다가 깨달았다.

'역사의 문'


국립묘지에서 망월동 구 묘지로 넘어가는 길. 양편의 돌에는 518을 기리는 시가 음각돼 있다.

망월동 구 묘지. 여기는 태극기도 조기다-

'노동열사 박종태의 묘'

추모관 안. 잘 꾸며놓았더라.
 
취조실

80년대의 생활상을 잘 재현해 놓았다.

피묻은 태극기

집으로 돌아오는, 새마을호 안-.


덧글

  • 2010/07/14 11:4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14 11:57 #

    네 이번 여행 혼자였어요^ ^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가면 같이 어울리고 이야기하고 하는 재미가 있는데, 혼자 가니까 그 공간과 시간에 더 잘 교감할 수 있더군요. 다른 매력이 있어요. ^ ^ 우연히 좋은 동행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 ^
  • 김윤정 2010/07/14 15:13 # 삭제 답글

    그럼 잠은 어디서 자고했나요 ??
    그리고 비용은 어느정도로 예상해야하죠 ??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14 15:19 #

    기사에 보시면 소요비용을 적어두었어요. 참고하시면 될듯^ ^ 비슷하게 들지 않을까요?
    잠은 기사에도 적었듯이 찜질방에서 잤어요. 광주역 맞은편에 있답니다.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도 찜질방에서 자거나, 아니면 당일치기 후 집에 들어가는 식으로 여행했어요. 오래 나와 있게 되면 짐도 무거워지고 체력적으로도 지쳐서 힘들거든요.
    내일로 티켓을 특정역에서 끊으면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삼랑진, 제천, 단양 등의 역 관사에서 묵기도 했는데 찜질방보다 안전하고 깔끔해서 좋았어요.
  • 2010/07/14 20:3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14 20:49 #

    전남대에 있는 연못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ㅋㅋ 전남대 근처에 한 번 가보긴 했는데, 연못은 보지 못해 궁금하네요! :D
  • 조은화 2010/07/14 22:35 # 삭제 답글

    광주,,제가 사는데,,이렇게 보니 달라 보이네요.
    다음에,,또 놀러 오세요 ㅋ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7/15 00:20 #

    광주 좋은거 같더라구요 ^ ^
    막상 자기가 사는 지역에는 무심해지기 마련이죠. 이번에 광주 갈때도 광주 출신 지인에게 물었더니 볼거 없는데 왜가냐고 심드렁해 하더라는 ㅋㅋㅋㅋ
  • 벽화마당 2010/08/06 11:05 # 삭제 답글

    자세하게 잘 설명이 되어 있네요 사진도 잘찍고요
    벽화마당 구경오세요
    http://cafe.naver.com/painterkimhawon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06 16:08 #

    고맙습니다. ^ ^ 화백님이신가봐요? :D
  • 2011/04/11 07: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운오리 2011/04/13 03:39 #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_^
  • 2011/04/24 11: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운오리 2011/04/24 19:54 #

    우왕우왕. 반갑습니당! >ㅅ<
  • 트랭크윌 2014/03/02 03:45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3년 후에 보게돼네요! 골목집 식당이 저희 엄마식당인데 네이버에 한번 검색해봤다가 우연히 보게되었어요.
    맛있게 드시고 가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 엄마라서가 아니라 진짜 제가 항상 밥먹을때도 맛있어요^^
    혹시 블로그하신다면 제 블로그에 오셔서 서로이웃좀 걸어주시겠어요~?
  • 미운오리 2014/03/02 14:28 #

    우와 반갑습니다 ^^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있어서 작은 가게지만 여기저기 소개를 많이 했어요.
    저는 이글루스 블로그를 하는데 이글루스에는 서로이웃 기능은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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