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의원님, 이제 그만 좀 웃기시죠?

나경원 의원님, 이제 그만 좀 웃기시죠?
설전 벌였던 시민논객, 공개서한 보내
박솔희 (jamila)

  지난 11월 19일 손석희 교수가 마지막으로 진행한 특집 MBC 백분토론에서 나경원 의원은 미디어법 헌재 판결을 두고 시민논객과 설전을 벌이다 망신을 샀다. 헌재의 판결 주문에 미디어법이 '유효'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이를 주장하다가 시민논객으로부터 '다시 한 번 읽어보시죠'라는 핀잔을 들은 것이다. 판사 출신의 달변가로 가장 토론을 잘 하는 여성 패널로 꼽히기도 했던 나 의원으로서는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랬던 그 시민논객 송준영(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25)군이 27일 나경원 의원에게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논쟁 당사자인 송준영 군 개인 및 그가 카페지기로서 운영하고 있는 '언론공공성을 위한 대학생연대'의 명의로서다. 나경원 의원의 무지와 파렴치를 질타하고 미디어법의 국회 재논의를 촉구하는 취지다.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며, 나경원 의원의 국회 사무실과 지역구 사무실에도 발송했다.

  '언론공공성을 위한 대학생연대'는 지난 3월 경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결속한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되는 언론 공공성의 파괴를 걱정하는 대학생들 180여명(11월 27일 기준)이 가입돼 있다. 주요 활동은 '온라인' '대학생' '언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루어지며 미디어법 집회에 참가하는 등 오프라인으로도 활발하게 결합한다. 앞으로는 오픈캐스트 등을 통해 미디어법 재논의를 촉구하고 언론공공성을 지키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방송 이후로 약간의 유명세를 타게 된 송 군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말을 잘 해서가 아니라 나 의원이 스스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공개서한 발송의 계기에 대해서는 "방송 이후로 미디어법 효력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이 이슈를 그대로 묻어버리기에는 아쉬워서 공개편지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카페 회원들이 작성한 공개서한은 발랄한 네티즌다운 재치로 쓰여졌다. 작년, 촛불들의 투쟁이 결코 비장하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미디어법 재논의를 촉구한다. 아래는 공개서한 전문.

 

 

공 개 서 한

 

수신 국회의원 나경원

발신  '그때 그 시민논객' 송준영 & '언론공공성을 위한 대학생연대'

        (dreamer0910@hanmail.net  /  cafe.daum.net/stumedia)

 

나경원 의원님, 이제 그만 좀 웃기시죠?

 

"사실상 여론조사라는 것은, 특히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이 이해하시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저희 국회의원들도 동료 의원들한테 미디어법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보면 아마 정확하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지난 6월,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묻기 위한 여론조사를 거부하며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나경원 의원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국민은 미디어법을 설명해줘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국회에 모든 것을 맡기라면서, 동료 의원들도 법안 내용을 잘 모른다는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지요. 정리하자면 "미디어법에 대한 판단은 미디어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맡겨달라" 가 되겠네요. 워낙 설득력 있는 말씀이신지라 빈틈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웃느라고.

 

  전국민을 루저로 만든 것도 모자라 팀킬까지 해가며 밀어붙였던 미디어법, 통과되니 어떠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7월 국회에서 있었던 미디어법 표결 과정은 그야말로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했습니다.(개그콘서트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날치기도 모자라 대리투표를 하기 위해 여기 저기 메뚜기처럼 뛰어 다니시는 한나라당 의원님들의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정도 몸개그는 우리 국민들에게 웃긴 축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헌재 판결문을 받아 들고 환호하는 한나라당 의원님들의 모습, 이쯤 돼야 '아, 이제 입꼬리 15º 쯤 올라가겠구나' 싶겠지요. 세상에나, 법안 통과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듣고도 좋아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니, 의원님이 생각하셔도 좀 웃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경원 의원님, 국민들에게 선사한 이정도 웃음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지난주 백분토론에서 의원님은 저희 카페 회원인 송준영 군(카페 닉네임 '규석')과 벌인 논쟁에서,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원안통과 문제 등으로 슬퍼하고 있던 국민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하셨지요.

