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에서 밤을 새우고 자기탐구일지 2010

오늘 나는 '숙명 매거진' 단체티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간다. 한쪽 어깨에 맨 형광핑크색의 가방에는 우리 잡지 창간호가 한 열권쯤 그리고 큰집 냉장고에서 떼어낸 병따개와 야광팔찌 같은 것들이 가득해 무겁다. 한쪽 어깨엔 버버리 쇼핑백을 매고 있는데 그건 오개월 된 내 오촌 당조카의 원피스다. 학교에 가기 전에 명동롯데백화점에 들러 사촌언니의 부유한 남자친구가 언니의 조카이자 내 당조카인 갓난쟁이에게 사준 원피스의 사이즈를 바꾸러가는 것이다. 옷을 한 사이즈 큰 것으로 바꾸어 더 오래 입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난 지하철에서 <위풍당당 개청춘>을 읽으며 청년백수의 번뇌를 연민하고 있다.
전쟁이 날 것 같다지만 우리 학교는 축제다. 우리 학교 외에도 많은 대학들이 요 며칠 축제 기간이다. 나는 휴학생 주제의 설레발로(뭔가 말렸어. 제길) 주점을 준비했고 일하러 간다. 한쪽에선 일하고 작년에 운영했던 학회의 부스에 가서는 팔아줘야 할 테다. 어쨌든 우리 잡지사는 인쇄비 적자가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어제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 쓴 것)

대책없는 잉여킹 경환님이 혼자 우리 주점에 놀러왔는데 마침 예전에 한 번 같이 만난 적 있던 인정언니를 비롯한 국교부 에인젤들이 있었고 거기에 영민오빠 친구들, 자기 동아리 주점 버리고 놀러온 기몌까지 합세한 기묘한 테이블이 이루어졌다. 경환님이 현민언니 얘기를 꺼냈고 전화를 해봤더니 언니는 글라라 주점에 있대서 끝나고 잠깐 보기로 했다. 기몌는 자꾸 경환님이 '회기동 단편선'이 분명하다 주장했다! 내가 단편선 얘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어디선가 그 사진을 봤는지 자꾸 닮았다는 거다!(경환님과 단편선 모두를 안드로메다급 적으로 돌리는 발언) 그게 아니라면 예전에 쌈싸페에 같이 갔던 스케이트타는 오빠가 아니냐는 주장도 했다! 도대체 이경환님의 개성이란 어디에! ㅋㅋㅋㅋㅋㅋㅋ

열두 시에 주점이 끝나고
내가 애들과 부스를 정리하는동안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고 있던 기몌와 경환님은 경비아저씨가 쫓아냈다. 정리를 대충 마치고 두 사람과 같이 있는 현민언니(아는 언니 1이라고도 함)를 만났다. 현민언니는 가방이고 지갑이고 모두 친구가 가지고 신촌으로 가버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댔지만 2시까지만 있다 가라고 붙잡았다.

우리는 부루스타와 오뎅탕 냄비와 맥주를 가지고 효창공원으로 가서 아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숟가락도 그릇도 병따개도 없었다. 부스에 휴지를 걸 때 사용하고 남은 철사로 오뎅을 꿰어 먹고(내가 이를 처음 시도했을 때 기몌는 나를 비난했지만 결국 내가 꿰어준 오뎅을 받아먹었음) 벤치에 대고 맨주먹을 두드려 병을 땄으며 이상하게도 모두 아까는 있던 라이터가 없어졌기에(경환님 曰 "라이터는 돈과 같아서 돌고 돈다.") 부루스타에 담뱃불을 붙여 피워야했다. 나는 뻥튀기가 먹고 싶었고 또 애들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으니까 잡지사 애들이 빨리 오기를 바랬다. 짐을 날라놓고 대충 정리를 하고 온댔다.

나는 물어볼 것도 있고, 오랜만이기도 하고 해서 여러가지로 희수언니를 만나고 싶었다. 전화했더니 총학생회는 진대포에서 뒤풀이 중이랬다. 현민언니도 희수언니를 만나고 싶어했고 나중에 희수언니가 효창공원으로 올라오셨다.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 반가웠고 도대체 그놈의 소송이 어떻게 되는 것이냐 묻고 며칠 전 청탁받은 기사(대학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에 대한)의 소스를 제공받으며 최근 나에게 기사 소스를 제공하지 않는 1인의 뒷담화를 나눴다. 우히히. 희수언니는 집에서 계속 전화가 와서 곧 들어가보셔야 했고 경환님과 현민언니와 나는 갑자기 열띤 토론(하지만 각자 다른 얘기를 했을 뿐)에 들어가버렸다. 희수언니는 나중에 현민씨를 따로 만나고 싶으니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잡지사 친구들이 왔고 우리는 갑자기 병따개와 그릇 등을 득템하여 문명인으로 거듭났다. 애들은 황도와 뻥튀기를 가져왔는데 나는 다양한 색깔의 뻥튀기가 먹고 싶은데 자꾸 빨간색만 많아서 짜증나서 이 빨갱이! 라며 그걸 경환님한테 던졌다.

