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 추모하러 간 봉하마을에서, 아빠와 '한판' 붙다 OhmyNews

* 어제 봉하마을 다녀와서 새벽 3시까지 써서 보낸 기사다. 비 맞고 무리해서 감기가 왔지만 간신히 써 보내고 오늘은 종일 잠만 잤다. 개인적으로는,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를 정치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은 냉정한 마음도 든다. 조금 고민하다가 기사 말미에도 집어넣었지만, 이 노란 물결이 그저 부르주아들의 자기위안적인 소비행위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 열심히 깨어 있어야 한다.

노짱 추모하러 간 봉하마을에서, 아빠와 '한판' 붙다
1년만에 아빠와 다시 간 노무현 삶터...1만5천 박석 중에 제 이름도 놓였습니다
10.05.24 14:01 ㅣ최종 업데이트 10.05.24 14:01 박솔희 (jamila)
 

5월 23일 오전 7시. 원체 야행성이라 잠든 지도 얼마 안 된 나는 아빠의 성화에 들볶이며 눈을 떠야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1주기인 이날 아빠와 봉하마을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부터 노무현재단이 준비한 '민주 올레' 걷기 행사가 있고 오후 2시엔 추도식 겸 대통령 묘역 완공식이 있으니 서둘러야 한단다. 아빠가 이렇게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다. 노 대통령 추도식이라든지, 노 대통령 추모 콘서트라든지, 노 대통령… 뭐 그런 게 아니라면. (관련기사: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녀왔어요)

아빠와 딸, 두 번째 봉하마을 방문

간신히 세수만 하고 길을 나섰다. 나는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챙겼다. 아빠는 트레킹을 한다고 아예 등산 복장을 갖춰 입었다. 아침을 먹으러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다 봉하마을 가는 이들 같다. 어젯밤부터 내리는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하다.

아빠와 봉하마을에 가는 건 두 번째다. 작년 여름에 시간을 내 한 번 왔었다. 생가와 사저를 둘러보고 공사중인 묘역에 절도 하고 봉화산에도 올라갔다. 아빠는 부엉이 바위 위에다가 담배 한 대를 불 붙여 올려두었다. 정토원에서 절밥을 얻어먹고 봉하빵 한 상자 사서 집에 돌아갔다. 그 때는 그냥 추모하러 온 거였고 오늘은 1주기니 더 의미가 있다.

오전 11시 경남 김해 진영읍에 있는 대창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의 모교라고 한다.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족히 수백 명은 돼 보인다. 곧바로 봉하마을까지 약 1시간이 걸리는 5km의 '민주 올레' 걷기 행사가 시작됐다.

 
  
▲ 민주 올레 걷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노 대통령의 모교인 대창초등학교에서 봉하마을까지 약 5km를 한 시간 남짓 걸었다.
ⓒ 박솔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녀노소가 함께 걸었다. 시민들은 간간이 '사랑해요 노무현'을 외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행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걷다가 스님 한 분이 눈에 띄어 말씀을 붙였다. 충북 청주 시민행동에서 오신 서운사의 진화 스님은 지난 2002년 노사모에 가입하셨다고 한다. "청주에서 노 대통령 추모행사를 하는데, 경찰이 상당히 통제를 하니까 쉽지는 않다. 그래도 그를 그리워하는 추모객들이 정말 많다"면서 지나친 경찰 통제에 대해 "지푸라기를 보고 뱀이라 겁낸다"고 비판했다.
 

 
  
▲ 봉하마을에 입성하는 시민들 민주 올레 코스를 걸어 봉하마을에 입성하고 있다.
ⓒ 박솔희

아름다운 봉하, 일 년 사이 바뀐 모습

이윽고 봉하마을에 다다랐다. 작년과는 달라진 모습이 많이 보였다. 작년의 봉하가 그저 평화로운 농촌이었다면, 올해의 봉하는 그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노무현 재단과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의 노력 그리고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눈에 들어왔다.
 