 

송준영 : 헌재 결정문 중에 유효를 언급하신 분은 아홉 분 중에 세 분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나경원 의원님 : 헌재 결정문의 주문이 유효하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준영 : 다시 한 번 읽어보시죠.

다른 패널들 : (일제히) 유효라고 안 나와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님 : 제가 읽어봤었는데.

 

  어떻게, 집에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읽어 보셨습니까? 미디어법을 설명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무시당하시니 기분이 많이 상하지 않으셨을까 걱정됩니다. 한나라당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로서 미디어법 전반을 맡고 계신 의원님이 이러하신데, 다른 한나라당 의원님들은 어떨지 또한 걱정이 됩니다. 의원님이 예전에 말씀하신대로 '동료의원들도 세세하게 물어보면 미디어법에 대해 잘 모르실'테니까요.

 

  하지만 설마 미디어법을 도맡아 담당하시는 한나라당의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간사 나경원 의원님께서 정말 '몰라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마요. 그렇다면 너무 끔찍한 일이죠. 미디어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과, 미디어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의원들 모두를 대변하시는 분이 정말 몰랐다고 하신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 웃기려고 그런 것이지, 설마 모르고 그러셨겠습니까? 최근 KBS 개그콘서트 시청률이 30%에 육박하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을 따라잡으려 하는 것에서 위기감을 느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의원님이 웃기려고 노력하시지 않아도 지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충분히 웃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MB 특보 출신으로 KBS에 떨어진 낙하산 사장도 있는데 그깟 개콘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이제 그만 좀 웃기시고, 진지하게 국민이 원하는 것이 뭔가를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예능 버라이어티 정신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입니다. 국민을 소외시키고,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당장 국민과 헌법재판소의 뜻에 따라 미디어법 재논의에 임하십시오. 이것은 의원님이 무시했지만, 의원님을 선출한 국민의 명령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국민을 무시하고 루저 취급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외칠 것입니다.

 

"나경원, 이 빵꾸똥꾸야!"

 

 

* 글에 최신 유행어가 많죠? 따로 설명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설명해줘도 이해 못 하실 테니까요.

by 미운오리 | 2009/11/27 16:18 | OhmyNews | 트랙백 | 덧글(0)

백 개의 다이아몬드

'그대'님의 How many shining eyes I have around me ? 를 읽자마자 곧바로 '백 개의 다이아몬드'가 눈앞에 그려졌다.

백 개의 다이아몬드를 본 일이 있는가? 금은방을 가도, 백화점을 가도, 백 개를 한 번에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봤다. 2년 전, 월드비전에서 주최한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 1기에 참여하면서.


대학생이 된 뒤 OT, MT를 비롯해 정치, 환경, 인권 등에 관한 다양한 캠프에 참여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세계시민학교와 비견할 수 없다. 단순히 이 행사가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전국단위 캠프여서는 아니다. 너무도 유명한 한비야 씨를 만나서도 아니다. 그곳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가슴 뛰는 희망을.

