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기출문제집: 대한민국 이십대는 답하라 문장 훔치기

 
최성각_작가, 환경운동가,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나의 이십대
_ 솟는 힘을 주체 못 해 뗏목을 타고 낙동강을 종주하거나 대개 맨발로 길에서 살았다. 사람은 누구나 괴물이라 생각했고, 특히 술 잘 마시는 괴물들과 어울려 주야장천 술을 마시곤 했다. 학교, 잡지사, 출판사를 기웃거렸으나 잠깐밖에 근무를 못 했다. 돈보다는 내 멋대로 쓸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며, 좌충우돌, 우왕좌왕, 엎치락뒤치락하며 보냈다. 문학이 혹시 가르쳐준 게 있었다면, 그것을 잠시도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밤새도록 비를 맞아본 적이 있는가?

나이 들면 어떤 경우라도 신중하게 몸을 가려서 행동한다. 가려서 행동한다는 신중한 태도는 대개 현명하고 지혜로운 덕목으로 간주된다. 나이가 가르쳐준 덕목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만큼 젊은 날의 찬란한 맹목과 아름다운 어리석음에서 멀찌감치 이탈해 있다는 것이므로, 곧 한없이 불쌍하고 한심한 연령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젊은 사람이 해서 마땅한 짓만 골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젊음이 만약 있다면 그야말로 젊음의 수치라 할 만 하다.

그대들, 젊은이들이여! 할 수 있는 한 열렬하게 사시라. 연애든 뭐든. 그리고 너무 약은 선택만 골라서 하지는 말기 바란다. 좀 바보 같더라도 그대들 본능에 충직하기 바란다. 잔머리보다는 가슴에서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명령에 순종하기 바란다. 그러다 더러 얻어터지고, 비도 맞고, 열병에도 걸리고, 병원 응급실에도 실려가고 그러기 바란다. 거기까지만 해라. 그렇다고 일부러 그러진 마시고. 모름지기 젊음이 뭔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 때가 아니겠는가, 그 말이다.

*

심상정_심상정마을학교 이사장, 제17대 국회의원, 진보신당 대표 역임

여자라는 이유로 억울해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크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의 힘은 당신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세다. 어쩌면 당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크립톤 행성에서 지구로 내려온 슈퍼맨일지도 모른다.

*

황경신_작가, PAPER 편집장, <그림 같은 신화> <종이인형> <유령의 일기> 저자

꽃이 시드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나요?

기억의 힘으로,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할 수 있는 한 장의 그림이 있나요?


"어떤 그림이든, 마음에 드는 걸 한 장 골라. 시간이 날 때마다 그걸 들여다봐. 빛을 보고 색깔을 보고 구도를 보고 느낌을 봐. 선을 보고 면을 보고 여백을 봐. 그림이 마음을 열 때까지 귀를 기울여.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어. 눈을 감고 그 그림의 세밀한 부분까지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해. 그 일에 익숙해지면, 그때 누군가를 만나도록 해. 부분을 기억하고 전체를 이해하는 것, 그게 소통이라는 거야."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사람들은 모두 미래의 행복을 잡으려고 애를 쓰죠.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요. 미래의 행복을 잡을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그건 미래에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사실 오늘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하루분의 밥, 하루분의 웃음, 하루분의 사랑. 손만 뻗으면 잡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요. 이 순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니까요. 사랑하세요. 단 한순간도 쉬지 말고. 오늘 만난 사람을, 지금 함께하는 시간을, 눈앞의 풍경을,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머리카락을 헝클며 지나가는 바람을, 지는 해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을, 읽고 있는 책을, 그 책을 쓴 작가를, 그 속의 주인공들을, 당신을 통과하는 생각들을. 어차피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사는 거니까요."

우물처럼 깊은 기다림을 알고 있나요?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동안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리 빨리 와도 언제나 너무 늦다. 기다리는 시간이 십 분이라 해도 그 사이에 계절이 수없이 바뀐다. 그녀의 마음은 끝이 난다. 끝나고 나면, 기다리던 무엇이 오든 말든 상관이 없어진다. 기다리던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이 길지 않은 생의 마지막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건 기다림이었다고, 그녀는 대답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에 갇혀 있는 새들을 다 날려보냈다고.

그리하여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다고.

*

명진스님_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주지 스님

나의 이십대_ ... 한 스님께 "왜 출가를 하셨습니까" 물은 적이 있다. 그 분이 "자네는 왜 공부하나?" 되물으시기에 "대학 가려고 공부합니다" 라고 했더니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고 답하셨다. 그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나를 모르면서 무슨 대학입시냐, 내가 나를 알아야지'라는 결심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만난 적이 있는가?

