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무슨, 한 번씩 앓는 '영혼의 감기'일뿐 OhmyNews

사춘기는 무슨, 한 번씩 앓는 '영혼의 감기'일뿐
10.06.13 14:17 ㅣ최종 업데이트 10.06.13 14:17 박솔희 (jamila)
 

"영혼이 감기에 걸린 거지. 그냥 지나갈 거예요. 내버려 두세요."

이유없이 눈물이 나고 불안하고 센티멘털한 심정이 가득했던 내 오월. 남들은 다음날 출근도 한다는 라식수술을 하고는 지독한 몸살이 나서 꼬박 이 주간 침대에 붙박인 게 시작이었다. 가망 없는 짝사랑을 새로 시작했고, '자발적 연애 거부자'라 큰소리 쳐 대던 가슴은 신산해졌다. 몸살이 거의 나을 무렵에는 종일 비 맞을 일이 있어 몸 상태는 원상 복귀, 마음 상태도 다시 우울. 만성적인 불면증은 극도에 달해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잤고, 보건소 의사는 내게 진정제를 처방해주며 정신과 상담을 권할 정도였다.

몸도 마음도 감기… 매 순간이 괴로웠던 그 때

아주 친한 친구 몇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다. 몸과 마음이 최악의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온갖 사소한 우연들에 일일이 상처를 받아 가면서, 평소 같으면 누가 대신 걱정해줘도 그저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고민 않던 현실의 장애물들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며 나는 그저 감정의 늪 속으로 깊이깊이 침전했다. 그 때, 단골 카페의 사장님은 영혼과 자아와 세계와 뭐 그런 얘기가 나오는 책을 한 권 빌려주며 내 병명을 '영혼의 감기'라 진단했다.

"일년에도 몇 번씩, 누구나 다 앓는 거예요.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야. 외로움? 두려움? 언제나 있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그건 여전한 거예요."

그 때 나는 아주 외로웠고, 또한 피로했다. 날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즐거움에 눈을 빛내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현실감이 들고 덜컥 모든 게 불안하게 느껴져서 괴로웠다. 너무너무 학교가 다니기 싫었던 작년 가을 이후 이런 우울감이 찾아온 건 아주 오랜만이어서 나는 더 당황했다. 치열한 학점 경쟁과 방살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휴학을 하고 호젓하게 지방의 부모님 집에서 책이나 읽고 홍차나 마시면, 나는 계속해서 행복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런 내게 그녀와의 상담은 그 어떤 명약보다 귀했다. 새벽 한 시에 영업시간이 끝나고도 그녀는 한참이나 더 내 얘기를 들어줬다. 나는 두서도 없이 학업, 연애, 존재감의 부재, 현실과 이상, 가족, 미래 등등에 대한 넋두리들을 쏟아냈고 현명한 상담자들이 항상 그러하듯 그녀는 진지하게 공감하며 사려깊게 들었다. 그리고 아주 적절하고 짧은 몇 마디의 조언. 나는 머릿속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앓다보면 절로 낫는, 한 번씩 찾아오는 '영혼의 감기'

때때로 찾아오고 또 때 되면 물러가는 이 심란함과 극도의 우울이 단지 내 미숙한 젊음의 상징일까?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라는, 때늦은 사춘기의 증표일까? 20대의 나이가 30대가 되고, 30대가 40대가 되어 더욱 성숙해지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그런 가볍고 유치한 시기일 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나는 아직 별로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여러 인생선배들의 증언에 의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도 있다. 물리적인 나이와는 상관 없이 누구나 꽃가루 날리는 봄이면 괜히 콧물이 줄줄 나고 환절기면 한 번씩 가벼운 감기를 앓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마음도, 영혼도 이따금씩 앓는다. 비단 십대 시절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영혼의 감기는 저절로 걸렸다가 저절로 낫는다. "감기는 병원 가면 2주만에 낫고, 병원 안 가면 14일만에 낫는다"는 말이 있다. 2주가 안 걸려 내 봄 감기는 다 나았다. 육신의 감기도, 영혼의 감기도. 카페 사장님과의 상담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도 스스로를 달래고 추슬러서 14일이면 다 나았을 거다.

저절로 낫지만, '소통'은 도움이 되죠

사춘기도 아닌데, 괜스레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하다고? 별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울화통이 터지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삶에 의욕이 없다고? 당신은 지금 감기에 걸렸다. 철딱서니없는 사춘기 시절은 지났는데, 갑작스레 찾아오는 불청객에 의아한가?

고등학교 때 도덕책은,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Human Becoming)'라고 그랬다. 삶을 통해서 삶을 완성해 나간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스무 살 땡 치고 생물학적으로 성인이 됐다고 해서, 투표권이 있고 술과 담배를 적법하게 살 수 있다고 해도 그걸로 당신이 '완성'된 건 아니다. 이제 스물 한 살 먹은 나도, 지천명이 다 된 우리 아빠도 미숙한 건 마찬가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만 20세를 기점으로 갑자기 불완전이 완전으로 변신하는 찰나가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이따금 아프고, 한 번씩 감기를 견디며 산다.

영혼의 감기에는 시간만이 약이지만 '소통'은 괴로움을 더는 데 도움이 된다. 이야기하기. 잘못 먹은 음식을 게워 내듯 체한 생각들을 토해내기.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해 보라. 가족, 친구도 좋고 나처럼 단골 카페를 찾아도 좋겠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굿 리스너(Good Listener)'를 찾아내는 일이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를 짓누르는 고통과 번뇌의 정체를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 답을 찾고 길을 찾을 수 있다. 상담자는 눈을 맞추며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씩 동의해 주는 걸로 충분하다. 전문가에게 받는 상담도, 사실 별 건 없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말이 많은 상담자는 사실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나도 겪고, 당신도 겪었고, 앞으로 우리가 또 수도 없이 겪어야 할 사춘기들에, 영혼의 감기들에 대처하는 법은 기다림과 소통이다.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 오마이뉴스 <내 인생의 사춘기> 기사공모를 위해 쓴 글인데, 영 시원하게 풀리지가 않았다. 내가 송고하면서 찜찜한 글은 역시나 제대로 배치가 안 된다. 잉걸 신세 ㅜㅗㅜ 오마이뉴스 편집부 엄청 꼼꼼하다 ;ㅂ; ㄲㄲ
공모 타서 상금이나 받아볼까 했는데, 포기임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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