행사는 3박 4일 동안, 경기도의 한 야영장에서 이루어졌다. 전국에서 50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선발됐다. 몇 장에 걸친 복잡한 지원서를 통해 선발과정이 이루어졌는데, 경쟁률이 4:1에 이르렀다고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다. 한비야 단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땡 잡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입학한 순간부터 오로지 수능만을 목표로, 아침 8시 0교시를 시작해 밤 10시 30분까지 야간자습을 시키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빡세게' 공부를 시키는 소위 말하는 '지역 명문고'였고, 기숙사 학교였다. 모든 생활이 통제된 답답한 생활이었다. 아무리 여름방학 중이라 해도 3박 4일 동안 보충수업과 자습을 빼먹고 '외유'한다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그런 외유를 꿈꾸는 학생도 없었다. 모두가 '수능대박'만을 목표로(수능대박송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유치하긴 한데 그때는 그 유치한 걸 진심으로 불렀던 거 같다) 책상 앞에 지독히도 붙박여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담임 선생님 이전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한심하다'라는 눈빛으로 비난당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지금 생각해도 나같이 자유로운 영혼이 그런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는 게 신기하다. 하긴, 썩 '무사'하지 않긴 했다) 서울 애들은 비교과영역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이런 저런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는데, 지역에 갇혀 살다보니 그런 정보도 없었고 우리 학교 애들이 쓸 입시 전형에는 그런 게 필요도 없었다.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최대한 순응하려고 노력한, '정신차린' 고3으로서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는 한비야 단장의 특강보다는 당장 작년에 서울대에 간 선배가 와서 어떻게 공부했나 이야기해주는 게 궁금했다. 이런 종류의 대외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처음엔 논술공부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무료배포하는 청소년 논술신문 '생글생글'이라는 게 있는데, 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긴 하지만(몇 달 열심히 읽다보니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깨닫고도 이미 경도되긴 했지만) 따분하고 지당 도사 같은 소리만 하는 교과서와는 달리 참신한 관점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거기서 고등학생 명예 기자를 모집하는 데 지원해 본 것이, 나의 첫 도전이었다. 워낙 열독하는 신문이었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런 명예 기자들은 대개 무슨 무슨 외고, 민사고, 국제고 이런 애들이었기 때문에 '인맥'을 다질 수 있을 거라는, 10대답지는 않지만 고3다운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워낙에 선발 인원이 적은 데다가 이런 종류의 활동 경험도 없고 자기소개서 한 번 제대로 써 본 적 없던 나는 떨어지고 말았다. 요즘이야 뭐 여기저기 많이 찔러도 보고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 때는 그게 나한테 좀 컸었다. 1학년 때 들고 싶던 동아리에 지원했다 떨어진 이후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낙방'의 고배를 마신 거였으니까. 괜히 심란해져서 공부가 손에 안 잡혔다. 그러다가 본 것이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 1기'를 모집한다는 공지. 매달 정기후원을 하면서 받아 보는 월드비전 소식지에서였다.

다이아몬드 얘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었는데, 어쨌든 그 소식지를 통해 정보를 얻어 지원을 하게 됐다. 컴퓨터도 쓰기 힘든 학교였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 PC방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 월드비전이 기독교 본위의 단체인지라 교내 기독교 동아리에서 임원을 맡고 있던 나로서는(새세대 오프에서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한때 신학대 지망생이었다) 할 말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진짜 신심이 깊었던지라 ;ㅂ; 진정성이 넘치는 지원서를 써 보냈던 기억이다. 몇 주 뒤 전화가 왔다. 합격이라고. 뛸 듯이 기뻤고 담임은 학기 초부터 약속했던 교회 수련회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설득했다.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다. 혼자 서울에 간 건 처음이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찾아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무튼 집결 장소에 모여 버스를 타고 야영장으로 함께 이동했다. 그 경험이 어떻게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지는 짐작하지 못한 채.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상자에 손을 넣어 국적을 결정했다. 프랑스, 네팔, 팔레스타인, 몽골, 일본, 수단, 베네수엘라의 7개국이 있었다. 나는 수단 사람이 되었다. 조원들을 만났고, 투표를 통해 수단의 대통령이 되었다. 각국은 그 나라의 실제 경제사정에 맞게 식권과 식수권을 배급받았다. 가령 프랑스가 72개의 식수권을 받았다면 수단은 3개 뿐이었다. 3박 4일을 지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각국에는 UN대사가 한 명씩 있다. 매일 아침 각국은 내부 회의를 거쳐 외교 정책을 결정하고 대사를 통해 이를 조율한다. 크게 이러한 틀을 갖고 캠프가 운영되었으며, 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인권, 환경, 빈곤, 다문화, 평화 등으로 이루어졌다.

캠프가 어떻게 내 인생을 바꾸었느냐고? 이는 3박 4일의 모든 순간순간에 '눈물'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매 순간,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할지 몰랐다.

