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루베 회고전, 몽상가들, 결혼 그리고 공동체 자기탐구일지 2009

1.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 캔을 따면서, 아주 가끔 생각 많을 때만 피우는 담배를 사다 놓고 글을 쓴다. 담배가 필요했을 만큼, 오늘은 참 생각할 게 많은 날이었다.

어제도 어지간히 술마시고 놀다가 새벽에야 집에 들어왔지만,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벼르고 있던 전시회가 있었기에 바지런히 집을 나섰다. 대림미술관의 장 프루베 회고전. 굳이 오늘 가려고 마음 먹었던 건, 프랑스 영화제를 겸하여 상영회가 있기 때문이었다. 전시도 보고 영화도 관람하기 위해서, 약간 늦긴 했지만 어쨌든 2시에 맞춰 도착했다. 바로 영화부터 보러 4층으로 올라갔다.

상영된 영화는 <몽상가들>이었다. 프랑스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참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이 들었던 건, 제목이 참 정확하다. 영화는 분명히 몽상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느낌을 100% 다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긴 한데, 제목이 정확하다는 것은 뚜렷이 느꼈다. 영화는 여태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야했고(!) 놀라웠다.

자라지 않는 몽상가들인 이사벨과 테오. 그들의 몽상에 동참하지만 결국은 타자이고 이방인인 매튜. 혁명은 일어나고,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간다. 매튜는 몽상을 떨치지만 자라지 않는 몽상가들은 끝내 그러지 못한다. 철없이 내던져진 화염병은, 글쎄. 무엇으로 돌아왔을까. 몽상가들은 진짜 혁명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들은 진심으로 혁명을 믿었는가? 체 게바라가 그려진 스타벅스 컵처럼, 그들은 혁명을 문화로서, 취미로서 섭취한 건 아니었나. 그런 거짓 진보가, 우리 사회엔 너무 많다.

어떠한 종류의 진보가 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는 요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영화다. 역시 프랑스는 가고 싶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평소 마시던 캔맥주 대신에 스파클링 와인을 사온 것도 영화의 영향일 거다. 건축과 가구의 조화, 디자인과 실용의 조화를 말한 장 프루베 회고전도, 참 프랑스적이었거든. 이상하게 자꾸만 겁이 많아지고 위축되는 요즘이지만, 좀더 도전해야겠다.


2. 전시회를 보고 난 후에는 거의 2년 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 예식장으로 향했다. 이 친구와 함께 참가했던 월드비전 캠프의 간사님 결혼식이었다. 사실 계속 연락하고 지냈던 건 아니지만 친구도 보고, 월드비전의 다른 선생님들도 뵐 겸 해서 갔는데, 결혼식이 참 참신했다. 역시 좋은 일 하시는, 마인드가 건실하신 분의 결혼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예식이 깔끔하고 정갈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게 느껴졌다. 보통 예식에는 관심도 없이 식권이나 받아서 피로연장으로 직행하는 하객이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우리를 포함해서 식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충격적(?)이었던건 신랑의 (자)축가였다. 의례적인 축가 순서 다음에, 신랑이 직접 만들었다는 랩을 했다.(!) 뭐 요즘은 젊고 색다르게 예식을 치르기도 한다 하고, 내가 뭐 그리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본 건 아니긴 하지만 이런 결혼이라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허례허식적인 결혼식이 싫어 (아주 먼, 불확실한 미래긴 해도) 무언가 참신한 걸 가끔 그려보곤 했지만 말이다. 관심도 없는 하객 앞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쇼를 보여주는, 남는 건 사진 뿐인 결혼이 아니었다. 오늘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어쩌면 개인에 대한 제도권의 폭력이니까. 하지만 다시 결혼,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나의 결혼식은 어떤 모습이 될까. 결혼식 전 몇 달 동안이나 온갖 다이어트에 피부관리에 시달리다가 팔려가듯 아버지 손에서 넘겨지는, 그런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결혼은 나의 결혼이지, 우리 아빠와 신랑 사이의 거래관계가 아니니까. 나는 이러한 사회적 클리셰를 깨고만 싶다.


