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자기탐구일지 2009

시장에 갔다.

볼일이 있어 종로에 간 김에, 얼마전 잡지에서 보고 다이어리 뒤켠에 적어두었던, 꽃시장에 가보고 싶었다. 종로5가 지하철역 근처라던 종묘의 꽃 시장에 가서 수국을 한아름 사고 싶었다.

종로3가에서부터 걷고 또 걸어, 종로4가와 청계천변을 거쳤다. 일대에는 시장이 하도 많아, 정작 가고 싶던 꽃 시장보다는 다른 데를 더 많이 둘러봤다.

처음에 발견한 시장은 시계와 카메라를 파는 골목. 종로4가쯤인듯 싶었다. 직진해서 종로5가까지 가려고 했지만 나도모르게 성큼성큼 아주 익숙한 곳이라는 양 그 골목으로 이미 들어서고 있었다. 시계, 수리, 로렉스수리전문, 건전지, 그리고 최근 사려고 살짝살짝 알아보는 중인 카메라를 파는 가게들과, 늙은 시계공들의 한숨이 섞인 그런 골목을 따라 걸었다. 다음에 내 눈에 들어온 건 전구를 파는 가게들. 주황색 전구와, 형광등과 뭐 그런 것들을 팔고 있었다.

시장은 참 이상하다. 그곳의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화려하고 쌔끈한 대형마트도, 백화점도 많은데 왜 그들은 지저분한 시장골목에 앉아 있는가. 그건 아마 그곳이 시장이기 때문일 거다. 물자가 모이고, 사람이 오고가고, 모든 것이 교통하는 그곳이 바로 시장이 아니던가.

할로윈 시즌답게 완구점에서는 색색깔의 잭오랜턴과 가면, 어린이용 의상 등을 팔고 있었는데 잭오랜턴을 하나 살까 고민하다가 선명하게 찍힌 'MADE IN CHINA'를 보고 관뒀다.

방산 종합시장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다이어리를 다시 뒤적이며 안 거지만, 여기도 그 잡지에 소개되었던 상가 중 하나였다. 포장재료나 베이커리 용품을 주로 판다고 했다. 다니면서 베이커리 용품은 많이 못봤지만 포장재료를 파는 가게들을 많이 보았다. 좌우로 고개를 저어가며 열심히 구경했다. 신기했다.

시장은 많았고 또 몰려 있었다. 또 나뉘어 있었다. 종로, 청계천, 을지로, 동대문을 아우르는 서울의 한가운데에 시장은 여기저기 모세혈관마냥 때로는 동맥마냥 퍼져있었고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김이 나는 철판 곁에 둘러앉아 빈대떡을 먹었고 순대, 족발을 먹고 있었다. 재래시장이 잘 안된다는 말이 이해됐지만 그래도 시장은 시장이어서 때로는 길이 좁게도 느껴졌다.

종묘 시장을 목적지로 두고는 있었지만 여정을 즐기며 두서없이 구경했다. 마침내 꽃 시장에 도착했지만 내가 기대한 바와 같은 들국화는 없었는데, 지금 다이어리를 다시 보니 그런 꽃들은 남대문의 대도종합상가에 가야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역시나 수첩 갈피의 기억은 참으로도 부정확하고 발칙하다. 주로 화분에 키우는 식물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는데 이제 곧 서울을 떠날 처지고 지금 기르는 식물들마저 말려죽이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아이를 들일 입장이 못되어 지나쳤다. 산세베리아 화분에서는 약간 망설였다. 생알로에를 잘라 파는 모습이 신기했다. 결국 내가 산 건 죄 먹을거였다. 집 앞 청과물 가게보다 조금 저렴하고 훨씬 신선한 바나나 한 다발과 귤을 샀다. 올해 처음으로 먹는 귤을 제일 맛있어 보이는 가판에서 10개에 1000원에, 할아버지 손에 지폐를 쥐어드리고 할머니로부터 비닐봉투를 건네받았다.

종로5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쇼핑하기 좋아하는 나지만 꼭 무얼 사지 않아도 재미있는 시장구경이었다. 시장은 재밌다. 인생은 그렇게 재밌는 것이다.

내일, 몸이 조금 더 추슬러진다면 미술관에 가야지. 예술의 전당에 가서 사진도 보고 서예도 볼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911
64
487583

교환학생 완전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