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다이아몬드 자기탐구일지 2009

'그대'님의 How many shining eyes I have around me ? 를 읽자마자 곧바로 '백 개의 다이아몬드'가 눈앞에 그려졌다.

백 개의 다이아몬드를 본 일이 있는가? 금은방을 가도, 백화점을 가도, 백 개를 한 번에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봤다. 2년 전, 월드비전에서 주최한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 1기에 참여하면서.


대학생이 된 뒤 OT, MT를 비롯해 정치, 환경, 인권 등에 관한 다양한 캠프에 참여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세계시민학교와 비견할 수 없다. 단순히 이 행사가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전국단위 캠프여서는 아니다. 너무도 유명한 한비야 씨를 만나서도 아니다. 그곳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가슴 뛰는 희망을.

행사는 3박 4일 동안, 경기도의 한 야영장에서 이루어졌다. 전국에서 50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선발됐다. 몇 장에 걸친 복잡한 지원서를 통해 선발과정이 이루어졌는데, 경쟁률이 4:1에 이르렀다고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다. 한비야 단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땡 잡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입학한 순간부터 오로지 수능만을 목표로, 아침 8시 0교시를 시작해 밤 10시 30분까지 야간자습을 시키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빡세게' 공부를 시키는 소위 말하는 '지역 명문고'였고, 기숙사 학교였다. 모든 생활이 통제된 답답한 생활이었다. 아무리 여름방학 중이라 해도 3박 4일 동안 보충수업과 자습을 빼먹고 '외유'한다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그런 외유를 꿈꾸는 학생도 없었다. 모두가 '수능대박'만을 목표로(수능대박송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유치하긴 한데 그때는 그 유치한 걸 진심으로 불렀던 거 같다) 책상 앞에 지독히도 붙박여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담임 선생님 이전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한심하다'라는 눈빛으로 비난당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지금 생각해도 나같이 자유로운 영혼이 그런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는 게 신기하다. 하긴, 썩 '무사'하지 않긴 했다) 서울 애들은 비교과영역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이런 저런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는데, 지역에 갇혀 살다보니 그런 정보도 없었고 우리 학교 애들이 쓸 입시 전형에는 그런 게 필요도 없었다.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최대한 순응하려고 노력한, '정신차린' 고3으로서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는 한비야 단장의 특강보다는 당장 작년에 서울대에 간 선배가 와서 어떻게 공부했나 이야기해주는 게 궁금했다. 이런 종류의 대외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처음엔 논술공부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무료배포하는 청소년 논술신문 '생글생글'이라는 게 있는데, 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긴 하지만(몇 달 열심히 읽다보니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깨닫고도 이미 경도되긴 했지만) 따분하고 지당 도사 같은 소리만 하는 교과서와는 달리 참신한 관점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거기서 고등학생 명예 기자를 모집하는 데 지원해 본 것이, 나의 첫 도전이었다. 워낙 열독하는 신문이었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런 명예 기자들은 대개 무슨 무슨 외고, 민사고, 국제고 이런 애들이었기 때문에 '인맥'을 다질 수 있을 거라는, 10대답지는 않지만 고3다운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워낙에 선발 인원이 적은 데다가 이런 종류의 활동 경험도 없고 자기소개서 한 번 제대로 써 본 적 없던 나는 떨어지고 말았다. 요즘이야 뭐 여기저기 많이 찔러도 보고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 때는 그게 나한테 좀 컸었다. 1학년 때 들고 싶던 동아리에 지원했다 떨어진 이후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낙방'의 고배를 마신 거였으니까. 괜히 심란해져서 공부가 손에 안 잡혔다. 그러다가 본 것이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 1기'를 모집한다는 공지. 매달 정기후원을 하면서 받아 보는 월드비전 소식지에서였다.

다이아몬드 얘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었는데, 어쨌든 그 소식지를 통해 정보를 얻어 지원을 하게 됐다. 컴퓨터도 쓰기 힘든 학교였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 PC방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 월드비전이 기독교 본위의 단체인지라 교내 기독교 동아리에서 임원을 맡고 있던 나로서는(새세대 오프에서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한때 신학대 지망생이었다) 할 말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진짜 신심이 깊었던지라 ;ㅂ; 진정성이 넘치는 지원서를 써 보냈던 기억이다. 몇 주 뒤 전화가 왔다. 합격이라고. 뛸 듯이 기뻤고 담임은 학기 초부터 약속했던 교회 수련회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설득했다.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다. 혼자 서울에 간 건 처음이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찾아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무튼 집결 장소에 모여 버스를 타고 야영장으로 함께 이동했다. 그 경험이 어떻게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지는 짐작하지 못한 채.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상자에 손을 넣어 국적을 결정했다. 프랑스, 네팔, 팔레스타인, 몽골, 일본, 수단, 베네수엘라의 7개국이 있었다. 나는 수단 사람이 되었다. 조원들을 만났고, 투표를 통해 수단의 대통령이 되었다. 각국은 그 나라의 실제 경제사정에 맞게 식권과 식수권을 배급받았다. 가령 프랑스가 72개의 식수권을 받았다면 수단은 3개 뿐이었다. 3박 4일을 지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각국에는 UN대사가 한 명씩 있다. 매일 아침 각국은 내부 회의를 거쳐 외교 정책을 결정하고 대사를 통해 이를 조율한다. 크게 이러한 틀을 갖고 캠프가 운영되었으며, 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인권, 환경, 빈곤, 다문화, 평화 등으로 이루어졌다.

