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인권영화제 다녀오다 자기탐구일지 2010

어제 인권영화제에 다녀왔는데 놀랍게도 나의 '인권 감수성'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을 다시금 자각했다.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려 VIP석에 앉아서 영화를 봤다. 영화 상영 전에 지나가는 영상을 통해서 인권영화제가 참 어렵게 개최됐단 걸 알았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영화제에 건물 대관을 허용하지 않고, 그래서 작년에는 청계광장에서 영화제를 열였으나 올해는 그마저 불허. 결국 찾은 공간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하지만 좋았다! 밤에 약간 쌀쌀하긴 했지만 나는 감기에 걸려 있었어도 그마저 좋았다. 이런 영화는 너무 안락한 곳에서 보면 좋지 않다고 생각. 꾸준히 마로니에 공원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한 영화가 끝나고 GV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발언 내용을 즉시 속기로 자막처리해주었다. 모두를 위한 VIP석과 함께, 배려가 돋보였다. 감동.

내가 본 영화는 동성애자의 인권과 관련한 <지난 겨울, 갑자기>라는 작품이었는데 아마 이탈리아 영화인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였는데, 다큐가 뭐 다 그렇듯 약간은 단조로웠고, 흡인력이랄까 하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난 끝까지 봤다. 최근 게이와 관련한 드라마도 많이 나오고 개인적으로 게이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 등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100% 지지하는 심정으로 봤다. 그런데 다큐는 상당히 공정해서, 동성애자를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도 많이 담고 있었는데 확실히 그들의 말도 (정말 아주 조금이지만) 설득력이 있었기에 역시 언제나 고르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비난하고 심지어 저주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담히 담아낸 두 동성애자 감독들이 대단하다.(영화에 대한 감상과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지지를 담아, 따로 기사를 하나 낼 생각.)

조금이라도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왕이면 기념될 만한 것도 가지면 좋겠다 싶어서 티셔츠를 샀다. 만원이라서 싸지는 않았지만 후원금이니까, 하고 샀다.(인권영화제 스태프st임) DVD도 팔고 있었지만 그런 건 쟁이는 체질이 아니라서-. 아, 장미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산 것이다. 포장도 장식도 없이 열 송이에 2천원 주고 샀다. 글쎄, 뭔가 마음이 많이 촉촉해져 있어서 그냥 자신을 위해서 '실용적이지 않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막 싱싱하다거나 아주 화려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그냥 장미면 충분했다.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이 있었지만 다 예뻐서 그냥 노통 생각하면서 노란색 샀다. 그런데 밤에 만난 친구 曰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 배반'. 노란 장미 네 송이의 꽃말은 '배반은 또 다른 배반을 낳는다' 노란 장미 꽃바구니의 꽃말은 '인연이 아닌가봐요'래." ㅜ_ㅜ

운동이고 진보고 하는 것을 알기 전에 나는 자신의 권리,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의 천부적 권리인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꽤나 오래 생각해 왔는데, 뭔가 오랜만에 다시 조우했달까. 피하고 있었거나 혹은 놓치고 있었던 것을 다시 마주쳤달까. 영화가 최루성은 아니라서 울음을 쏟진 않았는데(사실 내 감정만 생각하면 난 차라리 그랬으면 했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관객 자극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니까 오히려 이런 담담한 영화가 더 훌륭할 수 있는 거 같다) 나는 내내 울먹울먹한 심정이었고 가슴이 답답했다. 혼란했다. 맥이 쭉 빠졌지만, 그래도 이 언저리에 분명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은 12시부터 태준식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기에 그걸 보고 내려오려고 2:45 기차표를 끊어놨는데, 친구랑 새벽 다섯 시까지 수다 떨다가 결국 친구는 보강 못가고 나는 영화 못보고 그래도 김치찌개는 먹고 빠듯하게 용산역 도착해 내려왔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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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lliott 2010/05/30 06:59 # 답글

    작년 개막식에 갔었는데. 올해는. ㅉㅉ
  • 미운오리 2010/05/30 13:22 #

    나 가다가 건대입구역에서 환승하다가 우연히 노다지 봤어요. 영화제 감상기가 과제라던데? 다지군도 개막식에 갔었다고 함. 졸다 왔다고- ㅋㅋ
  • 북극곰 2010/05/30 11:3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인권영화제 활동가 입니다. 14회 인권영화제에 다녀가셨군요.반가워요~ 좋은시간 보내셨길 바랍니다. ^^ 쓰신 글을 인권영화제 후기로 퍼갈 수 있을 까요? 혹시 문제가 되면 연락주세요^^
  • 미운오리 2010/05/30 13:26 #

    물론 쓰셔도 됩니다.^ ^ 영화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갖고 한 포스팅이니까요. 제가 본 영화에 대해서는 따로 감상기를 쓸 생각입니다. 좋은 영화제 만드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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