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200페이지 남짓하여 두께도 얇고 재생지를 사용했는지 무게도 가벼우며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디자인도 산뜻한 편이어서 가볍게 독파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실천가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부제에서 잽싸게 알아챘어야했다. 일주일에 걸쳐 결코 녹록하지 않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는 자주 멈춰야 했고 상념에 잠겼고 또 울어야 했다.
나는 한때 잠시나마 NL이라는 계통의 운동권 세계를 기웃거렸던 사람이다. 정치의 중요성은 충분히 견지했으나 현안에 대한 관심이나 이론적 학습이 전무했던 새내기 시절. 시험이 끝난 날, 홍대앞 술집에서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 중 누군가 광우병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그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때 나는 정치인이 꿈이었다. 아들에게 정치만은 하지 말라 강권하는 부모가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고 나는 정치를 하겠다 천방지축이었다. 하지만 전공이 언론인데 신문 한 장 읽지 않고 뉴스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저 대학생활이 즐거워서 서울생활이 신이 나서 나는 천방지축이었다. 그래서 그 천방지축이 정치인이라는 꿈을 가진게 부끄러워 나는 울어야 했다. 그 후 나는 광장에 나갔다. 촛불을 만났고 진보신당 당원도 만났고 여고생도 만났고 386아저씨도 만났고 유모차아주머니도 만났고 진중권도 만났고 광우병대책위도 만났고 기자들도 만났다. 그러다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만나 나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입당하게 됐다. 2점대의 학점을 감수하며 총학생회를 당선시켰고 아고라에서 하루만에 선본비 백여만원을 모금하면서 약간의 유명세도 탔다. 부시대통령 방한시의 그림자투쟁이나 이런저런 실천단에도 참여했고 수많은 집회에 나갔다. 하지만 운동의 불모지인-좀더 정확히 말해서, 뉴라이트의 본거지- 숙대에서 민주총학 당선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등지고 나는 탈당했다.
비전이 없어보여서, 라든지 나와 노선이 맞지 않아서, 와 같은 말들로 무지했던 그 당시의 나를 잰체 포장하고 싶진 않다. 사실 풋내기인 내 눈에 그래도 희망은 민주노동당 뿐인 거 같았고 여기저기 촛불선본이 당선된 각 학교 총학생회의 분위기나 점점 사람이 붙어가는 학교 안쪽 사정에도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가 탈당한 건 선배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내가, 혹은 동기들이 제기했던 불만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결정에 따라야 했고 선배들은 당의, 혹은 진보연대의 결정을 하달한다. 우리는 그에 따라 실천단에 헌신하고 수업을 빠지며 개인적인 스케줄을 취소한다. 대부분의 일정은 고작 며칠 전, 때로는 바로 전날이나 당일에도 내려온다. 물론 모든 일들은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에 맡겨진다. 하지만 나는 자꾸 빠지면 안될 거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건 명예욕이 많고 적극적인 내 성격을 일찍 간파한 선배가 내 머릿속에 '학회장-단대회장-총학생회장'이라는 소위 로얄 로드를 일찍이 그려두었던 일에도 기인한다. 내가 자꾸 함께하지 못하게 되면 입지가 좁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학교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어지고, 결과적으로 내가 맡을 역할은 협소하게 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슨 집회인지도 모르면서 오라고 하면 가서 아, 대충 우리가 동의하는 사안에 대한 집회인 것이겠지, 라고 막연하게 앉아있을 때도 있었으며 내부적인 모든 결정들은 선배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때로는 공유된 사안이 손바닥 뒤집듯 휙휙 바뀌기도 하였다. 후배가 의견이나 의문을 제시하면 이해시키려고 설명을 해줄 뿐이었고 나처럼 자꾸만 불만을 제기하는 분자에 대해서는 골치아프게 생각했다(당시 내가 제시했던 사업 아이템들 중 차후에 현실화된 것도 여러가지 있다. 