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20대의 목소리 - 우주관찰보고서

얼마전 지인과 대화하다가 '나는 요즘 대학생들이 답답하며, 그들의 모임에 나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스스로 대학생인 주제에 자기모순임을 알지만, 굳이 잘난 척 하려는 생각도 없었지만 최근 진심으로 그런 느낌을 받아 왔고 내게는 그 사실이 너무나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지인한테는 '이래서 네가 무서워'라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나로선 솔직한 심경을 표현한 것뿐 굳이 공포감을 주려는 것도 허세를 떨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답답함은 그저 느낌일 뿐이어서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명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중증 중이병 환자구나, 그 이상의 결론이 나지 않아 왔는데, 또다시 잠못드는 오늘 새벽 문득 깨닫는다. 나는 '요즘 대학생'들이 답답한 게 아니라 그냥 이 사회가, 목적 잃은 스펙 쌓기 전쟁이 답답한 거였다.

도대체 왜 우리는 토익 점수 높은 친구를 부러워하고, 대기업 들어간 선배를 신 보듯 하며(요즘은 취업된 것도 아니고 인턴 혹은 알바 자리만 잘 얻어도 엄청난 부러움을 산다), '그러다 늦어'라는 재촉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마음이 급해야 하는가?

도대체 왜 우리는 가장 몸값이 비싼 이십대 중반 꽃다운 시절에 성공적으로 팔려 가기 위해, 현재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트에서 만난 그 남자의 차가 무언지, 집이 무슨 동일지 알아내기 위해 얼핏 가벼웠던 그 대화의 행간을 분석하고 앉아야 하는가? (이건 일반적인 의미의 스펙 전쟁과는 다소 동떨어진 의미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근 나를 답답하게 하는 주요 사항 중 하나라서 함께 적는다)

답답할 따름이다. 뭐 새삼 깨달은 현실도 아니지만 날마다 듣는 '영어공부' '어학연수' '취업' '면접' '인적성검사' '스펙'.... 따위의 단어들은 켜켜이 쌓여 가슴을 짓누른다.

전에 적은 적이 있던가? 이 빌어먹을 스펙환원주의는 여행이나 연애와 같은 모든 특별한 경험들을 스펙으로 재 버린다. 젠장할, 낭만을 계량하다니, 이 얼마나 극악한가. 보다 튀는, 남다른 스펙을 계발하려는 노력은 젊음도 팔고 사랑도 팔고 열정도, 신념도 다 팔아치우고 남는 건 검은 글씨 빼곡한 흰 이력서 한 장이다.

나는 자기 스펙만 채우고 귀찮은 일은 팀원에게 떠넘기는 팀장을 보며 답답하고, '분명 스펙 되는 게 아니면 얘가 이 일을 안 할 텐데' 싶은 그 얍삽함에 분노하거나 혹은 그저 답답하다. '스펙만들기'를 지상목표로 삼는 듯한 어떤 대학생의 싸이월드 메인화면에 답답하고, 그러한 심리를 이용해 저들의 잇속을 차리려는 기업과 정부에 분노하거나 혹은 그저 답답하다. 방학 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빈둥대면 루저 취급을 받고, 토플종합반에 등록해 프랜차이즈 영어학원과 ETS에 돈 갖다 바치면 위너가 되는 게 답답하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챙겨 먹으면서 그놈의 징그러운 스펙, 스펙, 스펙 때문에 스스로를 소모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가엾고 또 답답하다. 밥 잘 사주는 선배보다 스펙 좋고 정보 많이 주는 선배가 훌륭해진 현실이, '술 사줄게'보다 '그 활동 지금 모집하더라' 한 마디에 더욱 눈동자를 빛내는 후배들이 답답하다. 그러나 나 역시 그런 대학생이었고 아마 지금도 그러하며 후배들의 빛나는 눈동자에 '그 봉사활동은 어떻고 이 동아리는 어떻다더라' 따위의 같잖은 조언을 맥없이 첨添하는 그런 같잖은 선배라서 분노하거나 혹은 답답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덧글

  • 뒤죽박죽 2010/02/25 02:17 # 삭제 답글

    지금까지 본 글 중에 가장 최고인듯 ㅋㅋㅋㅋㅋㅋㅋ
    아 대박 스펙환원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학회에서 발표해도 되겠다 ㅋㅋㅋㅋㅋㅋ
  • 미운오리 2010/02/25 02:19 #

    전 늘 하던 생각이었는데 제가 포스팅한 적 없던가요?ㅋㅋㅋ 진짜 잠안오고 갑갑해서 적음 시망.. ㅋㅋㅋ
    이거 쓰고나서 우연히 본 비슷한 글.
    http://blog.naver.com/88cast/20100982842
  • 보딩하고피멍든뇨자 2010/02/25 23:27 # 삭제 답글

    왓 더 헬
    답답하도다
    공모전서 상받고 인턴 많이 한 대학생 이콜 생각있는 대학생인 사회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살고있는 나약한 대학생들이여
  • 미운오리 2010/02/25 23:57 #

    화가남 엉엉
  • 모모 2010/02/26 19:09 # 답글

    아! 저도왠지 요즘은 동기들 만나기도싫고 그렇던데 바로이게 원인이었군요!!!
    속이 다 풀리네요 정말. 이런 분노각성이 절실히 필요한듯요.
    이오공감트랙백보고 왔는데 글이 참 좋네요. 링크신고합니다:)

  • 미운오리 2010/02/26 21:22 #

    그러니까요. 답답할 따름입니다. ㅠㅠ
    트랙백 걸어두길 잘했네요. 하하하. 좋은글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저녁밥 2010/02/27 07:36 # 답글

    마음이 시원해지네요
  • 미운오리 2010/02/27 10:52 #

    답답한 현실이지만, 이런 토로로 조금이나마 마음이 시원해진다면 좋은 일이죠. ^ ^
  • 나는오늘도답답하다 2010/04/12 19:17 #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원래스펙이라는게 사람에게 쓰여지는 말이 아닌데 말이예요 상품에 붙어있는것이였죠 강남에서 시작된 스펙쌓기는 우리의 개성과 같은것은 개무시된체 우리는 좀더 좋은 상품이되기위해 오늘도 공부라는 런닝머신위에서 뛰고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집에 오면서 항상 슬픕니다 숫자로 사람을 평가하고 숫자로 사람을뽑고 숫자로 차별받아야 하는 것이.. 전 항상 가슴이답답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네요
    하지만 오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니 약간의 위로가 되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미운오리 2010/04/13 09:15 #

    위로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답답하죠. 좀 달라졌으면 할 뿐. ㅠㅗㅠ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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