 
  
▲ 아름다운 봉하 마을과 논 사이에 아름다운 산책로를 조성했다. 작년에는 없던 길이다.
ⓒ 박솔희

 
  
▲ 봉하마을 쉼터 마을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을 정자
ⓒ 박솔희

 
  
▲ 노란 풍선과 바람개비 마을 둘레를 따라 노란 바람개비와 풍선, 리본 등이 이어져 있었다.
ⓒ 박솔희
 
  
▲ '바보 노무현' 노 대통령이 견학온 중고등학생들에게 꾸벅 절하는 사진 위에 '바보 노무현'이라는 추모시가 인쇄돼 걸려 있다.
ⓒ 박솔희

 
  
▲ 당신을 기다립니다 추모시 현수막 사이에 걸려있는 노란 초롱
ⓒ 박솔희

 
  
▲ 추모 화환 국회의원과 각계 인사들이 추모 화환을 보내 왔다. 인상적인 것은 '세계노씨종친회'에서 보낸 화환이었다.
ⓒ 박솔희

그리움 가득한 봉하, 비인지 눈물인지 자꾸 흐르네

 

 
  
▲ 추모객으로 가득한 행사장 행사 시작 한두 시간 전부터 이미 봉하마을은 추모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 박솔희

봉하마을 여기저기를 기웃대다가 행사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공식 행사는 오후 2시부터지만, 1시경 이미 마을 곳곳은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봉화산에 오르거나 추모의 집을 구경하거나 묘역 앞에 헌화하거나 하고들 있었다. 2500석이 준비됐다던 의자는 이미 빈 것이 없었다.

30분 가량 추모 영상을 상영하고, 2시부터 공식 행사가 시작했다. 영상이 나올 때부터 사람들은 알아서들 우산을 접었다. 그리운 님의 모습과 목소리에 비인지 눈물인지 차고 뜨거운 것이 흘렀다. 사회를 맡은 김제동씨의 목소리는 날씨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비가 오는데도 피하지 않고 멀리 봉하까지 찾아주어 고맙다"고 했다(우리 모두가 상주인데, 누가 누구한테 고맙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 사회를 맡은 김제동 씨 작년의 노제에 이어 1주기 추모식에도 김제동 씨가 사회를 맡았다. 그의 목소리는 날씨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 박솔희

반주 없이 부르는, 애끓는 애국가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 이해찬 전 총리의 추도사와 도종환 시인의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문성근, 명계남 두 배우의 애끓는 통곡에 객석은 울음바다가 됐다. 유족 대표로 노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나와 봉하마을을 찾은, 그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노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추모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노 대통령의 묘역은 시민들의 메시지를 새긴 1만 5000개의 박석으로 이루어졌다. 아주 작은 비석들인 셈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묘역을 대통령께 헌정했다. 이어 권양숙 아름다운봉하 이사장과 노건호씨가 마지막 박석들을 제자리에 놓으면서 묘역이 완성됐다. 그리고 1004마리의 나비가 날아올랐다.

 
  
▲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비석. 비석 자체에는 '대통령 노무현' 단 여섯 글자만 쓰여 있다. 비석 앞에는 노 대통령의 명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 박솔희

 
 
▲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다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이 노 대통령 서거 직후 했던 말씀을 이희호 여사의 필체로 묘역에 새겼다.
ⓒ 박솔희

 
  
▲ 박석 시민들의 모금으로 비용을 마련하고 시민들의 메시지를 새긴 박석들. 묘역 전체에 1만 5천 개가 깔려 있다.
ⓒ 박솔희

 
  
▲ 우리 가족의 박석 아빠가 나와는 상의도 없이 새겨넣은 박석의 문구. 덕분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1만 5천 개의 박석들 사이에서 찾아내느라 애 좀 먹었다.
ⓒ 박솔희

묘역에 깔린 박석들을 들여다보면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적어넣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 집의 경우처럼 누구네 가족, 하는 경우도 있고 삼대가 함께 사연을 적은 것도 많았다.

부녀가 함께, 삼대가 함께... 가족끼리 찾기 좋은 봉하마을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은 가족 단위인 경우가 가장 많아 보였다. 친구나 연인, 혹은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온 모임도 있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 삼대가 함께 봉하에 엄마, 아빠, 이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봉하를 찾은 아이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은 사촌지간이다.
ⓒ 박솔희

마을회관 근처에서 다리쉼을 하던 가족은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아이들과 김해에 식사를 하러 왔다 들렀단다. 5학년, 4학년인 아이들은 사촌지간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니 어떤 것 같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TV로도 접하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사진도 찍고, 추모 메시지도 한 마디씩 적어보니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며 "오늘 일기 쓸 거리도 생겼다"고 웃었다.