인생은 남이 사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이는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을 만나고 남에게 묻는다. 남에게 묻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만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묻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물어보는 것은 문제다. 자기 자신을 만나고 묻다보면 알게 된다. 내가 참 나를 모르는구나 하는 단순한 사실을. 그러면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지만 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도 모르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모른다. 자기 자신도 모르고, 살고 있는 공간도 시간도 모른다. 모르면서 그냥 아는 척 살고 있는 것이다. 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루 빨리 이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 이 지식으로부터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안다고 하는 착각, 허위의 약속에 의한 앎을 버리면 버릴수록 진실에 다가갈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바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고 또 묻는 성찰을 통해 진실한 자기 자신을 만나면 그 속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인연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들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순간순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바로 참다운 나 자신을 말이다.

마음에 힘을 뺐는가?

당신 컴퓨터의 바탕화면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거짓의 세계에 살고 있다. 여기서 해방되려면 몰라야 한다. 모르면 간단하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잘난 척할 게 있을까? 불교에서는 모름의 상태가 지속되게 애를 쓰는 것을 '도를 닦는다, 참선한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스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비어 있기에 꽃 피고 천둥 치고 눈 내리는 삼라만상이 어우러지는 허공처럼 우리의 마음도 비우고 비워서 깨끗한 바탕화면을 만들자.

*

김남희_도보여행가,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4>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외로움이 외로움에게>의 저자

당신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엔 오직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한 부류의 인간은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고, 다른 한 부류의 인간은 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며 사는 인간이다."

'불편한 진실'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

마음이 가난한 나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대가도 없이 베풀던 이웃들이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산간마을에서 가장 귀한 장작을 때 끓인 물로 내 발가락을 일일이 닦아주시던 파키스탄의 할머니, 테헤란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삼박사일간의 기차여행 내내 나를 먹이고 돌보던 이란 처녀들, 신산한 살림살이 내보이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고 나를 이끌어 재워주고 먹여주던 그 수많은 사람들.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눈다는 건 물질적인 풍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임을 가르쳐준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다고, 어디에나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이들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불편한 진실'에 눈 감지 않기 위해 불편한 삶도 조금은 감수할 줄 아는 뜨거운 이십대를 기대한다.

*

서희태_서울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한국공연예술교육원 교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예술감독

당신을 기억도 못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한국에 돌아온 지 십삽년, 그런 레오를 잊을 수 없어 한 방송 프로그램 촬영차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그를 찾았습니다. 아직도 그는 시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는데, 레오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설명을 듣고 활짝 웃으면서도 생각나지 않는다더군요. 순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베푼 사람은 잊는 거예요. 받은 사람은 이십 년 넘게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자신의 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레오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감성을 심어주었습니다. 아마 십 년이 흐른 뒤 레오를 만나면 지금의 일을 또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나는 이렇게 또 또렷이 기억에 남는데 말입니다.


덧글

  • 아름 2010/06/12 17:34 # 삭제 답글

    아, 명진스님도 계시네... 이 책 많이 팔렸으요? 학교 행사 때 협찬 받았었는데, 잘 안팔리더라구...
  • 미운오리 2010/06/12 18:49 #

    학교 행사에서라면 안팔리겠지. ㅋㅋㅋ 내가 읽은게 아마 4쇄였나 그랬어요. 1월쯤 나온 책인데. 지금쯤 모르긴몰라도 한 7-8쇄 이상은 찍지 않았을까? 서평들도 다 좋던데.
    북하우스면 출판사도 꽤 큰 데 아니오? 저자들 역량도 있고 마케팅을 잘 했겠지뭐.
  • 미운오리 2010/06/12 19:22 #

    명진 스님 글 멋있더라. +_+
  • 꿈의정원 2010/08/11 11:51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북하우스 출판사 박정우 입니다.
    님께서 쓰신 인생기출문제집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 인생기출문제집2권이 새로 출간되어서
    홍보도 할겸 이벤트 소식도 전할겸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지금 우리 까페에서 인생기출문제집2권과 mp3플레이어를 드리는 이벤트 진행중입니다.
    한번 들르셔서 이벤트 참여도 하시고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감기도 더워도 조심하셔요~
    아참 저희 까페 주소는요
    http://cafe.naver.com/myfirstbook 입니다.
  • RAIL路er 미운오리 2010/08/11 12:41 #

    그러잖아도 2권 소식 듣고 읽어보려 했는데(특히 노홍철씨의 광팬인지라!!>.<) 잘 되었네요. 이벤트 참여합니다. MP3 필요없고 책 주세요 ㅠㅗㅠ ㅋㅋㅋ 서평 쓸게요. +_+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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