같은 사안이라도 내가 주장하는 것과 당 차원에서 결정된 일은 달랐다). 집단의 응집력이 있는만큼 배타성이 강한 것도 문제인 듯 싶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왜 그렇게들 진보신당을 욕해대는지 그들이 미울 이유 없는 나로선 보기에 좋지 않았다. 조직된 대오가 강점이 있다는 건 알지만 왜 그렇데 대중을 불신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워낙 중요한 일들, 큰 일들을 하셔서 그런지 생활주변의 작은 일들은 챙기지 못하는 면이 많았다. 나와의 개인적인 약속들은 예고 없이 취소해버리거나 한두 시간 늦는 정도는 미안해 하지도 않았다. 바쁘다, 어쩔수 없다, 상황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합리화됐다. 소소한 사례들을 구구절절 적자니 구차한 생각마저 들어 사례를 드는 건 이만 하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불만들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자리조차 없었다는 점이었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건 누가 보아도 명백했고 선배들도 늘 혁신하자 혁신하자 말했지만 선배들이 말하는 혁신과 내가 바라는 혁신은 다른 거였다. 선배들은 우리가 조회에 늦지 않고 매일 나오며 자발적으로 할 일을 찾아서 '주체적으로' 열심히 하고 수업에 들어가기보다는 실천단에 참여하고 학우들을 만나고... 하는 걸 바랬다. 그러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내가 제발 이야기좀 들어달라, 우리 총화좀 하자 말을 해도 선배들은 늘 바빴고 일이 몰아쳤고 후배 한명 이야기 들어주기보다는 학회장들을 빨리 만나서 어떻게 하면 한대련에 가입할까 고민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욕하던 이명박정부와 학교본부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학교를 욕하고 정부를 욕할수 없었다. 이런 나를, 선배들은 골치아파했다.
바랜 기억들을 적어내려가다보니 꽤나 미시적인 얘기가 되어버린 감이 있지만, 이 모든 경험을 가진 나에게 있어서 <진보의 재구성>은 굉장히 힘빠지게 하는 책이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견딜 수 없어서 탈당했을지라도 그래도 운동이 잘 되길 바랬다. 그래도 옳은 길이라고 믿기는 했다. 나 자신의 성격이 유난해서 혹은 둥글둥글하지 못해서 그들과 마찰했던 것 뿐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자기회한도 느껴보았다. 실제로 나 자신에게도 문제제기의 방식 등에 있어서 잘못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고생해서 어려운 일 하는 운동세력이 더 힘을 얻기를 바랐는데, 이 책은 내 소망을 와장창 깨뜨렸다. 이대로는 절대 아무것도 진보하지 못한다고 했다. 갑갑했다.(물론 저자의 잘못인건 아니다)
읽으면서, 책을 쓰는 저자의 내적 갈등이 참 심했으리라 짐작했다. 책이 쉽게 읽히지 않았던 또다른 이유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사투리'로 글이 쓰여졌기 때문이었다.(아직 독서량이 부족한 내게는 어려운 말이 많았다) 저자는 철저하게 NL운동가로서 이십 년을 살아왔고 NL의 언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뼈아픈 통찰을 새긴다. 대개의 운동가들이 날마나 혁신하고, 대중과 함께하고, 반미반전 정권타도 승리로말하자... (말로만) 하면 힘든 싸움이지만 끝내 이기리라는 그 신념을, 어려울수록 덧입히며 자존해나가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스스로 NL운동가 출신이고 원죄인듯 그 언어를 쓰고 있지만 그는 알을 깨고자 한다. 진짜 진보라면 그래야한다. 진짜 세상을 바꾸고자 생각한다면 스스로 진보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 내가 속해 있는 여러 모임들의 내부조직 문제를 보면서 사람이든 단체든 세상이든 참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의견을 제기하고, 열을 내고 나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라는 패배적인 생각까지, 지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상에 쉽게 바뀌는 건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알맞은 노력이 수반된다면 분명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건 운동의 '강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올바르다면 반드시 순풍을 탈 것이다.