현실에서, 72개의 식수권을 가진 나라는 3개를 더 갖기 위해서 가난한 나라를 침략한다. 그러나 꿈과도 같았던 우리들의 세계에선 그러지 않았다. 프랑스는 베네수엘라를 지원했고, 베네수엘라는 더 가난한 수단을 지원했다. 팔레스타인과 몽골은 없는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누구도 더 갖겠다 싸우지 않았다. 모두가 세계시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무도 굶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새벽 식수를 얻기 위해 산길을 걸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그렇듯, 잠에서 덜 깨고 속도 비었지만 우리는 걸었다. 세상의 그 어떤 물질도 노동 없이 얻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UN 총회는, 그야말로 눈물 바다였다. 우리가 꿈꾸던 세계가 이곳에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줄 알았던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학교에서 '괴짜'로 통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젊은이의 열정은, '일단 대학 가고'로 귀결된다. 한가한 소리 한다. 대학만 붙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는 그 사탕발림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어떤 이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어떤 이는 몽골에서 태어났다. 왜? 우리는 제비뽑기를 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모든 세계시민들은 제비뽑기를 하듯 아무런 개연성 없는 확률 때문에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태어나고, 제비를 잘못 뽑았을 뿐인데,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모든 이가 평등하고 인권은 똑같이 소중하다는 강연 100시간을 들은 것보다 이해가 빨랐다.

'지도밖 행군단'이라는 명칭은 한비야 단장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딴 것이다. 사실 그 말도 한비야 단장이 지은 것은 아니고 전 월드비전 총재가 한 말이다. 우리는 지금 지도 안의 사람들만을 돕고 있지만, 끊임없이 지도 밖으로 행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는 개인과 사회의 한계를 말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으겠다고 했을때, 요즘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어울리겠냐며 반대도 많았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도를 뛰어넘기로 결심했다. 그 때 중학생이었던 친구들과 고3이었던 나는 아직도 연락하며 막역하게 지낸다. 3박 4일 내내, 나는 끊임 없이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지도들을 뛰어넘기 위해 애썼다.

우리 세대가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있다.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유토피아를 겪어본 우리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평화를 위한 나비효과의 첫 날갯짓은, 이미 일어났다.


'백 개의 다이아몬드'라는 표현은 수료식 때 한비야 단장이 한 말이다. 눈치챘겠지만 다이아몬드는 눈동자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우리 오십 명의 눈 백 개가 일순 자신에게 집중됐을 때, 그는 가슴이 뛰었다 했다. 그는 뛰는 가슴으로 우리 모두를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함께 울었다.

강연 때면 그는 항상 가슴 뛰는 삶을 살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평생 몇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해 보았는가? 가슴을 뛰게는커녕, 먹먹하게나 만들지 않았는가? 아니, 남의 가슴에 신경쓰기 전에, 지금 내 가슴은, 제대로 뛰고 있는가? 백 개의 다이아몬드 덕분에, 그 3박 4일만큼 내 인생에서 눈부셨던 순간은 없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by 미운오리 | 2009/11/27 02:19 | by. 미운오리 | 트랙백 | 덧글(3)

386세대? 2.0세대? 우리는 88만원짜리, 인턴세대

386세대? 2.0세대? 우리는 88만원짜리, 인턴세대
인턴,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
박솔희 (jamila)

대한민국의 2009년을 사는 20대로서 억울한 일이 하나 있다. 우리 부모님은 386세대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는 30대였던,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앞장섰던 세대다. 이제 고3이 되는 내 동생은 2.0세대라고 한다. 웹 2.0시대에,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능숙하게 다루며 소통하는 세대다. 어느 쪽이든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다. 민주주의와 소통을 키워드로 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개인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과 인턴, 야비한(?) 차이

 

하지만 20대인 나는 88만원짜리, 인턴세대다. 88만원 세대와 인턴 세대는 넓은 맥락에서 비슷한 말이라서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지만, 사실 꽤나 야비한(?) 차이가 있다. 88만원 세대가 비정규직으로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를 일컫는 말이라면 인턴 세대는 정식 취업이 잘 되지 않아 인턴 자리만을 전전하는 청년 구직자 세대로 정의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온 것이 2007년이니까 그 이전에 대학을 다니고 구직을 시도하던 청년 세대를 88만원 세대로 본다면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20대 초중반을 인턴 세대라고 나누어 보고 싶다.

 

그런데 이 '비정규직'과 '인턴십'이라는 각 단어가 주는 어감은 크게 다르다. 비정규직이 절망을 의미한다면 인턴은 정규직으로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비정규직이 저임금 노동을 상징한다면 인턴은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되기 위한 직무숙달 훈련이라는 느낌이다. 비정규직이 '낙인'이 된다면 인턴은 '경력'이 된다. 88만원 세대가 '88만원'이라는 그네들의 별칭을 두려워했다면 인턴 세대는 그렇지 않다. 적극적으로 인턴을 경험하고 경력을 쌓고 싶어 한다. 비정규직이라고 하면 삼성이든 LG든 안쓰러워 하지만, 그만한 대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고 하면 누구나 부러워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88만원짜리 인턴'에 관한 말장난은 야비하다.

