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무살 그대에게 고함 스크랩을 하자

(2009. 5. 25. <씨네21> 대학생 특별판에서)

김중혁 소설가(<펭귄뉴스><악기들의 도서관>)

올해는 뜻깊은 해다. 학고 김중혁 선생(39. 소설가)의 대학입학 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생의 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고란 학식(學)이 높다(高) 하여 붙여진 것이 아니라 학사경고의 줄임말로, 대학을 다니는 내내 학사경고에 시달렸던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선생의 영어 이름은 F4로, 이 역시 꽃처럼 아름다운 네명의 학생 중 한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F학점을 한해 네번까지 기록했던 그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해둔 것이다.

선생의 대학 시절 하이라이트는 2학년 1학기였다. 여섯개의 수업 중 세개는 F학점, 나머지 세개는 D학점을 맞으며 평점 0.8로 학점사에 큰 획을 그으셨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학점인가 시력인가' 논란이 일었으며(오히려 선생의 시력은 양쪽 모두 1.5였다고) 선생의 부모는 그를 속히 군대로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선생은 꿋꿋하시어 F학점을 한번 더 기록하고 결국 F4를 완성하시고서야 홀연히 군으로 가시었다. 이후 선생은 여러 가지 일을 겪은 뒤 현재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중혁 선생을 소개하겠다. 모두 큰 박수로 맞아주길 바란다.


몇해 전 한 대학에 특강을 나갔다. 친하게 지내는 그 학교 선생님 한분이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말인즉 "요즘 학생들이 너무 부지런해서 무섭다"는 것이었다. 부지런한 게 왜 무서워요. 네가 몰라서 그래, 진짜 무서워. 매일 출석하고, 지각도 안 하고, 리포트 내는 거 한번도 안 빠지고, 영어공부도 엄청 열심히 하고, 모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데 안 무섭겠냐. 그러고 보니 무섭기도 하겠다. 20년 전에 학교 다닐 때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한두명뿐이었으니 무서울 리가 없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렇다면 정말 무섭겠다. 이유는 안다. 학점과 취업과 유학과 기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산재해 있으니 공부 안 하고는 못 배기겠지. 뒤떨어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솔직히 이해는 안 간다.

공부 열심히 안 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학점과 아이큐는 높은 게 좋고, 등수와 방어율은 낮은 게 좋다. 공부 안 한 거 후회할 때도 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할걸, 특히 영어 회화 열심히 할걸, 후회한다. 책 열심히 더 읽을걸, 반성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지 않은 걸,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지 않은 걸, 아쉬워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학 새절 캠퍼스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간, 정신줄을 놓은 채 목숨 걸고 놀던 시간, 그 완벽한 진공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스무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싱싱해서 쉽게 상하기 때문에 가끔은 진공 포장하여 외부의 대기로부터 격리시켜주어야 한다. 20년이 지났지만 그때 진공 포장해둔 나의 뇌 일부분은 아주 싱싱하다. 학사경고와 바꾼 싱싱한 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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