나는 한때 잠시나마 NL이라는 계통의 운동권 세계를 기웃거렸던 사람이다. 정치의 중요성은 충분히 견지했으나 현안에 대한 관심이나 이론적 학습이 전무했던 새내기 시절. 시험이 끝난 날, 홍대앞 술집에서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 중 누군가 광우병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그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때 나는 정치인이 꿈이었다. 아들에게 정치만은 하지 말라 강권하는 부모가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고 나는 정치를 하겠다 천방지축이었다. 하지만 전공이 언론인데 신문 한 장 읽지 않고 뉴스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저 대학생활이 즐거워서 서울생활이 신이 나서 나는 천방지축이었다. 그래서 그 천방지축이 정치인이라는 꿈을 가진게 부끄러워 나는 울어야 했다. 그 후 나는 광장에 나갔다. 촛불을 만났고 진보신당 당원도 만났고 여고생도 만났고 386아저씨도 만났고 유모차아주머니도 만났고 진중권도 만났고 광우병대책위도 만났고 기자들도 만났다. 그러다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만나 나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입당하게 됐다. 2점대의 학점을 감수하며 총학생회를 당선시켰고 아고라에서 하루만에 선본비 백여만원을 모금하면서 약간의 유명세도 탔다. 부시대통령 방한시의 그림자투쟁이나 이런저런 실천단에도 참여했고 수많은 집회에 나갔다. 하지만 운동의 불모지인-좀더 정확히 말해서, 뉴라이트의 본거지- 숙대에서 민주총학 당선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등지고 나는 탈당했다.
비전이 없어보여서, 라든지 나와 노선이 맞지 않아서, 와 같은 말들로 무지했던 그 당시의 나를 잰체 포장하고 싶진 않다. 사실 풋내기인 내 눈에 그래도 희망은 민주노동당 뿐인 거 같았고 여기저기 촛불선본이 당선된 각 학교 총학생회의 분위기나 점점 사람이 붙어가는 학교 안쪽 사정에도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가 탈당한 건 선배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내가, 혹은 동기들이 제기했던 불만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결정에 따라야 했고 선배들은 당의, 혹은 진보연대의 결정을 하달한다. 우리는 그에 따라 실천단에 헌신하고 수업을 빠지며 개인적인 스케줄을 취소한다. 대부분의 일정은 고작 며칠 전, 때로는 바로 전날이나 당일에도 내려온다. 물론 모든 일들은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에 맡겨진다. 하지만 나는 자꾸 빠지면 안될 거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건 명예욕이 많고 적극적인 내 성격을 일찍 간파한 선배가 내 머릿속에 '학회장-단대회장-총학생회장'이라는 소위 로얄 로드를 일찍이 그려두었던 일에도 기인한다. 내가 자꾸 함께하지 못하게 되면 입지가 좁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학교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어지고, 결과적으로 내가 맡을 역할은 협소하게 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슨 집회인지도 모르면서 오라고 하면 가서 아, 대충 우리가 동의하는 사안에 대한 집회인 것이겠지, 라고 막연하게 앉아있을 때도 있었으며 내부적인 모든 결정들은 선배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때로는 공유된 사안이 손바닥 뒤집듯 휙휙 바뀌기도 하였다. 후배가 의견이나 의문을 제시하면 이해시키려고 설명을 해줄 뿐이었고 나처럼 자꾸만 불만을 제기하는 분자에 대해서는 골치아프게 생각했다(당시 내가 제시했던 사업 아이템들 중 차후에 현실화된 것도 여러가지 있다. 같은 사안이라도 내가 주장하는 것과 당 차원에서 결정된 일은 달랐다). 집단의 응집력이 있는만큼 배타성이 강한 것도 문제인 듯 싶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왜 그렇게들 진보신당을 욕해대는지 그들이 미울 이유 없는 나로선 보기에 좋지 않았다. 조직된 대오가 강점이 있다는 건 알지만 왜 그렇데 대중을 불신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워낙 중요한 일들, 큰 일들을 하셔서 그런지 생활주변의 작은 일들은 챙기지 못하는 면이 많았다. 