 

 

인턴, 인턴, 인턴

 

요즘은 어디서나 인턴을 모집하고 인턴을 하려 하지만 본래 인턴이라는 말은 병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단어였다. 의대생이 정식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인턴과 레지던트 기간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수련의 기간이 필요한 것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의 일이 지극히 어려우며,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인턴은 희망이 맞고, 정식 의사가 되기 전의 직무숙달 기간이 맞고, 경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 범람하고 있는 인턴, 인턴, 인턴들은 어떠한가. 기업들은 신입사원 재교육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한다. 아르바이트는 대개 용돈벌이를 목적으로 하지만 인턴의 경우 돈보다도 경력·경험 쌓기가 최우선 목표다. 인턴십이 끝나면 인턴 경험을 증명해주는 그럴싸한 수료증이나 추천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기업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구직자라면 인턴십에 몰려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각 대학의 경력개발원에서는 취업 설명회도 모자라서 이제는 인턴십 설명회까지 열고 있다. 무얼 하는지 행사 내용을 봤더니 인턴십을 경험해 본 학생들의 체험기 발표와 고급 호텔 인사 담당자의 자사 인턴십 홍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생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 볼 것이고, 인턴십을 통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면 취업이 될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도 가질지 모른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공채보다 인턴십에서 경쟁률이 더 높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반드시 그 기업에 취업할 생각이 없다 해도, 대기업에서 인턴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취업 스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바'와 인턴 사이

 

여기까지라면 사뭇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토익, 인턴, 공모전, 봉사활동, 자격증'으로 이루어지는 취업 스펙 5종 세트는 더 이상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없으면 이상한 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턴십에서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업무와 그 근무 조건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짧으면 한두 달에서 길어야 일 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인턴십에 대해 주로 쏟아졌던 비판은 상사가 인턴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업무를 배우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단기 근로의 근본적 한계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업무의 질보다 양이다. 회사가 구직자에게 인턴십을 경험하게 해 주는 '은혜'를 베풀면서 동시에 보수 대비 과중한 업무 부담을 주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중소기업에서 5개월째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윤 아무개(23, 서울시립대) 씨의 경우 주5일 기준 월 100만원(세전)을 받는다.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야근에 휴일출근도 하는 등 정직원 못지 않게 근무하지만 초과근무수당은 나오지 않는다. 인턴 의사 과정과 같은 고도의 기술과 전문성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대다수 사무직의 경우 인턴을 통해 업무를 배우기보다는 그저 일을 하는 데 그친다. 정직원들처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일이 년은 걸리기 때문에, 길어야 일 년인 인턴은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인턴으로 이름만 바꾼 알바생을 데려다 저임금 노동을 시키고 선심쓰는 척도 하니 한참 남는 장사다. 물론 일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을 쓰더라도 일을 시키려면 기본은 가르쳐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다. 게다가 이 알바생은 잔업을 시켜도 군말이 없고 혹시라도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눈치를 봐 가며 열의를 다하니, 임직원들까지 면접에 참여해 인턴을 뽑으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근로자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그나마 윤 씨의 경우 적지만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는 축이다.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한 인턴들도 많다.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이다. 목적이 임금인지 아닌지가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인턴의 경우 표면상 목적은 임금보다는 직무 숙달에 있는 것처럼 보여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애매한데, 판례는 사용자의 지위·명령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는지를 기준 삼고 있다. 근무에 대한 응락 또는 거부 자유 유무, 근무장소 및 근무시간의 지정유무, 업무수행과정에 있어 사용자의 지위·명령 여부,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고 취업규칙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등이 '근로자성'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대판 2000. 11. 24. 99두10209)

 

보다 직접적으로 수련의의 근로 지위에 대한 판례가 있다.