봉하마을은 정말로 가족이 함께 찾기 좋은 곳이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볼거리, 느낄거리, 먹을거리가 두루 많다(이날 봉하빵은 인기폭발이어서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살 수 있었다). 교육적으로도 훌륭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나들이 장소로도 그만이다.

묘역 참배 하고, 박석 찾아 인증샷 찍고, 추모의 집이랑 대통령 생가도 기웃거리고 한 시간 기다려 봉하빵 사니 저녁이 다 됐다. 아빠와 나는 발길을 돌렸다.

밥상머리에서 부모님과 정치얘기 해보셨나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같이 봉하마을 오니까 좋지?"하니 아빠는 "혼자 오는 것보담 낫지" 한다. "내가 뉴라이트 학생연합 같은 데 들어가거나 했으면 어쩔 뻔했어!"하니 아빠는 "그랬어도 할 수 없지"하며 허허 웃는다.

나는 또, '이제 우리가 할게요'라는 슬로건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이제, 진짜, 우리가 해야 하는 거라고. 노무현 정신의 계승은 단순히 그를 그리워함에 있지 않다고, 봉하마을 자주 찾는 것도 좋지만 투표 꼭꼭 챙겨서 하고, 노무현재단 후원도 좋지만 정말 더 어려운 시민단체들도 많이 있다고.

나는 최근에 취재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그리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를 했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픈 우리가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노무현을 '소비'하는 '보통 사람'이 돼버리지 않겠느냐고. 백년의 백년 후에도 영원한 내 마음속 대통령 노무현은, 우리가 그를 닮을 때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정치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어보면 보수적인 부모님 때문에 답답해 하는 경우가 많다. 모 신문을 신봉하는 부모님 때문에 자기는 집에서 '좌빨'로 찍혔다는 둥, 무심코 촛불집회 나갔던 얘기를 꺼냈다가 밥상머리에서 사단이 날 뻔했다는 둥 갖가지다. 게다가 정치 문제를 떠나서도, 그냥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부모와 공감대가 없어 어색해지는 친구들도 있다. 그에 비해 다른 걸로 뚱하다가도 정치 얘기 하면서 의기투합하는 우리 부녀는, 이것도 복이지 싶다.

부모님과 어딘가 모르게 나눌 이야기가 없어 어색하다면, 좋은 봄날에 마땅한 가족 나들이 장소가 없어서 고민이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봉하에 들러보길 권한다. 사람사는 세상에.

 


이글루스 가든 - 하루한번 정부까는 가든

덧글

  • 고 유 2010/05/24 20:01 # 답글

    심하게 부럽네요. 아빠와 바라보는 곳이 다른 것은 정말 슬픈 일이어서요. 흙
  • 미운오리 2010/05/24 20:25 #

    으하하. 일부분 자랑질에 목적을 둔 글이라서.. 훗
  • 닉네임 2010/05/24 20:59 # 답글

    심하게 부럽네요.(2) 저희 집은 종교와 정치의 자유가 보장되있습니다만... 부럽습니다.
    그리고 뉴라이트 학생연합에서 빵~터졌습니다. ^^;;
  • 미운오리 2010/05/24 21:07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전 진지했는데. 우리집은 자유방임이니깐. ㅋㅋㅋㅋ
    노짱 덕분에 나이먹고 아빠랑 다시 친해진느낌 ㅋㅋㅋㅋㅋㅋㅋ
  • 핀투리키오 2010/05/24 22:37 # 답글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합니다. 혈기에 못이겨 했다가 서로 소리만 높아졌었죠.
    이미 설득의 문제가 아니죠.

    그렇게나 선량하신 부모님이 사회/정치적으론 부정한 측에 가까우니..
    사회를 바라볼 때의 인간은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이 아니지요.
    그나마 부모님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서 저에게 조중동식 교육을 안 시킨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노무현의 바람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 미운오리 2010/05/24 23:43 #

    어려운 문제죠. 갑갑하구요.
    갖가지 방식으로 부모님을 바꿔내는 친구들도 있던데(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까! 딴지일보에선 대한민국 자식연합 이란 것도 만들었죠. 어버이연합에 대항하여.) 역시 결코 쉽지 않아 보이더라는.
  • elliott 2010/05/30 07:01 # 답글

    작년 여름에 기차 역에서 쳐졸다가 기차 놓쳐서 못 간 거 생각나네.
  • 미운오리 2010/05/30 13:27 #

    아, 기차 놓쳐서 못갔다던 데가 봉하마을이었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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