나와의 개인적인 약속들은 예고 없이 취소해버리거나 한두 시간 늦는 정도는 미안해 하지도 않았다. 바쁘다, 어쩔수 없다, 상황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합리화됐다. 소소한 사례들을 구구절절 적자니 구차한 생각마저 들어 사례를 드는 건 이만 하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불만들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자리조차 없었다는 점이었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건 누가 보아도 명백했고 선배들도 늘 혁신하자 혁신하자 말했지만 선배들이 말하는 혁신과 내가 바라는 혁신은 다른 거였다. 선배들은 우리가 조회에 늦지 않고 매일 나오며 자발적으로 할 일을 찾아서 '주체적으로' 열심히 하고 수업에 들어가기보다는 실천단에 참여하고 학우들을 만나고... 하는 걸 바랬다. 그러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내가 제발 이야기좀 들어달라, 우리 총화좀 하자 말을 해도 선배들은 늘 바빴고 일이 몰아쳤고 후배 한명 이야기 들어주기보다는 학회장들을 빨리 만나서 어떻게 하면 한대련에 가입할까 고민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욕하던 이명박정부와 학교본부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학교를 욕하고 정부를 욕할수 없었다. 이런 나를, 선배들은 골치아파했다.
바랜 기억들을 적어내려가다보니 꽤나 미시적인 얘기가 되어버린 감이 있지만, 이 모든 경험을 가진 나에게 있어서 <진보의 재구성>은 굉장히 힘빠지게 하는 책이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견딜 수 없어서 탈당했을지라도 그래도 운동이 잘 되길 바랬다. 그래도 옳은 길이라고 믿기는 했다. 나 자신의 성격이 유난해서 혹은 둥글둥글하지 못해서 그들과 마찰했던 것 뿐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자기회한도 느껴보았다. 실제로 나 자신에게도 문제제기의 방식 등에 있어서 잘못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고생해서 어려운 일 하는 운동세력이 더 힘을 얻기를 바랐는데, 이 책은 내 소망을 와장창 깨뜨렸다. 이대로는 절대 아무것도 진보하지 못한다고 했다. 갑갑했다.(물론 저자의 잘못인건 아니다)
읽으면서, 책을 쓰는 저자의 내적 갈등이 참 심했으리라 짐작했다. 책이 쉽게 읽히지 않았던 또다른 이유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사투리'로 글이 쓰여졌기 때문이었다.(아직 독서량이 부족한 내게는 어려운 말이 많았다) 저자는 철저하게 NL운동가로서 이십 년을 살아왔고 NL의 언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뼈아픈 통찰을 새긴다. 대개의 운동가들이 날마나 혁신하고, 대중과 함께하고, 반미반전 정권타도 승리로말하자... (말로만) 하면 힘든 싸움이지만 끝내 이기리라는 그 신념을, 어려울수록 덧입히며 자존해나가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스스로 NL운동가 출신이고 원죄인듯 그 언어를 쓰고 있지만 그는 알을 깨고자 한다. 진짜 진보라면 그래야한다. 진짜 세상을 바꾸고자 생각한다면 스스로 진보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 내가 속해 있는 여러 모임들의 내부조직 문제를 보면서 사람이든 단체든 세상이든 참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의견을 제기하고, 열을 내고 나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라는 패배적인 생각까지, 지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상에 쉽게 바뀌는 건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알맞은 노력이 수반된다면 분명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건 운동의 '강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올바르다면 반드시 순풍을 탈 것이다.




덧글
뒤죽박죽 2009/09/17 02:12 # 삭제 답글
"진짜 세상을 바꾸고자 생각한다면 스스로 진보할 줄 알아야 한다."완전 공감. 자기 스스로 진보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진보일까.
그런데 요새 보면 몸도 마음도 화석화되어있는데 진보인양 행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