"인턴 또는 레지던트 등 '수련의', '전공의'의 경우에도 그들이 비록 전문의 시험자격취득을 위한 필수적인 수련과정에서 수련병원에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하더라도 수련의, 전공의의 지위는 교과과정에서 정한 환자진료 등 피교육자적인 지위와 함께 병원에서 정한 진료계획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할 것이고, 또한 병원측의 지휘·감독아래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전공의는 병원경영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대법원 1998. 4. 24. 선고 97다57672 판결, 2001. 3. 23. 선고 2000다39513 판결)

 

이로 미루어 볼 때 기업이나 기관에서 근무하는 인턴 직원들 역시 근로기준법상의 보호를 받고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임금 대신 중식이나 소정의 교통비만을 제공하거나, 아예 '무급 인턴'을 모집하는 기관들이 상당히 있다. '인턴'이라는 '엣지' 있는 묘사만으로도 지원자들은 모여들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해외 인턴의 경우 최저임금 기준에 못 미치는 보수 혹은 무급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교육비 명목으로 수수료까지 따로 내야 하는 수도 있다.

 

기관에 따라 재정이 넉넉지 못하거나 공익성을 띠는 경우(NGO나 UN 관련 국제기구의 인턴은 대개 무급이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은 이해가 가나, 그럴 거면 차라리 자원봉사자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정확할 듯 싶다. 자원봉사자는 아무래도 직무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고 정직원들 입장에서도 아랫사람처럼 편하게 일을 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무급 인턴이라는 개념을 열심히 차용하는 것이라고 짐작해 보지만,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인턴,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

 

어차피 지원자들도 다 알면서 지원하는 인턴을 두고 왜 자꾸 꼬투리를 잡느냐면, 인턴이 바로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일 수 있어서다. 비정규직이 나쁜 이유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며, 노동자의 희생으로 기업의 배를 불리는 제도기 때문이다. 인턴도 마찬가지다. 직무 숙달, 취업 기회, 경력과 경험 등으로 포장돼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본래 취지를 벗어난 반 알바, 반 자원봉사 식의 인턴이 계속 범람한다면 문제는 악화된다.

 

기본적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평등한 근로계약이 아닌 인턴제에서는 항상 지원자가 배우는 입장으로서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돈은 적게 받아도 좋으니 일 좀 가르쳐 주세요' 식이라는 것이다. 반면 정식으로 채용된 사원은 노조에도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이다.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다보니, 입사한 지 한 달 된 수습사원보다 육 개월을 채운 인턴이 일을 더 잘 하더라도 임금은 배 이상 차이가 나게 된다. 수련의 과정과 달리 사무직 인턴은 기본 업무를 일단 익히면 일한 기간에 비례하려 역량이 커지는 게 아니라서 이런 불균형이 발생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비정규직이 인턴을 입듯 덧칠됐다.

 

인턴들이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자원한 것이라고 해서 문제가 가려지진 않는다. 상대적 약자인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태도는 수요-공급 곡선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되는 윤리의 문제다. 정규직은 뽑지 않고 자꾸 인턴만 늘리는 기업들. 비용절감책이 '비정규직'이었을 때는 비난이라도 받았지만 '인턴'으로 개명한 후에는 별 반감이 없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일 못하는 학생들 데려다가 가르쳐 놓은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분명 그들에게는 남는 장사다. 언제 잘릴 지 몰라 불안한 비정규직처럼 인턴들도 불안하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 채용될 수 있을까. 또 다른 인턴 자리를 전전하게 되는 건 아닐까.

 

물론 기업들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은 정부 정책의 방향성에 우선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주로 기업체 인턴에 대해서 논했지만 주지하다시피 올해 정부기관의 청년인턴 채용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대졸 초임을 삭감해 무조건 뽑아놓은 청년인턴들에게는 시킬 일이 없어 놀리고, 어차피 정규직 전환도 안 되는 청년들은 무력감에 시달릴 뿐이라 한다. 인턴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좋아하는 정부 입맛에 맞추어 기업들도 얼씨구나 인턴을 뽑고 있지만 결국 청년실업 해결책으로는 동족방뇨일 뿐이다.

 

오마이뉴스 역시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수상자에게 인턴 '혜택'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근로조건은 잘 모르겠으나 인턴 채용을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내 눈에는 영 거슬린다. '단기간 저임금 계약직 근로'와 인턴이 다른 점이 도대체 뭐냔 말이다.