3. 식장에서 만난 월드비전 옹호사업팀의 김경연 팀장님과 함께 공동체 '만행'을 방문했다. 사실 여기서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버린 거다. 나는 어떤 종류의 진보가 되어야 할까, 어느 편이 더 당위적이며 어느 편이 더 나에게 맞을까. 이런 류의 생활공동체는 내게, 아닌가?

학교에서 운동을 그만두고 났을 때, 운동은 계속 하고 싶어서 나눔문화에 찾아갔었더랬다. 학생운동과는 느낌이 또 다른 공동체에서 나는 신선함을 느꼈지만,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한 번으로는 알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서 좀더 참여해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나눔문화가 날 거부했더랬다. 코디네이터는 내가 나눔문화와 맞지 않을 거라 했다. 총학생회 같은 걸 해야 될 거라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너무 힘들었다. 한문연의 어떤 선배는 오히려 내가 시민단체로 가야 할 것이라 했다. 나의 운동이 시작된 경험은 자잘한 등투나 학교단위가 아니라 100만이 운집한 촛불바다였기 때문이다. 그 큰 판을 본 나에게 학교 운동은 답답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 말에 크게 공감했기에 나눔문화라면 내게 날개를 달아줄 것 같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선 개량이고 진보신당에선 비장하기만 했던 나의 모순은 나눔문화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나같은 '운동권'은 그들과 맞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실, 그 코디네이터의 말을 이해한다.

나는 공동체가 싫다. 혼자인 게 편하다. 나는 혼자서 전시회를 보러 가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편하다. 그렇지만 본래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과 사교와는 다르다. 내게 있어 공동체란 대개 불편한 것이었고 벗어나고 싶은 거였다. 어쩌면 내가 튀어나온 못이었기에, 공동체의 규율이라는 망치로 두드려지느라 그렇게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나 개성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진보를 지향하는 활동가다. 공동체, 연대, 공존 이런 것들이 진보의 담론이 아니던가? 나는 자유주의자이고 개인주의자다. 이런 나를 진보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인가. 진보의 정의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을 확립하는 건 중요하다. 자유를 추구하는 진보와 공동체를 추구하는 진보는 따로 있나. 그들과 나는 그저 다른 타입의 진보들인 것인가. 요새는 좌도 우도 중요하지 않고, 특별히 규정지을 필요가 없다고도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 나는 어떤 종류의 진보인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어렵다. 그저 가볍게 신변잡기를 풀어내고 싶었지만, 이런 류의 고민들은 글로도 잘 풀어지지 않는다. 벌써 담뱃재는 식었고 와인 캔은 텅 빈 지 오래다. 더 많은 불면과 알코올이 필요할 테다.

어쩌면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른 게 너무 힘들다. ENFP, 대한민국에 1%밖에 없다는 스파크형이라는 성격 분석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려는 건 아니긴 한데, 내가 제도권 교육을 받으면서 지독해도 부적응했던 건 그런 이유가 있다. 겉보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내면적으로는 내가 속한 집단을 끊임없이 경멸하고 저주하며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그만큼 나의 자의식은 높아져만 갔는데, 어쩌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자꾸만 내게 틀렸다고 손가락질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부정해버리면 벼랑 끝에 몰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유난히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여전히, '나는 왜 저 친구처럼 공동체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나는 왜 저 사람처럼 한결같지 않은가'라는 고민을 한다. 아, 나는 왜 나인가.


4. 오랜만에 만난 경연쌤으로부터 너무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들었다. 각자의 평안을 추구하는 개인들은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얘기. 당신이 교인이면서도 신랄했던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과 NGO 얘기. '제발 웬만하면 리더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는 강연 이야기 등등.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경연 쌤을 만날 때면 늘 새롭게 많이 배운다. 경연쌤은 수능 후 아직 철모르던 고3이었던 나에게 '신자유주의란 사실 이런 거야'를 처음으로 말씀해주신 분이다. 처음에는 한국경제류의 청소년논술신문을 하도 읽은 터라 선생님 말이 잘 공감되지 않았지만, 작년 여름에는 나의 변화를 말씀드릴 수가 있었고, 오늘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토론할 수 있게 됐다.

뜨거웠던 여름과 추운 겨울을 보내며,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이냐에 대해서 나는 '진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제 또다시 찾아온 겨울에 주어진 나의 질문은 '그렇다면, 어떤 진보가 될 것이냐'이다. 어떤 종류의 진보가 될 것인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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