캠프가 어떻게 내 인생을 바꾸었느냐고? 이는 3박 4일의 모든 순간순간에 '눈물'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매 순간,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할지 몰랐다.

현실에서, 72개의 식수권을 가진 나라는 3개를 더 갖기 위해서 가난한 나라를 침략한다. 그러나 꿈과도 같았던 우리들의 세계에선 그러지 않았다. 프랑스는 베네수엘라를 지원했고, 베네수엘라는 더 가난한 수단을 지원했다. 팔레스타인과 몽골은 없는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누구도 더 갖겠다 싸우지 않았다. 모두가 세계시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무도 굶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새벽 식수를 얻기 위해 산길을 걸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그렇듯, 잠에서 덜 깨고 속도 비었지만 우리는 걸었다. 세상의 그 어떤 물질도 노동 없이 얻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UN 총회는, 그야말로 눈물 바다였다. 우리가 꿈꾸던 세계가 이곳에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줄 알았던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학교에서 '괴짜'로 통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젊은이의 열정은, '일단 대학 가고'로 귀결된다. 한가한 소리 한다. 대학만 붙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는 그 사탕발림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어떤 이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어떤 이는 몽골에서 태어났다. 왜? 우리는 제비뽑기를 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모든 세계시민들은 제비뽑기를 하듯 아무런 개연성 없는 확률 때문에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태어나고, 제비를 잘못 뽑았을 뿐인데,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모든 이가 평등하고 인권은 똑같이 소중하다는 강연 100시간을 들은 것보다 이해가 빨랐다.

'지도밖 행군단'이라는 명칭은 한비야 단장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딴 것이다. 사실 그 말도 한비야 단장이 지은 것은 아니고 전 월드비전 총재가 한 말이다. 우리는 지금 지도 안의 사람들만을 돕고 있지만, 끊임없이 지도 밖으로 행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는 개인과 사회의 한계를 말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으겠다고 했을때, 요즘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어울리겠냐며 반대도 많았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도를 뛰어넘기로 결심했다. 그 때 중학생이었던 친구들과 고3이었던 나는 아직도 연락하며 막역하게 지낸다. 3박 4일 내내, 나는 끊임 없이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지도들을 뛰어넘기 위해 애썼다.

우리 세대가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있다.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유토피아를 겪어본 우리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평화를 위한 나비효과의 첫 날갯짓은, 이미 일어났다.


'백 개의 다이아몬드'라는 표현은 수료식 때 한비야 단장이 한 말이다. 눈치챘겠지만 다이아몬드는 눈동자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우리 오십 명의 눈 백 개가 일순 자신에게 집중됐을 때, 그는 가슴이 뛰었다 했다. 그는 뛰는 가슴으로 우리 모두를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함께 울었다.

강연 때면 그는 항상 가슴 뛰는 삶을 살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평생 몇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해 보았는가? 가슴을 뛰게는커녕, 먹먹하게나 만들지 않았는가? 아니, 남의 가슴에 신경쓰기 전에, 지금 내 가슴은, 제대로 뛰고 있는가? 백 개의 다이아몬드 덕분에, 그 3박 4일만큼 내 인생에서 눈부셨던 순간은 없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덧글

  • 생각하는조댕 2009/11/27 12:20 # 삭제 답글

    오~ 이거 우리 새세대네트워크도 한번 해보면 좋을듯 합니다.
  • 미운오리 2009/11/27 13:26 #

    지금도 월드비전에서 여름마다 하고 있지요. 4기까지 진행됐습니다.
    작년과 올해 같은 경우는 '다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무지개청소년센터였던가? 아무튼 거기와 연계해서 하더군요. 작년 영상을 받아서 봤었는데, 제가 참여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어서 또 한참 울었더랬습니다.
  • 2009/11/28 21:2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운오리 2009/11/29 23:48 #

    왓, 선생님!! >.< 역시 세상은 좁네요.
    대학 와서 언론 공부하고, 또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보니 저널리스트가 제 길임을 깨닫게 됐어요. 블로그에 글 쓰고, 오마이뉴스에도 기사 올리고 하면서 재미있게 학교 다니고 있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죠? ^ ^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911
64
487583

교환학생 완전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