덧) 인턴이 범람하는 세태에 이미 봄부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반드시 쓰기 위해 오래 기획한 기사였는데 막상 쓰다 보니 정말 오래 걸렸고 어려웠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턴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서 일반화하기 어려웠고, 파고드니 이게 상당히 복잡한 문제였다. 내일 제출인 과제 하듯 밤까지 새며 며칠 동안 완성해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일단 이 정도면 됐다 싶다.

by 미운오리 | 2009/11/25 03:35 | OhmyNews | 트랙백 | 덧글(3)

누가 우리를 대표하나

 

작년 이맘때였다. 아직 Soo;M이 있기 이전. 장갑, 목도리, 칼바람, 어그부츠 이런 것들과 함께 에디터의 11월은 ‘체인지’였음을 고백한다. 그 11월에 나는 그 붉은 잠바를 입고 첫눈도 맞았었다.

올해도 역시 새로운 총학생회를 위해 뛰는 팀들이 나왔다. 추위에 팔짱 낀 학우들의 손에 어떻게든 공약집을 전하려고 애가 탈 것이다. 쉬는 시간 10분에 강의실 하나라도 더 다니면서 학우들을 만나려고 50분, 아니 그 이상을 준비할 것이다. 숙게와 스노로즈에 눈을 붙박아두고 여론을 살피는 과정에서 짧은 댓글 한 줄에 일희일비하는 연예인들 심정도 이해를 할 것이다.

하지만 1만 숙명인을 대표하겠다는 선거본부의 당찬 포부에 비해 학우들의 관심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작년 체인지 선본에서 선거운동원으로 뛰며 얻어들은 게 많은데, 그중에 놀라웠던 건 비판, 혹은 차라리 비난조차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안티팬도 팬이라더니,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욕이라도 먹는 게 낫다는 거였다.

다행히도 간편한 온라인투표 시스템 덕분에 본교의 투표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실제로 매년 많은 학교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투표기간을 몇 차례씩 연장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오프라인투표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학교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큰소리는 못 치겠다.

투표의 중요성은 비단 총학생회선거에서만이 아니라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도 항상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투표율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진부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선거는 우리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한 해 동안 누가 학우들을 더 잘 대변하고, 누가 학우들을 위해 더 열심히 발로 뛰며, 누가 진정성 있게 학우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지는 판별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과정인 것이다.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에서 사회자 권해효는 ‘나는 더 이상 광화문에 나가지 않겠다. 다만 투표를 열심히 하겠다’는 재치 있는 멘트로 갈채를 받았다. YB는 반전평화를 상징하는 피스 마크(Peace Mark)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에디터의 눈에 이는 투표용지에 찍는 붉은색 인주의 도장 모양과 오버랩되어 보였다. 평화를 원한다면 투표를 해라, 인가.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나는 정치적인 것 싫어. 잘 알지도 못해’라는 식의 순결주의에 빠진 숱한 대학생들을 위해, 어느 책갈피에선가 스쳤던 인상 깊은 구절을 전하고 싶다.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성원들의 개인적 견해이다. 어느 누가 아무 견해도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정치란 꼭 무슨무슨 당이 개입되고 국회에서 싸움질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숙명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학내 사안들의 조정이 바로 우리의 학내 정치인 것이다. 메이트에 분노하고, 보안팀을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생각들이 바로 우리의 정치적 견해다. 정치란 남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정치 참여의 방법인 선거에 꼭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에디터의 고등학교 시절, ‘한 표’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해준 일화로 글을 맺고 싶다. 전교회장선거였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득표가 동수였다. 1번 후보와 2번 후보가 정확히 똑같이 356표(추정)를 얻은 것이다. 전국에서 이러한 사례가 두 번째(두 번째라는 것도 놀라웠다) 일어나는 일이어서 규정에 따라 생년월일이 뒤인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나 한 사람이 기권을 했다면, 혹은 다른 후보를 찍었다면, 판이하게 달라졌을 결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누구를 찍어도 좋지만, 다가오는 선거에 꼭 많은 숙명인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 Soo; M 2호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발간이 미뤄지는 바람에 온라인으로만 공개된 기사입니다. 손봐서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by 미운오리 | 2009/11/24 22:35 | Soo :M | 트랙백 | 덧글(0)

친일인명사전과 유태인의 역사의식

  <카운터페이터>라는 영화의 제목만 보고서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단어가 암시하는 내용은 어떤 종류일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약 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에서, 주인공이 위조지폐를 만들다가 체포되는 광경을 보고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유의 범죄영화이겠거니 짐작했다.