뭔가 의도치 않은, 그리고 엄청나게 내 위주의 술자리였다. 우리 잡지사 편집장과 부편집장, 그리고 나의 친구 기몌, 그리고 잉여킹 경환님, 그리고 가톨릭학생회 활동하는 현민언니, 그리고 작년 우리학교 부총이었으며 현 집행부원인 희수언니. 경환님이랑 현민언니나 경환님이랑 희수언니는 아는 사이라 해도 나 외에는 별 교집합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서ㅋㅋㅋㅋㅋ 나도 얼결에 모아놓고 뭐 어이가 없었다. 효창공원에서 원시적으로 맥주를 까 먹는 것도 어이가 없고. 휴학생이 학교 축제 와서 설레발치는 것도 어이가 없고. 효창공원에서 술 마신 것도 참 오랜만이고.(1학년 때 그래보고 만 거 같은데) 수술한 지 얼마 안됐다고 술도 담배도 안하고 있었지만 에라, 뒷풀이니까. 그리고 축제니까. 너무나 딱 뒷풀이같은 느낌이라 맥주를 술술 들이켰다. 그리고 계속 뻥튀기를 집어던졌다. 효창공원에는 우리 말고도 사람이 꽤 있었다. 다들, 축제니까 그랬을 거다.

잡지사 애들은 춥다고 열람실에 가버렸고, 경환님과 현민언니와 나는 엄청나게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으며 기몌는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경환님은 뭔가 설득력있는 얘기를 했고 현민언니는 뭔가 희망찬 이야기를 했으며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했다. 해가 뜰 무렵 어떤 할아버지가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끌고 와서는 훼방을 놓았는데 처음엔 그냥 상대해주다가 그냥 이상한 할아버지 같아서 쌩깠다. 할아버지는 계속 시끄럽게 우리한테 말을 시키고 우리 학교를 욕하고 혼자 떠들다가 사라져갔다. 우리는 또 한 번 명화원(삼각지의 탕수육 맛집)에 가기로 했고 경환님은 경희대의 깐풍기 맛집도 가보자 했다. 막걸리가 한 병 있어서 나는 또 기몌랑 남자얘기를 하며 한숨을 푹푹 쉬며 그걸 들이켰고 1g 우울해했다.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오기로 한 그 사람이 오지 않아서 섭섭했던 거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금 혼란스럽고 심란했다. 그리고 난 정말로, 그 사람이랑 잘 되면 2학기에 조기복학을 해도 좋을 거 같다.(그리고 총학 출마 ㄱㄱ? ㅋㅋㅋㅋㅋ 경환님이랑 현민언니가 응원했지만 난 절대로 싫음. ㄲㄲ) 그리고 난 정말로, 그 사람이랑 잘 되고 그 사람이 원한다면 졸업하기 전에 결혼을 해도 괜찮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저 김칫국이겠지. ㄲㄲ 민선배는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랬다. 아, 마음의 상처. ㅠㅗㅠ

다섯시가 넘어서 나는 좀 추웠고 경환님과 현민언니는 쉴새없이 떠들어댔지만 우리는 주변을 정리하고 도대체 그 거대한 오뎅탕 냄비를 둘 곳이 없어 앰방으로 향했다. 나는 앰방에 잡지사의 포토월과 오뎅탕 냄비와 맥주 열댓 병이 든 가방을 두었는데 그건 앰방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엄청난 불온물품이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신성한(?!) 공간에서 우리는 또 한시간이나 떠들어대면서 잡지를 뒤적이고 'Buddha's Birthday'를 축하하고 그러고 있다가 학교 앞에 하숙하는 현민언니는 집 열쇠가 친구가 빼앗아간 가방에 있기 때문에 결국 택시를 타고 신촌에 갔고 우리는 각자의 보금자리로 회귀했다. 정말 어이없는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어이없는 구성의 어이없는 술자리에 ㅋㅋㅋ ㄲㄲ 그러나 오랜만에 신나게 떠들어댔더니 목이 좀 아파서 그렇지 기분이 좋았다. 두 활동가들은 활동가들의 대화를 했고 나는 자신이 활동가가 아니라고 열심히 주장했지만 결국 말려들어 대화했고 알찬 토론에 뿌듯함을 느꼈다.

지금 내가 머리가 좀 아픈 것은 술(사실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때문일까, 맥주와 막걸리를 섞어 마셨기 때문일까, 그냥 해 뜬 다음에 잤기 때문일까, 아니면 심남이에게 몇 시쯤 전화하는 것이 적절한 걸지 고민이 되기 때문일까? 확실한 것은 얼굴이 푸석해졌고 눈이 아주 뻑뻑하다는 거다. 젝일.


덧글

  • 뒤죽박죽 2010/05/23 19:55 # 삭제 답글

    내가 왜 잉여킹이야 =ㅁ=
    난 매우 몹시 심각하게 바쁜 몸이라규!! 아ㅡ, 아마도...
    글고 당연히 밤샐거라고 생각하다니 심각한 인권 침해다!! (버럭)


    **
    고현민과의 담화는 썩 유익했다고 생각하는 1人
    곧 시험기간이니 시험이 끝나고 나믄 명화원 한 번 더 가자긔
  • 미운오리 2010/05/23 23:15 #

    시험이... 상관이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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