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7일
나경원 의원님, 이제 그만 좀 웃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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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1/27 16:18 | OhmyNew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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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1/27 16:18 | OhmyNews | 트랙백 | 덧글(0)

# by | 2009/11/27 02:19 | by. 미운오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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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인턴이 범람하는 세태에 이미 봄부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반드시 쓰기 위해 오래 기획한 기사였는데 막상 쓰다 보니 정말 오래 걸렸고 어려웠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턴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서 일반화하기 어려웠고, 파고드니 이게 상당히 복잡한 문제였다. 내일 제출인 과제 하듯 밤까지 새며 며칠 동안 완성해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일단 이 정도면 됐다 싶다.
# by | 2009/11/25 03:35 | OhmyNews | 트랙백 | 덧글(3)

작년 이맘때였다. 아직 Soo;M이 있기 이전. 장갑, 목도리, 칼바람, 어그부츠 이런 것들과 함께 에디터의 11월은 ‘체인지’였음을 고백한다. 그 11월에 나는 그 붉은 잠바를 입고 첫눈도 맞았었다.
올해도 역시 새로운 총학생회를 위해 뛰는 팀들이 나왔다. 추위에 팔짱 낀 학우들의 손에 어떻게든 공약집을 전하려고 애가 탈 것이다. 쉬는 시간 10분에 강의실 하나라도 더 다니면서 학우들을 만나려고 50분, 아니 그 이상을 준비할 것이다. 숙게와 스노로즈에 눈을 붙박아두고 여론을 살피는 과정에서 짧은 댓글 한 줄에 일희일비하는 연예인들 심정도 이해를 할 것이다.
하지만 1만 숙명인을 대표하겠다는 선거본부의 당찬 포부에 비해 학우들의 관심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작년 체인지 선본에서 선거운동원으로 뛰며 얻어들은 게 많은데, 그중에 놀라웠던 건 비판, 혹은 차라리 비난조차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안티팬도 팬이라더니,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욕이라도 먹는 게 낫다는 거였다.
다행히도 간편한 온라인투표 시스템 덕분에 본교의 투표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실제로 매년 많은 학교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투표기간을 몇 차례씩 연장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오프라인투표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학교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큰소리는 못 치겠다.
투표의 중요성은 비단 총학생회선거에서만이 아니라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도 항상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투표율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진부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선거는 우리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한 해 동안 누가 학우들을 더 잘 대변하고, 누가 학우들을 위해 더 열심히 발로 뛰며, 누가 진정성 있게 학우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지는 판별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과정인 것이다.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에서 사회자 권해효는 ‘나는 더 이상 광화문에 나가지 않겠다. 다만 투표를 열심히 하겠다’는 재치 있는 멘트로 갈채를 받았다. YB는 반전평화를 상징하는 피스 마크(Peace Mark)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에디터의 눈에 이는 투표용지에 찍는 붉은색 인주의 도장 모양과 오버랩되어 보였다. 평화를 원한다면 투표를 해라, 인가.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나는 정치적인 것 싫어. 잘 알지도 못해’라는 식의 순결주의에 빠진 숱한 대학생들을 위해, 어느 책갈피에선가 스쳤던 인상 깊은 구절을 전하고 싶다.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성원들의 개인적 견해이다. 어느 누가 아무 견해도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정치란 꼭 무슨무슨 당이 개입되고 국회에서 싸움질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숙명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학내 사안들의 조정이 바로 우리의 학내 정치인 것이다. 메이트에 분노하고, 보안팀을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생각들이 바로 우리의 정치적 견해다. 정치란 남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정치 참여의 방법인 선거에 꼭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에디터의 고등학교 시절, ‘한 표’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해준 일화로 글을 맺고 싶다. 전교회장선거였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득표가 동수였다. 1번 후보와 2번 후보가 정확히 똑같이 356표(추정)를 얻은 것이다. 전국에서 이러한 사례가 두 번째(두 번째라는 것도 놀라웠다) 일어나는 일이어서 규정에 따라 생년월일이 뒤인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나 한 사람이 기권을 했다면, 혹은 다른 후보를 찍었다면, 판이하게 달라졌을 결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누구를 찍어도 좋지만, 다가오는 선거에 꼭 많은 숙명인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 Soo; M 2호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발간이 미뤄지는 바람에 온라인으로만 공개된 기사입니다. 손봐서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 by | 2009/11/24 22:35 | Soo :M | 트랙백 | 덧글(0)