  처음의 예상과 달리 영화는 나치 시기의 독일, 유태인 수용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베른하트 작전. 사상 최대 규모의 위조지폐 제작 사건이었다고 한다. 보통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비장해서 극적 재미가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게 되지만 <카운터페이터>는 그럭저럭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관객에게 계속해서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지만 속도감 있게 극을 전개하면서 결국은 스스로 물음을 거두어 준다.

  어쩌면 이미 너무 고루해진 물음이지만, 국가의 명운과 개인의 안위 중 무엇이 중할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영화는 내 주변의 동료 몇 명과 수백만에 이르는 익명의 동족 중 누구를 살릴 것이냐고 묻는다. 사랑하는 소수와 관계없는 다수의 생명. 무엇이 더 가치로운가. 다행히 영화에서는 곧 전쟁이 종료되기에 어려운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벌어졌을 참혹함의 관망도 면했다.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답을 요구하지만 종전과 함께 긴장은 해소된다. 결국 그들은 나치의 요구에 따라 달러를 위조했지만 부르거의 방해로 작업이 늦어진 덕분에 독일은 패전하게 된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종전 후 유태인들이 우리의 ‘친일인명사전’과 같은 ‘친독인명사전’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로비치는 친독 인사로서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나치 친위대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나치에 협조해 위폐를 만들고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 충분한 요건을 갖춘 듯싶다. 소로비치는 분명 필요 이상으로 비굴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 것뿐인데 뭐가 나빠?’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부르거처럼 ‘동족을 위해’라고 딱 잘라 대답하지 못하겠다. 제 곳간이 먼저 차야 남도 돌아보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모든 유태인을 구하겠다는 바람은 어쩌면 헛꿈이고 어쩌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5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나도 친일 인사가 되었을지 모른다.

  친일파가 되기는 싫은 마음에 눈을 감고 한 번 더 부르거를 생각해 본다. 그는 독일의 위조 달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자금줄을 끊어야 전쟁이 종결될 수 있다고 한다. 부르거는 내내 베른하트 작전을 방해했고 다행히 누군가 다치기 전에 전쟁은 끝나게 된다. 독일의 총칼과 동료들의 비난 가운데서 그의 행동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종전이 조금만 늦어졌어도 그는 고담준론을 늘어놓다가 동료들을 몰살시킨 ‘배신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조국을 위해 동료들을 죽인 차가운 배신자. 바로 이 지점에서, 범인(凡人)은 호기를 부릴 자신이 없다.

  여기서 위인과 친일파가 갈린다. 바로 역사의식이다. 눈앞의 이익, 당장의 안위에 급급한 사람은 역사의식이 없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날 전기(傳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영웅들은 어쩌면 그 시대의 배신자였다. 가족과 동료를 저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을 기억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부르거를 닮고 싶은 용기가 솟는다. 더 이상 질문은 현 세대에서 동료 여남은을 살릴지 민족울 구할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몇 년, 길어야 몇 십 년의 생과 백 년, 혹은 천 년 뒤에도 기억될 역사를 맞바꾸자는 제안이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용기를 그러모았다고 해서 독립운동과 같은 일이 결코 만만하리라 속단하진 않는다. 모든 이에게 완벽한 애국심과 도덕성, 역사의식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제 안위만을 추구하며 매국행위를 하리라는 회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애국 인사로만 알고 있던 위암 장지연 선생이나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것을 보면, 영원한 친일파도 영원한 독립운동가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는 바는 평화다. 부디 우리 범인(凡人)들이,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게, 시험이 들지 않게 말이다.

※ 학교 도서관에서 실시한 영화 평론/감상문 공모전에 냈던 글입니다.

by 미운오리 | 2009/11/24 17:53 | by. 미운오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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