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도 사람이었다. 피겨스케이팅 이모저모 20대의 목소리 - 우주관찰보고서


여왕도 사람이었다! 철심장 김연아의 눈물

결국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리스케이팅 150.06, 총점 228.56으로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며 연아는 다시 한 번 스스로 여왕임을 과시했다.
쇼트프로그램 후 담담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김연아 선수가 경기 후 눈물을 흘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던데, 철심장 김연아, 여왕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연아 선수와 대비되는 붉은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던 아사다 마오. 김연아 다음이라는 연기 순서 때문인지, 중압감을 많이 받는 것이 보였다. 쇼트 때와 같은 붉은 계통이지만 의상도 표정도 꽃처럼 밝던 마오는 온데간데 없고, 오늘의 마오는 지옥의 불꽃과 같은 옷을 입고 단조에 맞춰 춤을 췄다. 악에 받힌 모습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갔을까. 실수도 잦았다.

나는 그녀가 안쓰러워 조금 울었다. 물론 자기가 하겠다는데 괜히 김연아에게 도전하지 말라고 하는 건 괜히 가능성을 꺾어버리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힘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살살 하자. 하는 데까지 하자. 그깟 금메달, 일본 국민들에게는 희열이겠지만, 스무살 소녀에겐 마음의 평화가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쇼트 때와 달리 어두운 표정의 마오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심판판정을 짚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실수투성이 연기가 200점을 넘다니. 김연아가 200을 넘긴 이후로 그 벽이 참 만만하게 여겨지는가본데, 심판들도 김연아 연기의 여운 때문에 마오의 회전수 부족에 집중하지 못했나 본데, 본연적 한계에 후광효과까지 입게 된 마오가 불쌍했나본데, 지나치게 후한 판정에 마오에 대한 동정심마저 가실 지경이었다. 그러잖아도 홈도 아닌 마오에게 점수가 너무 후하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있어왔다만, 심판진은 이제 좀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초반 실수가 많아 불안했지만 동메달을 목에 건 조애니 로셰트 선수, 축하한다. 오늘 해설을 들으니 그녀는 페루에 가서 어린이 돕기에 나서는 등 자선 활동도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훌륭하다. 나이가 스물넷이니 아마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딸의 경기를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도 이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메달은 모두의 예상대로 돌아갔다.

그 외에 13위를 기록한 리틀 김연아 곽민정 선수. 훌륭하다. 잘 했다. 4년 후를 기대해 본다.

4위를 기록한 미국의 미라이 나가수는 안도 미키를 밀어내며 무려 190점을 기록했다. 마지막에 연기한 순서의 효과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잘 하긴 했다. 열여섯이라던데, 나이에 걸맞는 발랄함과 함께 깔끔한 연기를 보여줬다. 쇼트에서 연기 중 코피를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그만큼 열심히 연기했다는 증거일거다. 경솔한 발언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었지만 기사들을 차분히 훑어보니 기자들 잘못이 컸던 거 같다. 질문을 질문처럼 해야 말이지. =_=
왠지 미라이 나가수와 곽민정이 4년 후 격돌의 라이벌이 될 듯한 예감이 강력하다. 여왕 대 여왕이 될지, 여왕과 시녀가 될지가 궁금하다.

미라이 나가수에 의해 밀린 안도 미키 선수는, 참 아쉽다. 그녀는 올림픽 전 인터뷰 등을 통해 메달에 대한 의지를 보여 왔다. 쇼트에서는 지옥의 사자가 추는 듯한 레퀴엠을 선보였고, 오늘 프리에서는 이집트 여인의 현신 같은 클레오파트라를 보여줬다. 동양 소녀의 신비한 매력으로 서방의 심판진을 녹여버리려는 전략이었나본데, 안무의 참신성에 있어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애쓴 흔적이 많이 보인다. 미라이 나가수와 안도 미키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아마 순위도 바뀌지 않았을까? 미키의 연기도 충분히 훌륭했는데 말이다.

김연아의 영원한 파트너, 브라이언 오서 코치. 연기 시작 전 링크에서 등을 돌리고 오서 코치와 이야기하며 물을 마시는 연아의 모습은 늘 한결같다. 따뜻하게 연아를 격려하는 눈빛이 너무나 일정해서, 나는 오늘 쇼트프로그램 재방송 보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한결같은 코치의 지도가 있기에 김연아 선수가 한결같이 잘할 수 있는 것일테다.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이 준비되는 동안 원더걸스의 <노바디> 한국어 버전이 흘러나오던데, 주최측 센스 짱이었다 ㅋㅋㅋ 한국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라하는 사람들도 꽤 많던데!
보통 이 타이밍에는 우승한 선수의 주제곡을 튼다고 하던데, '니가 아니면 싫어'라니. 진짜 센스 만점. ㅋㅋㅋㅋㅋ

+ 고개를 숙이고 싯스핀을 할 때, 스케이터들을 어떤 생각을 할까? 짧은 순간이어서 아무 생각이 안 들지도 모르지만, 나라면 영원히 고개를 묻고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타조처럼 말이다.

++ 마지막 짤방. 수상대 위에서 애써 눈물을 닦는 철심장 김연아. 그냥 울어도 될텐데, 여왕은 늘 절제할 줄 안다.
김연아 선수가 '응원해주는 국민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한 스케이터'라는 말을 했다던데, SBS 해설자는 '김연아 덕분에 우리는 행복한 국민'이란다.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표현이긴 했는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도자라면, 국민을 한 순간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순간이라도.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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