<카운터페이터>라는 영화의 제목만 보고서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단어가 암시하는 내용은 어떤 종류일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약 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에서, 주인공이 위조지폐를 만들다가 체포되는 광경을 보고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유의 범죄영화이겠거니 짐작했다.
처음의 예상과 달리 영화는 나치 시기의 독일, 유태인 수용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베른하트 작전. 사상 최대 규모의 위조지폐 제작 사건이었다고 한다. 보통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비장해서 극적 재미가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게 되지만 <카운터페이터>는 그럭저럭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관객에게 계속해서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지만 속도감 있게 극을 전개하면서 결국은 스스로 물음을 거두어 준다.
어쩌면 이미 너무 고루해진 물음이지만, 국가의 명운과 개인의 안위 중 무엇이 중할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영화는 내 주변의 동료 몇 명과 수백만에 이르는 익명의 동족 중 누구를 살릴 것이냐고 묻는다. 사랑하는 소수와 관계없는 다수의 생명. 무엇이 더 가치로운가. 다행히 영화에서는 곧 전쟁이 종료되기에 어려운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벌어졌을 참혹함의 관망도 면했다.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답을 요구하지만 종전과 함께 긴장은 해소된다. 결국 그들은 나치의 요구에 따라 달러를 위조했지만 부르거의 방해로 작업이 늦어진 덕분에 독일은 패전하게 된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종전 후 유태인들이 우리의 ‘친일인명사전’과 같은 ‘친독인명사전’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로비치는 친독 인사로서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나치 친위대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나치에 협조해 위폐를 만들고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 충분한 요건을 갖춘 듯싶다. 소로비치는 분명 필요 이상으로 비굴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 것뿐인데 뭐가 나빠?’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부르거처럼 ‘동족을 위해’라고 딱 잘라 대답하지 못하겠다. 제 곳간이 먼저 차야 남도 돌아보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모든 유태인을 구하겠다는 바람은 어쩌면 헛꿈이고 어쩌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5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나도 친일 인사가 되었을지 모른다.
친일파가 되기는 싫은 마음에 눈을 감고 한 번 더 부르거를 생각해 본다. 그는 독일의 위조 달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자금줄을 끊어야 전쟁이 종결될 수 있다고 한다. 부르거는 내내 베른하트 작전을 방해했고 다행히 누군가 다치기 전에 전쟁은 끝나게 된다. 독일의 총칼과 동료들의 비난 가운데서 그의 행동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종전이 조금만 늦어졌어도 그는 고담준론을 늘어놓다가 동료들을 몰살시킨 ‘배신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조국을 위해 동료들을 죽인 차가운 배신자. 바로 이 지점에서, 범인(凡人)은 호기를 부릴 자신이 없다.
여기서 위인과 친일파가 갈린다. 바로 역사의식이다. 눈앞의 이익, 당장의 안위에 급급한 사람은 역사의식이 없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날 전기(傳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영웅들은 어쩌면 그 시대의 배신자였다. 가족과 동료를 저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을 기억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부르거를 닮고 싶은 용기가 솟는다. 더 이상 질문은 현 세대에서 동료 여남은을 살릴지 민족울 구할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몇 년, 길어야 몇 십 년의 생과 백 년, 혹은 천 년 뒤에도 기억될 역사를 맞바꾸자는 제안이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용기를 그러모았다고 해서 독립운동과 같은 일이 결코 만만하리라 속단하진 않는다. 모든 이에게 완벽한 애국심과 도덕성, 역사의식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제 안위만을 추구하며 매국행위를 하리라는 회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애국 인사로만 알고 있던 위암 장지연 선생이나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것을 보면, 영원한 친일파도 영원한 독립운동가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는 바는 평화다. 부디 우리 범인(凡人)들이,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게, 시험이 들지 않게 말이다.
※ 학교 도서관에서 실시한 영화 평론/감상문 공모전에 냈던 글입니다.
# by | 2009/11/24 17:53 | by. 미운오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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